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은 어쩐지 기분이 좋았다.
햇살은 포근히 날 안아줬고, 바람은 살며시 내 뒤꿈치를 밀어주었다.
발걸음이 가벼운 이유가 분명히 그랬다.
내 고양이들도 그날따라 현관 앞까지 마중 나와 인사해줬다.
그날은 시야가 넓었다.
오늘 내가 가는 길을 마치 내일도, 모레도 갈 것처럼
지하철을 타고, 내리고, 코너를 돌아 계단을 올라가는 순간까지
세세히 기억해두고 싶은 듯이, 순간순간을 곱씹었다.
목적지에 다다를수록 세상은 투명해졌다.
관용적인 표현이 아니다. 건물 안이 훤히 들여다보이고
벽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나는 이미 알고 있는 듯이
걸음에 망설임이 없었다.
그 카페는 주말엔 열지 않는다.
특별한 이유는 아닐 것이다. 하물며 내가 그 카페를 가야 할 이유가 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주말에 문을 열지 않는 카페는 거의 없다.
그곳이 이 근방에서 유일하게 주말에 열지 않는 카페임은 틀림없었다.
카페에 들어와 가장 마음에 드는 자리에 앉았다.
그 자리는 가장 가운데에 있어 들어오자마자 눈에 띄었다.
그 자리는 1인석이었지만 잘하면 한 명이 더 앉을 수도 있었다.
그 자리는 입구와 가깝고 드나드는 사람들을 다 지켜볼 수 있었다.
나는 누군가를 기다리기 시작했다.
자리를 펴고 커피를 마시며 느긋하고 행복하게 기다렸다.
이 카페는 마음에 들었다. 내가 좋아하는 원두도 있었고
인테리어도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이었다.
...그렇게 한 시간이 지났다.
가만히 앉아 있기엔 한 시간은 너무 길 수도 있다.
이럴 때를 대비해서 노트북도 가져왔다.
난 내 할 일을 하면서 기다리는 이 시간이
의미 없이 흘러가지 않도록 할 것이다.
다행히 자리를 잘 잡았다. 인기척이 느껴질 때마다
기다리던 사람이 왔는지 확인할 수 있으니,
아마 하나도 지루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세 시간이 지났다.
손에 잡히지도 않던 일은 끝나지도 않는다.
기다리던 사람이 올까 봐, 인기척이 느껴질 때마다
고개를 돌려 쳐다보는 모습이 이젠 스스로도 우습다.
이 카페는 별로다. 의자가 너무 낮고 불편해 오래 앉아 있기 힘들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던 내 기분이
천천히, 아주 천천히 평범해지기 시작한다.
...그렇게 다섯 시간이 지났다.
그때 나는 스스로도 알고 있었다.
기다리는 사람은 오지 않을 것이라는 걸.
그래도 오 분만 더, 삼십 분만 더, 한 시간만 더...
무의미한 이 시간을 내 오기와 함께 붙잡으려 했다.
커피는 이미 세 잔째 마셔 속이 쓰려온다.
배고프진 않지만 기운이 없어 빵을 입에 쑤셔 넣었다.
이제 가야 했다. 이것은 선택이 아니었고, 당연한 결말이었다.
...그렇게 한 시간이 더 지났다.
몇 시간 만에 밖으로 나오자 세상은 채도와 명도가 낮아졌다.
저 앞의 낮은 벽들은 마치 넘어보라는 듯이 날 비웃는 듯했다.
불투명했다. 이곳이 어딘지 모르겠다.
왔던 길을 반대로 가면 돌아가는 길일 텐데.
이곳에 왔던 나와 돌아가려는 나는 이미 다른 사람이었으므로,
걸음마다 주저할 수밖에 없었다.
돌아가는 지하철을 제대로 확인하지 못했다.
왔던 열차의 반대편을 타면 분명히 돌아가는 열차일 거라 넘겨짚었다.
돌아간다는 것이 항상 그렇게 쉽지만은 않나 보다. 이 열차의 종착역은 내 기대와 달랐다.
열차는 더 이상 달리지 않으니 내게 내리라고 강요했고, 잘 돌아가라며 거짓말했다.
나는 내리고 싶지 않았다. 내리면 생전 처음 보는 곳에 내던져질 게 분명했기 때문에.
어쩔 도리 없이 무작정 걸었다.
햇살은 뜨겁게 날 녹였고, 신발 속 땀은 걸음을 무겁게 했다.
이제는 이곳이 어딘지 중요하지 않았다.
그때도 나는 여전히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다.
이대로 집에 돌아가면, 정말로 기다림이 끝이 날 것 같았기 때문에.
한참을 걷고, 돌고 돌아 집에 도착했다.
내 고양이들이 마중 나와 인사했다.
집은 어두웠지만 불을 켜지 않아도 보였다.
난잡하게 어질러진 방 안에 내 자리는 없었다.
어질러진 것들 사이로 비집고 들어가 초라해진 내 몸을 눕혔다.
머리가 아팠다. 몇 시간 전엔 다정했던 저 햇살이 미웠다.
이 여름이 빨리 끝나기를 기도하며 잠에 들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