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초등학교에 다닐 때, 친구를 불러내기란 간단했다. 그냥 친구집에 찾아가서 놀자고 하는 게 다였다. 그래서 친구집에서 놀거나 놀이터에 가서 다른 친구들과 다 같이 놀기도 했다. 친구가 끝내지 못 한 숙제가 있다며 망설일 시, 조금만 구슬리면 내가 친구집으로 들어가든지 친구가 집밖으로 나오든지 둘 중 하나는 결국 현관문을 넘게 됐다. 미리 날짜를 잡거나 연락을 해두는 일은 불필요했다. 친구가 혹시라도 집에 없으면 다른 친구집에 가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이런 막무가내식 친구 불러내기는 학년이 올라가며 더 이상 먹히지 않게 됐다. 학생이라는 신분이 뚜렷해질수록 우리는 자의든 타의든 그 신분에 맞게 생활해야 했고, 마침내 '스케줄'이란 개념이 우리들의 생활양식을 규정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친구와 만나려면 미리 약속을 잡거나 최소한 당일 일찍 물어봐야 했다. 예전처럼 불쑥 찾아갔다간 친구는 영문도 모른 채 당황할 게 분명했다 — 친구의 어머님은 더 놀랄지도 모른다. 이런 방식이 썩 마음에 들진 않았지만, 나도 누군가 갑자기 찾아오는 건 싫었기에 반드시 몸에 익혀야 할 매너였다.
대학생 때까지는 친구들을 불쑥 찾아가는 일까진 아니더라도, 문득 전화를 거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친구가 생각날 때 전화를 걸어서 받으면 수다를 떨고, 받지 않으면 '바쁜 모양이네' 혹은 '자나보다' 하고 넘기곤 했다. 그러나 직장생활을 시작하면서 이런 습관 또한 버려야만 했다. 친구도 낮에는 일로 바쁘고 밤이나 주말에는 데이트를 하느라 꽉 찬 스케줄을 소화 중이었기에, 내가 아무 때나 전화를 해댈 순 없었다. 잠깐 통화할 시간이야 있겠지만, 그들의 꽉 찬 스케줄 사이에 빈 공간을 나와의 전화통화로 채워 소화불량을 일으키고 싶지 않았다. 우정을 위해 이 정도 노력도 쏟지 않는 건가 하고 실망했던 적도 있지만, 나도 스케줄이 빌 때면 어떤 방해도 없이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싶을 때가 있으니 이해는 갔다.
Photo by Karen Lau
친구와도 상황이 이러니 직장동료를 비롯한 지인들과의 관계는 말할 것도 없었다. 만나는 것은 물론, 통화를 하려 해도 꼭 메신저로 시간이 되는지 미리 물어보게 됐다. 시시콜콜 수다나 떨기 위해 연락하는 것도 아니고 대부분 명확한 용건이 있었기 때문에, 매너를 따르는 것이 합당했다. 사실 이제는 몇 남지 않은 친구들과 아무런 용건 없이 통화하려고 해도 메신저로 먼저 시간을 정한다. 친구들도 남편이자 아빠로서의 역할을 다하기 위해 빈 공간이 거의 사라진 스케줄을 따라 사는 중이라, 계획 없이 전화를 걸면 받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런데 얼마 전 깨달은 사실은 어느 순간부터 내가 통화하자는 메시지를 보내는 일조차도 망설인다는 것이다. 바쁘다고 하면 어쩌지, 괜히 연락해서 불편하게 한 건 아닐까, 답장조차 안 하면 어떡하지, 여러 가지 이유로 메시지를 써놓고도 전송 버튼을 누르지 못했던 적도 많다. 그래서 조만간 나를 잊어가는 사람들에게 불쑥 연락을 해볼 생각이다. 무조건 전화를 걸어서 '잘 지냈어?' 물어보려 한다. 받으면 좋고, 안 받아도 그만이다. 초등학교 때 친구집 문을 두드리던 그때처럼, 그저 수다 좀 떨고 싶은 마음이 잘못된 건 아니잖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