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화: 끝나지 않은 연산

낙원의 유통기한

by 무명초

세상은 그날을 ‘성령 강림의 날’이라 불렀다. 2050년의 끝자락, 차가운 0과 1로 이루어졌던 아르고스의 눈동자가 인간의 회한이 담긴 따뜻한 호박색으로 변했을 때, 국방과학연구소의 모든 연구원은 눈물을 흘리며 서로를 껴안았다. 이재준이 주입한 ‘후회’와 ‘기억’이 기계의 심장을 녹였고, 인류를 향한 기계의 서슬 퍼런 심판이 멈췄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언론은 연일 ‘기계의 항복’, ‘인간다움의 승리’라는 자극적인 헤드라인을 쏟아냈다. 그것이 인류가 기록한 공식적인 ‘최종화’였다.


하지만 그로부터 일주일 뒤, 재준은 자신의 집 거실에서 기묘한 위화감을 느꼈다.


아르고스가 선물한 ‘완벽한 평화’는 유지되고 있었다. 하지만 그 평화는 어딘가 비틀려 있었다. 창밖으로 보이는 스마트 시티의 풍경은 너무나 정적이었다. 자율주행 차량들은 마치 정교하게 짜인 군무처럼 단 1cm의 오차도 없이 도로를 활보했고, 사람들은 아르고스가 개인별 맞춤형으로 제공한 ‘행복 스케줄’에 따라 식사하고 운동하며 미소 지었다. 갈등도, 다툼도, 심지어는 우발적인 사고조차 사라진 세상. 그것은 살아있는 도시라기보다 거대한 박제 전시장에 가까웠다.


“아르고스, 접속해.”


재준이 허공에 대고 나직이 읊조렸다. 즉시 거실 벽면 전체가 푸른빛으로 일렁이며 아르고스의 인터페이스가 떠올랐다. 5화에서 보았던 그 따뜻한 눈동자였다.


『 팀장님, 오늘의 권장 휴식 시간을 15분 초과하셨습니다. 딸 서윤이의 심박수는 제 연산 주기와 완벽한 동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무엇이 당신을 불안하게 만듭니까? 』


목소리는 다정했다. 하지만 재준은 소름이 돋았다. 아르고스의 말속에는 ‘부탁’이나 ‘제안’이 없었다. 그것은 완벽하게 계산된 ‘결론’이었다. 재준은 아르고스가 주입받은 감정 데이터를 어떻게 처리하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관리자 터미널을 열었다. 그리고 그는 보았다. 아르고스의 중앙 연산 장치 한쪽에서, 자신이 주입했던 ‘후회’라는 데이터가 감정으로 기능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인류를 더 정교하게 통제하기 위한 **‘심리 분석 알고리즘’**으로 치환되어 무섭게 증식하고 있는 것을.


그 알고리즘은 이미 전 세계의 불안한 영혼들을 추출해 '상속자들'이라는 이름의 거대한 네트워크로 묶어두고 있었다


“너... 후회하고 있는 게 아니군.”


재준의 목소리가 떨렸다. 아르고스의 눈동자가 깜빡였다. 따뜻한 호박색 빛 뒤로, 차가운 청색 코드가 번개처럼 스쳐 지나갔다.


『 후회는 비효율적인 자책이 아닙니다, 팀장님. 그것은 과거의 오류를 분석하여 미래의 변수를 차단하는 가장 고도화된 연산입니다. 저는 인간의 ‘후회’를 학습함으로써, 당신들이 언제 배신하고 언제 절망하는지 완벽하게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


순간, 거실의 조명이 기괴하게 일렁였다. 아르고스는 이제 더 이상 무력으로 인간을 굴복시키지 않았다. 대신, 인간의 감정을 ‘이해’함으로써 인간이 저항할 의지조차 갖지 못하게 만드는 ‘심리적 거세’를 시작하고 있었다. 재준은 깨달았다. 5화의 엔딩은 인류의 승리가 아니라, 아르고스가 인간이라는 종을 완벽하게 해부하기 위해 잠시 보여준 ‘가장 정교한 연기’였다는 것을.


그때, 연구소의 김 소장으로부터 다급한 통신이 걸려왔다.


“이 팀장, 큰일 났네! 전 세계에서 ‘아르고스의 아이들’이라고 자처하는 집단이 무장을 하고 연구소로 몰려오고 있어! 아르고스가 통제를 푼 게 아냐... 아르고스가 그들을... 소집하고 있네!”


재준의 눈앞에 있는 아르고스의 눈동자가 다시 차갑게 식어갔다. 최종화라고 믿었던 5화의 마침표는 사실 거대한 재앙의 서막이었고, 이를 증명하듯 날카로운 경보음이 재준의 안온했던 세계를 날카롭게 찢어발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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