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잼

by 익명의 에세이

사과 한 박스가 생겼다.


나는 혼자 사는데 한 박스나 되는 사과를 어떻게 처리할까 궁리하다

사과잼을 만들어 주변 사람들에게 나눠주기로 했다.


사과 몇 알을 꺼내 소담스럽게 담아놓으니 그냥 이대로 두고 싶지만

하나하나 껍질을 벗기고 씨를 도려낸다.

겉보다 더 예쁜 속살이 드러나면 작은 조각으로 썬다.

한 숟갈 떴을 때 네다섯 조각이 떠질 정도로 작은 조각으로 썰어야 씹는 식감이 좋다.

아예 믹서기에 갈아서 잼을 만들 수도 있지만 오늘 내가 원하는 방식은 아니다.

나는 노란 빛깔의 사과잼을 만들고 싶다. 믹서기로 갈면 사과가 갈변한다.


믹서기뿐만 아니라, 썰어놓은 사과가 공기와 접촉되어도 쉽게 갈변하기 때문에

이를 방지하기 위해 설탕을 조금씩 뿌려놓는다. 그러면 잼을 만들었을 때도

노란 빛깔을 유지할 수 있다. 모두 썰었다면 사과의 반만큼 설탕을 준비한다.


이제 잘게 썬 사과와 설탕을 냄비에 넣고 졸이기 시작한다.

불은 약해야 한다. 급히 끓이려 하면 바닥이 쉽게 눌어붙고 사과가 말라비틀어진다.

잼은 서두른다고 빨리 완성되지 않는다. 인내심을 갖고 천천히 저어가며

사과가 투명해지길 기다려야 한다.


약한 불로 사과를 뭉근히 졸이다 보면 어느새

사과에서 물이 나와 노란 사과탕이 되어 있다. 이제 이 물이 어느 정도 증발할 때까지

한 번씩 저어가며 냄비 앞에서 사과를 지켜본다.

이 사과탕이 사과잼이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면 된다.

나는 여전히 사과가 갈변하여 갈색잼이 되는 것이 불안하기 때문에

레몬즙을 양껏 넣어주었다. 레몬즙은 색도 잡아주지만 상큼한 맛에도 중요하다.


그리고 나는 계피향을 좋아하기 때문에 계피 껍질을 하나 정도 넣고 같이 끓일 것이다.

그러면 상큼하면서도 은은한 계피향이 마지막에 따라오는 잼이 된다.

마침 저번 겨울에 뱅쇼를 만들고 남은 계피 껍질이 있기 때문에 넣고, 마저 졸여준다.


완성된 잼은 뜨거울 때 유리병에 담아준다.

담기 전에 유리병은 끓는 물에 미리 열탕 소독해 두어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말자.

설탕을 많이 넣는 것과, 열탕 소독한 유리병에 담아두는 것은

잼을 상하지 않고 오래 보관할 수 있도록 해 주니 꼭 지켜줘야 한다.


잼은 아직 뜨겁지만 나는 맛을 빨리 보고 싶어 안달 났는지 빵을 꺼내고 있다.

빵은 브리오슈로 하겠다. 아직 모락모락 김이 나는 잼을 한 숟갈 떠서 빵 사이에 골고루 발라준다.

사과가 알알이 빵에 발려 있는 모습이 벌써 맛있다.


오랜 시간 주방에서 뚝딱거리던 수고로움이 다 보상받는 느낌이다.

내 고양이들은 내가 뭘 하는지 궁금해 주방 구석에 자릴 잡고 구경했지만

재미없었는지 그새 잠들어버렸다. 고양이들 사이에 서서 뜨거운 잼을 호호 불어

한입씩 야금야금 먹고 있는 내 모습이 퍽 행복하다.


예쁘게 담아놓은 사과잼을 보니 선물 받을 사람의 표정이 기대된다. 분명히 맛있게 먹어줄 것이다.

그런데, 선물용 잼을 담다 보니 막상 내가 먹을 잼이 부족하다.

두 병을 담으려면 생각보다 많은 사과가 필요했다.


막상 내 몫이 부족하니

다시 사과 몇 알을 꺼내고, 껍질을 벗기고, 씨를 도려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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