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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에 흔들린 꽃들 Feb 20. 2023

엄마가 사라졌다

이번엔 정말로

네다섯 살 때로 기억한다. 낮잠에서 깨어난 나는 엄마가 사라진 것을 알게 됐다. 그 길로 무작정 집을 뛰쳐나갔다. 쌓인 눈 위로 뿌려진 살색 연탄제도, 골목길을 관통하는 칼바람도, 내복차림에 맨발로 냅다 달려 나가는 소년을 막을 순 없었다. 천만다행으로 혼자 울면서 달리는 소년을 목격한 이웃집 아주머니가 쫓아 나와, 차도에 다다르기 직전의 나를 잡아 세울 수 있었다. 알고 보니 엄마는 고작 집 앞의 마트에 갔던 게 전부였다. 두 자녀에 시부모님까지 함께 살던 때라, 바쁜 살림을 챙기며 마트에 갈 시간은 어린 내가 자는 시간 밖에 없었을 텐데 말이다. 그 뒤로 엄마는 다시는 나를 두고 마트에 가지 못 했으리라.


안타깝게도 내가 기억할 수 있는 가장 오래 전은 멋진 생일선물을 받은 날이나 처음으로 친구를 사귄 날이 아닌, 엄마가 잠시 사라졌던 바로 그날이다. 그 나이대 어린아이들이 엄마와 떨어지는 것을 무척 싫어하긴 하지만, 나는 그 정도가 조금 심했던 것 같다. 오죽하면 내복바람에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엄마를 찾아 나섰을까. 시간이 지나 어른이 돼서도 엄마에 대한 남다른 애착은 여전했다. 스무 살이 넘어서도 엄마랑 옷을 사러 가고, 둘이서 외식을 하고, 같이 공원을 산책하기도 했으니 말이다. 결정적으로 여자 친구를 사귄 후로도 엄마는 여전히 내게서 때어놓을 수 없는 사람이었다. 때때로 여자 친구와의 데이트에 엄마를 초대했던 점으로 보아 내가 "마마보이"였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엄마에 대한 각별한 애착은 집안내력이라 할 수 있겠다. 아버지는 삼십 대 중반에 어머니를 여의었는데, 몸살이 나서 아플 때면 꼭 "엄마"라는 단어를 읊었다. 그렇게 중얼거리다 보면 돌아가신 나의 할머니가 정말로 나타날 것처럼. 할아버지 또한 삼십 대에 어머니를 여의었는데, 수십 년 후 여든이 훌쩍 넘어 죽음을 앞두고 떨리는 손으로 꼬불꼬불하게 적은 단 두 글자 또한 "엄.마."였다. 할아버지가 단 한 번도 나의 증조할머니에 대해 얘기한 적이 없었기에, 그에게도 엄마가 있었다는 사실이 이상하게 느껴졌다. 아마도 할아버지는 엄마에 대한 그리움을 자신조차 모르는 마음속 어딘가에 꽁꽁 숨기고 사셨던 것 같다.


아버지와 할아버지 모두 인생의 비슷한 시점에 엄마를 잃었다는 사실로부터 나는 알았어야 했다. 그 운명이 나에게도 전해질 수도 있음을. 엄마가 사라졌을 때 느꼈던 공포가 희미해졌던 탓일까? 나는 엄마가 다시는 사라질 수 없을 거라 여겼다. 작은 체구임에도 잔병도 없고 언제나 부지런했기 때문에 엄마는 반드시 장수할 거라 생각했다. 집으로 들어온 벌레 한 마리도 쉽사리 못 죽이고 웬만하면 살려서 내보내던 마음도 여린 엄마였기에, 왠지 "죽음"이란 단어는 그녀에게서 한참 멀리 놓아두어야만 할 것 같았다. 그러나 나는 우리 집안 남자들에게 흐르는 그 지독한 내력을 거역할 수 없었나 보다. 엄마는 그렇게 사라졌다. 이번엔 정말로.


이제 같은 길을 걷게 된 나는 아버지와 할아버지의 심정을 조금씩 이해하기 시작했다. 두 분은 하루도 빠지지 않고 더 이상 볼 수 없는 엄마를 그리워했을 것이다. 가끔씩 엄마가 나오는 꿈을 꾸는 날이면 아침에 일어날 때 엄마가 옆방에 있을 것 같은 착각도 들었을 것이다. 좋은 것을 대할 때면 엄마가 생각나서 그것을 온전히 즐기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어린 자식들이 있기에 매번 눈물을 삼켰을 것이다. 지금의 나처럼. 그리고 나는 알 것 같다. 무엇이 그들을 버티게 했는지.


한국전쟁 중에 자유연애로 연상의 여인과 결혼한 할아버지는 그녀를 먼저 보내고 30년 가까이 홀로 사신 애처가였다. 자식의 시점에서 본 아버지 또한 내리사랑보다 아내를 향한 사랑이 더 깊은 애처가였다. 그들이 사랑한 사람은 아내이기도 했지만 그들의 자녀의 엄마이기도 했다. 자녀를 기르고 살림을 도맡아 집안을 이끌어준 아내를, 그들은 엄마로서도 사랑했을 것이다. 우리 집에도 엄마가 한 명 있다. 그녀는 내 두 자녀의 엄마다. 나는 그녀가 행복하길 바란다. 이제는 사라진 엄마가 누리지 못한 몫까지 더해서. 오직 그것만이 나에게 위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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