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역: 어른

무너지지 않기 위해 둔감해져야만 하는 슬픈 기술

by 무명초

어느 날 문득 깨닫는다. 세상에 진짜 어른 같은 건 없었다는 것을. 다만 들키지 않고 '척'하는 법에 능숙해진 늙은 아이들이 각자의 배역을 견디고 있을 뿐이다.


우리가 둔감해지기로 결심한 건 강해지기 위해서가 아니라, 매일 마주하는 균열을 일일이 감당할 재간이 없어서다. 슬픔에 예민할수록 발걸음은 무거워지고, 진실에 정직할수록 외면해야 할 얼굴이 늘어간다. 그래서 우리는 마음의 가장자리에 딱딱한 굳은살을 올린다. 그걸 사람들은 '연륜'이라 부르고, 우리는 '생존'이라 읽는다.


어른이 된 척하는 법을 완성해 가는 과정은 사실 나를 지워가는 과정과 닮아 있다. 비명을 지르고 싶은 순간에 적절한 침묵을 골라내고, 무너지고 싶은 순간에 빳빳한 셔츠 깃을 세우는 법. 그 기술이 정교해질수록 세상은 우리를 믿음직하다 말하지만, 거울 속의 눈동자는 점점 더 낯선 허기를 띤다.


그럼에도 우리가 이 지독한 연극을 멈추지 못하는 이유는 내가 '척'을 그만두는 순간, 내가 지탱하던 누군가의 세계가 무너질까 두렵기 때문이다. 우리는 서로가 어른이 아님을 눈치채고 있으면서도, 서로의 분장이 지워지지 않기를 기도하며 적당한 거리를 두고 서 있다.


완성된 '척'의 끝에서 기다리는 건 승리가 아니라 지독한 고독이다.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은 아이가 내 안 깊숙한 곳에서 여전히 울고 있는데, 밖에서는 아무도 그 소리를 듣지 못한다.


우리는 그렇게 완벽한 타인이 되어가며 가장 슬픈 방식으로 어른이 된다.


우리가 하는 연극은 비겁한 도망이 아니다. 그것은 내 삶의 소중한 것들을 지켜내기 위해 스스로 기꺼이 무거운 갑옷을 입는 행위다. 어른이 된다는 건, 내 눈물보다 타인의 안부를 먼저 물어야 하는 자리에 서는 법을 배우는 일이니까.


만약 이 글을 통해 당신의 '갑옷'이 너무 무겁게 느껴졌다면, 잠시 그 갑옷의 단추를 풀고 내면의 아이에게 건네고 싶은 한마디가 있을까요? 그 문장을 함께 찾아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