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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에 흔들린 꽃들 Apr 20. 2023

맛없는 세상

부자연스러움에서 자연스러움으로

그 오두막은 등산로 옆에 자리 잡고 있었다. 수풀 사이로 얼핏 보이는 모습은 작은 안내소 같아서 무심코 지나치기 십상이었다. 하지만 등산로 입구도 아니고 한참 길을 오르는 중간에 위치해서 안내소로 짐작되진 않았다. 그렇다고 대피소라 하기엔 설악산도 아니고 고작 아차산 아닌가.


그냥 지나치길 수차례. 나는 궁금증을 못 이기고 그 오두막으로 향했다. 등산로를 벗어나 열 걸음 정도 걷자 그곳이 가게임을 알려 주는 메뉴판이 눈에 들어왔다. 커피와 쌍화차, 그리고 삶은 달걀이 적힌 메뉴판이 현판처럼 걸려 있었고, 작은 창문 너머로 주인으로 보이는 중년의 남성이 무언가에 열중하고 있었다.


구둣방만큼 좁은 실내였어도 손님 한 명쯤 앉을 수 있는 테이블이 있어서, 나는 일단 거기에 앉았다. 사실 문턱에서 발걸음을 돌릴까 했지만, 주인과 눈이 마주친 이상 왠지 그 안으로 들어가야만 할 것 같았다. 단지 열 걸음 멀어졌을 뿐인데, 단절된 세상 속으로 넘어온 듯했다. 바깥세상에게 모든 소리를 내놓는 대신 모든 적막감을 들여오는 거래라도 한 건가? 주변은 유난히 조용했고, 주인 역시 말수가 적었다.


그는 내게 무엇을 주문할 것인지 물어보지도 않고서 쌍화차를 내놓았다. 바깥이 쌀쌀해서 어차피 그걸 주문할 생각이었지만. 달콤하면서도 쌉쌀한 맛이 혀를 스치며, 뜨끈한 기운이 목구멍을 타고 넘어가는 게 느껴졌다. 나도 모르는 사이 종이컵이 비었고, 주인은 어느새 손을 뻗어 빈 컵을 채웠다. 다시 내가 차를 마시는 동안 그는 나무를 깎는 작업에 열중했다. 그가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 예상하기엔 손에 들린 나무는 아직 작품이라기보단 의미 없는 막대기에 가까웠다.


나는 그에게 무엇을 만드냐고 물어보려다 말았다. 고요함을 좀 더 느끼고 싶어서였다. 내일이면 출근해서 원치 않아도 수많은 이들과 대화를 나눠야 할 테니. 그래도 두 가지는 꼭 물어보고 싶었다. 애초에 궁금해서 여기까지 들어왔던 게 아닌가. 첫 번째는 이곳이 제대로 허가를 받고 운영되는 곳인지, 두 번째는 이렇게 숨겨진 장소에서 장사가 잘 되는지였다. 물론 첫 번째 질문은 정말로 물어볼 생각은 아니었고, 두 번째는 조심스럽게 물어볼 수 있었다.


“장사가 잘 되든 안 되든 나는 여기서 이렇게 살 수밖에 없어요. 나는 이곳에서만 맛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죠. 그러니까 말이죠, 어느 날 갑자기 어떤 맛도 느낄 수가 없게 됐어요. 무슨 수를 써도 잃어버린 미각을 되찾을 수 없었어요. 괴로워하다가 산속까지 흘러들어왔는데, 희한하게 여기서 미각이 돌아온 거죠. 아주 조금이지만요. 더 깊은 산속으로 가면 미각이 좀 더 돌아올지도 모르지만, 더 멀리 갈 수는 없어서 이곳에서 만족하며 살고 있네요.”


내가 물어본 질문에 대한 답은 아니었지만 나름대로 흥미로운 이야기였다. 무슨 병인지는 몰라도 참 고생스럽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몇 주가 지나 그 기이한 가게는 기억에서 사라지는 듯했다.


그날 아침, 나는 무거운 다리를 움직여 회사로 향했다. 늦잠을 자는 바람에 아침도 거르고 꽉 찬 지하철에 몸을 구겨 넣었다. 쉴 틈 없이 오전을 보내고 나니 허기가 찾아들었다. 점심은 제육볶음이었다. 매운 걸 먹지 못하는 나라도 팀에서 막내라 별수 없었다. 그런데 맵지 않았다. 김치를 집어 먹어봤다. 아삭한 식감만 치아를 타고 전해질뿐 아무 맛도 나질 않았다. 물을 한 모금 마시고 다른 반찬들을 먹어 봐도 마찬가지였다.


스트레스 때문이겠지.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하지만 며칠이 지나도 맛을 느낄 수 없었다. 소금과 설탕, 후추, 계핏가루, 심지어 베이킹 소다까지 입에 털어 넣었지만 아무 맛도 없었다. 병원에서도 답을 찾지 못한 나는 그 가게를 기억해 냈고 주말에 그곳을 찾아갔다. 그러나 등산로 어디를 둘러봐도 오두막은 없었다. 주변을 샅샅이 살펴보는 동안 나는 어느새 등산로를 한참 벗어나 있었다.



이제 나는 깊은 숲속을 헤매고 있다. 주변은 온통 나무뿐이다. 저쪽에 이름 모를 열매가 보인다. 나는 저 과실을 먹을 것이다. 맛을 느낄 수 있을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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