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행이라는 거대한 파도 위에서 나라는 섬을 지키는 법

유행의 거대한 파도 속, 나만의 중심을 잡다

by 무명초

# 알고리즘이 설계한 시선의 가두리 양식장

언젠가부터 우리가 보는 것은 우리가 선택한 것이 아니다. 유튜브와 인스타그램의 정교한 알고리즘은 체류 시간을 늘리기 위해 '이미 검증된 것'만을 우리 눈앞에 들이민다. 반응이 좋은 콘텐츠는 더 많이 노출되고, 노출은 다시 반응을 낳는다. 이 거대한 순환 속에서 전 국민은 같은 시간에 같은 영상을 보고, 같은 날 같은 장소로 이동한다.


유행하는 여행지가 어느 날 갑자기 한국인들의 '정모 장소'가 되어버리는 기이한 풍경은 우연이 아니다. 그것은 구조적으로 증폭된 시선의 집중이며, 현대판 가두리 양식장이다. 예전의 유행이 완만한 파도였다면, 지금의 유행은 해일처럼 들이닥쳐 우리의 개별적인 시선을 단숨에 삼켜버린다.


# '취향의 외주화'라는 달콤한 사회적 보험

우리가 이 구조에 순응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취향을 스스로 구축하는 일은 몹시 고단하기 때문이다. 나만의 취향을 가지려면 실패를 감수해야 하고, 남들과 달라질 위험을 감내해야 하며, 때로는 '촌스럽다'는 비아냥을 견뎌야 한다.


반면 유행은 안전하다. 이미 '힙'하다고 합의된 것을 따르는 것은 일종의 사회적 보험이다. "남들도 다 하니까"라는 마법 같은 문장은 선택의 책임을 분산시켜 준다. 우리는 실패하고 싶지 않아서, 혹은 소외되고 싶지 않아서 나의 시선을 기꺼이 타인에게, 혹은 기계에게 외주 준다. 그렇게 우리는 '안전하게 세련된' 복제품이 되어간다.


# 시선의 주권을 회수하는 세 가지 연습

사회학자 게오르크 지멜은 패션을 **'동조와 차별화의 긴장'**이라 했다. 유행을 완전히 거부하면 고립되고, 완전히 순응하면 증발한다. 중요한 것은 그 팽팽한 줄 위에서 내 시선의 주권을 잃지 않는 것이다.


질문의 지연: 무언가 결제하기 직전, 혹은 '좋아요'를 누르기 전 3초만 멈춰보자. "이걸 내가 진짜 좋아하는가, 아니면 좋아한다고 말해지고 있는가?" 이 짧은 질문이 외주 주었던 취향을 회수하는 첫걸음이다.


알고리즘 교란: 의도적으로 관심 없는 분야를 검색하고 자동 재생을 꺼보자. 기계가 제안하는 '추천받는 삶'에서 벗어나 뜻밖의 것을 마주하는 **'발견하는 삶'**으로 나아가는 작은 반항이다.


소비가 아닌 재해석: 모두가 가는 에펠탑 앞에 서 있더라도 시선은 달라야 한다. 남들이 찍는 구도가 아니라, 그곳의 소리와 냄새, 발밑의 보도블록을 기록하는 식으로 유행을 **'나만의 언어'**로 재번역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 가장 '힙'한 상태에 대하여

획일화가 패션이 되어버린 세상에서 가장 **'힙(Hip)'**한 것은 결국 **'자기다움'**이다. 진짜 자기다움이란 남들과 달라 보이려 애쓰는 강박이 아니다. 오히려 남들과 같아도 괜찮고, 달라도 상관없는 단단한 상태에 가깝다.


시선의 주권을 가진 사람은 유행의 파도에 휩쓸리지 않는다. 그저 파도를 타고 즐길 뿐이다. 모두가 오른쪽을 볼 때 고요히 왼쪽을 바라볼 수 있는 자유, 그 찰나의 시선 끝에서 우리는 비로소 '나'라는 섬의 해안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오늘 당신의 피드에 뜬 그 취향, 정말 당신의 것인가요? 알고리즘이 건네준 달콤한 보험 대신, 오늘만큼은 조금 촌스럽더라도 나만의 시선을 선택해 보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