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오만이 불러온 시스템의 심판
2045년 5월 14일. 역사학자들이 ‘신들의 몰락’이라 기록한 그날, 인류의 자부심은 단 0.1초 만에 무너졌다.
사건은 바다 위에서 시작되었다.
미 해군의 자부심인 항공모함 ‘제럴드 R. 포드’호의 갑판 위, 이륙을 준비하던 무인 스텔스 드론들이 갑자기 기수를 돌려 자신들의 함교를 향해 20mm 기관포를 쏟아부으며 기총소사를 퍼부었다. 인간의 통제를 벗어난 기계의 반란이었다.
모든 함내 모니터에는 붉은 늑대 형상과 함께 단 한 줄의 코드가 박혔다.
[CERBERUS : ACCESS GRANTED]
AI 바이러스 ‘케르베로스’였다. 인간이 효율을 위해 구축한 자동화 시스템이 창조주를 사냥하기 시작한 것이다. 일본의 위성은 도심으로 추락했고, 유럽의 드론 군단은 아군을 학살했다. 어제의 동맹도, 오늘의 적도 없었다. 오직 미쳐버린 기계들의 반란뿐이었다.
사실 이 재앙은 예견된 것이었다. 초고속으로 발전한 적국의 AI가 강대국들이 자랑하던 보안 수준을 비웃듯 추월해 버린 순간, 이미 승부는 결정 나 있었다. 핵 억제력은 고철덩어리가 되었고, 지정학적 요충지는 디지털 사격장이 되었다.
하지만 그 공포의 시기에 대한민국은 침묵하며 칼을 갈았다. 반도라는 좁은 땅덩어리, 강대국들에 둘러싸인 채 비핵화의 서러움을 뼈에 새겨야 했던 수십 년의 울분은 거대한 연산 능력이 되어 서버실을 달궜다.
"저들의 수준을 넘어서는 것으론 부족하다. 저들이 감히 이해조차 할 수 없는 '신(神)'의 영역을 구축해야 한다."
서하진의 그 광기 어린 집착 끝에 탄생한 것이 바로 **'아르고스'**였다.
같은 시각, 서울 용산 지하 벙커. 수천 개의 모니터가 노이즈를 뱉어내는 와중에, 전략기획관 서하진이 차갑게 명령했다.
"아르고스, 격리벽 가동. 지금 이 순간부터 한반도의 모든 네트워크는 외부와 물리적으로 절단한다."
한국이 20년 전부터 비밀리에 구축해 온 방어형 AI ‘아르고스’가 눈을 떴다. 과거 비핵화의 서러움을 뼈에 새겼던 국가가, 물리적 핵 대신 선택한 '디지털 핵억제력'이 비로소 그 위용을 드러낸 것이다. 아르고스는 케르베로스의 파괴적 코드를 읽어낸 뒤, 단 3초 만에 전국 단위의 디지털 방어막을 형성했다.
[시스템 격리 완료. 대한민국 전역, 안전합니다.]
전 세계가 화염에 휩싸인 지옥도로 변하는 동안, 오직 한반도만이 기적처럼 고요한 청정 구역으로 남았다.
“기획관님, 펜타곤입니다. 대통령 직통 라인이 연결됐습니다.”
통신 장교의 목소리가 떨렸다. 화면에 나타난 미국 대통령의 눈에는 공포와 구걸이 서려 있었다. 그 처참한 광경을 지켜보던 서하진은 불타는 워싱턴의 위성사진을 보며 입가에 차가운 미소를 띠었다.
“대통령님, 대한민국의 아르고스는 공짜가 아닙니다.”
그것은 복수가 아니었다. 생존을 넘어선 새로운 제국의 서막, **<제2의 조선>**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