목사의 아내, 혹은 사모
누군가 남편의 직업을 물으면 지레 흠칫하게 된다. 목사라고 밝히는 순간 나를 보는 눈이 달라질까봐 두렵기 때문이다. 나는 목사의 아내, 주로 '사모'라 불린다. 상대방의 아내를 높여 부를 때 사용하는 '사모'라는 호칭을 스스로에게 붙이는 것이 자신을 직접 높이는 꼴이라 우스워 보이지만 달리 칭할 말이 없기도 하고 또 목사의 아내라면 그 의미가 조금 달라지니 어쩔 수 없다. 교회에서 어쩌면 가장 애매하고도 어색한 자리의 사람을 칭하는 말이기 때문이다. 성직자도 성도도 아니지만 성직자 같으면서도 성도같아 보여야하는 사람. 정도껏 소심하고 정도껏 목소리를 내야하는 사람. 무엇보다 성실하고 온유하며 신실해야하는 사람이 바로 이 '사모'라는 호칭에 담긴 의미다.
교회의 누구도 내가 우울장애와 불안장애를 가지고 있는지 모른다. 점심약을 먹다가 누군가 어디 아프냐 물으면, 위염이 있다고 말을 흐리는 것이 최선이다. 성도들에게 덕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니 사모인 내가 알콜 중독임이 알려지면 아마 나의 남편은 직장에서 잘리고도 남을 것이다. 해서 나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을 끌어안고 살고 있다.
나의 부모는 약 20년을 매일 단 하루도 빠짐 없이 소주 3병을 나눠마시고 잠에 들었다. 술을 마시지 않으면 잠에 들지 못하니 알콜 의존 혹은 중독일 것이다. 짐작만 하는 이유는 그들의 고집으로 인해 한 번도 병원에 가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유년 시절부터 나는 주로 조개구이집, 곱창집, 호프집과 같은 술집에 익숙했다. 그리고 술에 취한 부모의 모습이 별스럽지 않았다. 사춘기에 접어들면서는 취한 아버지의 말에 상처받지 않는 방법을 습득하게 되었다. 그렇게 자란 나는 사회복지과에 진학했다. 그리고 전공 공부를 하며 깨달았다. 이 망할 알콜 중독이란 놈은 가족력이 엄청나다는 사실을.
20살부터 나는 술을 아주 좋아했다. 기분을 좋아지게 하고 슬픔도 잊게하는 이것을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하루에 한 두 캔 정도의 맥주는 죄책감도 주지 않으니 일상의 낙이었다. 하루는 엄마가 소리쳤다. 한 번만 더 네 방에서 맥주캔이 나오면 가만 두지 않겠다고. 그러나 엄마가 할 말은 아니라고 속으로 생각하며 흘려들었다. 대신 맥주캔은 책상 아래 모여있다가 한 번에 버려졌다.
술을 마시는 사람을 두 가지 유형으로 나눠보자면 첫번째는 술자리를 좋아하는 사람이고, 두번째는 술 자체를 좋아하는 사람이다. 나는 후자에 속한다. 술뿐 아니라 커피, 차를 포함해 여러 음식과 식재료 등을 탐미하는 일에 열성을 다한다. 그런 의미에서 술은 탐미하고 탐험할 무궁무진한 세계였다. 취하기보다 맛보기 위해 마시는 나에게 수제 맥주와 와인은 정말이지 즐거운 세계였다. 자연스레 수제 맥주와 와인에 빠져들었다. 같은 듯하면서도 다 제각기 다른 그 맛들을 공부하는 것이 내겐 최고의 취미이자 짜릿한 탐험이었다. 책까지 사들이며 공부하고 마셨다. 탐독하고 탐미하고. 끝 없이 즐거운 반복이었다.
그러나 앞에서 말했듯 이 망할 알콜 중독은 가족력이 있으면 이어받기가 십상이라 나도 그렇게 모르는 새 매일 마시는 술잔에 젖어들고 있었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우울장애와 불안장애 치료를 할 때마다 번번이 알콜 때문에 치료가 무너졌다. 치료를 위해 알콜을 줄이려했지만 이미 내 뇌는 지배당한지 오래라, 마시기 전까지 그리고 잠들기 전까지 계속해서 술 한 잔만 하자며 나를 꼬드겼다. 그렇게 오늘만, 오늘까지만을 얼마나 했을까. 어느날 세 번째로 옮긴 병원의 의사 선생님 앞에서 참담한 표정으로 인정해야만 했다. 알콜 치료를 해야겠다고.
성도들이 볼까 두려워 몰래 와인을 사고, 마시고, 다시 몰래 분리수거를 배출하는 일. 오늘까지만 먹자고 다짐하며 내일도 먹을 것을 예상하는 일. 한 잔만 하자고 했지만 혼자 와인 한 병을 거뜬히 먹고 기억도 거뜬히 비워버리는 일. 지긋지긋하다고 하기엔 여전히 갈망하고 있는 일들이다. 매일밤 악마가 날 찾아온다. 잠들 때까지 속삭인다. 내일부터 진짜 먹지 말자고. 못이긴 건지 못이긴 척하는 건지 알고 싶지도 않은채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다시 시작한다. 누구에게도 고백할 수 없는 이 싸움을. 아침 점심 저녁 하루 세 번 두 알씩 아캄프로세이트를 먹으며 나는 이 망할 알콜이란 놈을 끊어내기 위해 치료중이라고 되새긴다. 그리고 무료한 저녁이 되면 머리는 끊임없이 명령한다. 오늘까지만 먹자고.
누가 예상이나 할까. 목사 아내가, 사모가 알콜 중독자인 것을. 알콜 치료를 하고 있다는 것을. 치료를 할 만큼 중독되어 있다는 것을. 부끄럽지만 나아지고 싶은 마음으로 내밀어본다. 투고를 하며 점점 더 나아지는 나를 보이겠다는 다짐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