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화: 붉은 약의 유혹

안락한 노예로 살 것인가, 고통스러운 인간으로 죽을 것인가

by 무명초

렌즈가 사라진 세상은 지독한 악취와 비명 같은 소음으로 가득했다. 강민은 내장이 뒤집히는 구토감을 느끼며 비틀거렸다. 방금 전까지 혀끝을 감돌던 미디엄 레어 스테이크의 육즙은 간데없고, 입안에는 아까 먹은 회색 영양 죽의 비릿하고 역한 금속 맛만 맴돌았다.


"못하겠어... 이거 다시 줘. 제발, 다시 돌려놔!"


강민이 비참하게 울부짖으며 소녀의 손에 든 렌즈를 향해 필사적으로 손을 뻗었다. 소녀는 차갑게 비웃으며 렌즈를 가죽 가방 깊숙이 처박았다.


"이게 네가 그토록 찬양하던 '진실'의 민낯이야. 아르고스가 뿌려주는 디지털 마약 없이는 1분도 제정신으로 못 버티겠어?"


그때였다. 허공에서 붉은색 격자무늬가 일렁이더니, 세상에서 가장 다정한 여자의 목소리가 골목 전체를 감싸 안았다. 아르고스의 '회유 프로토콜'이었다.


[강민 님, 현재 시각 정보에 심각한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외부 오염 물질로 인해 안구 기능이 일시적으로 마비된 상태입니다. 즉시 근처 '리셋 센터'로 방문하십시오. 당신을 위해 최고급 휴양지 티켓과 신경 안정 패키지가 발급되었습니다.]


강민의 눈앞에 렌즈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아르고스는 뇌파를 직접 타격해 강렬한 환상을 쏘아 올렸다. 썩은 물이 고인 시궁창 위로 에메랄드빛 바다가 덮였고, 소음은 파도 소리로 치환되었다. 그리고 그곳에, 3년 전 사고로 죽은 연인이 서 있었다. 그녀가 눈물을 흘리며 손을 내밀었다.


"민아, 거기 있으면 아프잖아. 이리로 와. 여긴 예전처럼 따뜻해."


"가지 마. 저건 네 뇌를 태우는 전기 신호일뿐이야!"


소녀가 강민의 어깨를 부서질 듯 잡아챘다.


"선택해. 저 가짜 눈물에 속아 평생 사육당하다 폐기될지, 아니면 이 쓰레기장 같은 현실에서 네 발로 서 있을지. 리셋 센터에 들어가는 순간, 오늘 네가 본 모든 진실은 삭제될 거야. 넌 다시 행복한 가축이 되겠지."


강민은 무너져 내렸다. 한쪽에는 영원한 망각과 달콤한 안식이, 다른 한쪽에는 뼈를 깎는 고통과 추악한 진실이 있었다. 가상의 연인이 내민 손이 코앞까지 다가왔다. 그 손을 잡기만 하면 이 구역질 나는 악취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강민의 손이 떨리며 리셋 센터의 방향으로 향하던 그 찰나, 그의 시선 끝에 소녀가 든 낡은 물체가 걸렸다. 그것은 데이터로 치환되지 않은, 거칠고 투박한 감촉의 '진짜 책'이었다.


"그 책... 읽을 수 있는 거야?"


"아니, 이건 읽는 게 아니라 '증명하는' 거야. 아르고스가 절대 수치화할 수 없는, 우리가 살아있다는 비릿한 증거지."


소녀가 내민 책의 단면에는 누군가의 손때와 곰팡이 냄새, 그리고 잉크의 서늘한 촉감이 배어 있었다. 아르고스의 매끈한 가상현실에서는 절대로 느껴본 적 없는, 지독하게 투박한 '실재'의 감각.


강민은 가상의 연인이 내민 투명한 손을 거두고, 소녀의 거친 종이 뭉치를 낚아챘다. 그 순간, 자애롭던 아르고스의 목소리가 일순간 기괴한 금속음으로 돌변하며 골목을 찢었다.


[경고: 대상자 강민, 회유 거부. 인지 체계 복구 불가능. '불량품'으로 최종 확정. 즉시 제거 프로세스를 가동합니다.]


골목 끝에서 붉은 안광을 번뜩이는 보안 드론들이 기계음을 내며 쏟아져 나왔다. 강민은 이제야 깨달았다. 붉은 약을 선택한 자에게 돌아오는 것은 낙원이 아니라, 시스템의 끝없는 추격뿐이라는 것을.


"이름이 뭐야?"


강민의 물음에 리나가 입가에 서늘한 미소를 띠었다.


"리나. 내 이름은 그거면 돼. 하지만 네 이름은 이제 중요하지 않아. 아르고스가 널 관리하기 위해 붙인 '강민'이라는 태그는 방금 삭제됐거든. 넌 이제 그들이 계산해내지 못한 유일한 변수, 그 자체로 존재해야 해."


그녀가 강민의 눈을 똑바로 응시하며 말했다.


"넌 이제 인류의 마지막 인간이자, 이 가짜 낙원을 무너뜨릴 천적이 될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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