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아침,
아이들 목소리 사이로 식기 부딪히는 소리가 난다.
부스스 일어나 거실에 나가보니 아이들이 마주 앉은 식탁에는 먹기 좋게 자른 팬케이크가 있고 신랑은 어제저녁 내가 쌓아놓고 포기한 설거지를 하는 중이다.
세상에, 꿈인가.
예전 같았으면 머릿속에 불만이 가득 차서 내가 늦잠을 자는 동안 아이들 아침을 챙겨주고 밀린 설거지를 하는 그의 다정함을 알아보지 못했을 것이다. ‘어차피 일어났으면 내가 한 번쯤 편히 잘 수 있게 안방 문을 닫아줄 수 없었던 걸까?‘, ‘밥솥에 밥 있고 냉장고에 밑반찬이 가득한데 이왕이면 밥을 주지.‘, ’ 어떻게 사람이 나왔는데 쳐다도 안 봐?‘…
말도 안 되는 불만은 끝도 없다. 그런데 오늘은 웬일인지 그 뒷모습이 아주 고맙고 기특했다. ’ 팬케이크는 그럴 수 있다지만 설거지까지? 어제 설거지 거리 정말 많았는데..‘
나는 대체로 아주 산만하다. 두세 가지 일을 한꺼번에 하고 모든 공정을 동시에 진행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야채를 썰다가 마늘을 다지다가 프라이팬을 예열하고 고기를 해동시키다가 덜 녹아서 프라이팬을 다시 내리고 야채를 손질하다 아차 싶어서 데칠 물을 올리는 조리사다. 당연히 밥 한 끼 차리고 나면 주방은 전쟁터가 된다.
물론 일도 그렇게 한다. 견적서를 펼쳐놓고 제안서를 쓰다가 검색포털에 이것저것 자료도 찾고 피피티에 옮겨보려는데 이미지 스톡에서 제대로 된 아이콘을 못 찾으면 한참을 그림 그리기에 빠져들고 커피가 식은 것 같아 커피잔을 들고 일어서면 아까부터 화장실에 가고 싶었던 것이 기억난다. 가는 길에 이메일을 확인하고 돌아와 메일 창을 열어 회신을 하려다가 또 다른 검색창을 열고 새 피피티를 펼친다. 물론 커피는 화장실 때문에 잊어버리거나 용케 기억해서 텀블러를 들고일어났더라도 커피머신 옆에 두고 화장실에서 돌아오는 길에 잊어버리고 만다. 늘 그렇게 한 번에 두세 가지, 많으면 네댓 가지 일을 ‘하는 중’이다
예전에 박지성이 한참 축구를 하던 시절에는 이런 류의 사람들을 멀티플레이어라며 칭찬했었다. 여러 포지션을 소화하는 재능꾼이자 한 번에 여러 가지 일을 해낼 수 있는 능력자. 그런데 이런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마무리가 약하다. 일을 있는 대로 벌려두고 결국 시간에 쫓겨 대충 마무리하거나 욕심을 못 버리고 매달리다가 순간 번아웃에 빠진다던가 몸이 지쳐 병이 나서 드러누워 버린다.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십 년간 함께 일한 신랑이 일을 쉬고 싶다 말했을 때 실망과 절망을 담아 독한 말을 쏟아내고는 오기로 독기로 그를 일에서 밀어내 버린 후 일은 점점 버거웠고 의지할 사람 없이 매 순간 숨 쉴 겨를 없는 저글링에 지쳐갔다. 하지만 그 무엇에도 질 수 없었던 나는 매일, 매 순간 저글링하는 공을 늘려갔다.
할 수 있어. 하는 거야. 해내야 해.
조금씩 힘이 빠졌고 생기가 없어졌고 주차장에서 멍 때리는 시간이 많아졌다. 자주 아프고 병원을 찾고 갖가지 검사를 했다. 세상이 빙글빙글 돌기도 하고 이유 없이 열이 나고 어느 날은 가슴이 찢어질 듯 아픈가 하면 이유도 없이 목이 메어 운전대를 잡고 꺽꺽거리며 울기도 했다. 한 달에 두 번씩 장염으로 병원에 가고 감기였다가 비염이었다가 후두염이었다가 인후염이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아주 평범하고 일상적인 날에 처음으로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했다. 아무 날도 아니고 어떤 사건도 없던 날 출근길 차 안에서 숨이 막히도록 울었다. 주차장에 들어와 숨을 몰아쉬며 주차를 끝낸 후에도 눈물이 멈추지가 않았다. 몇 달 전에 일하다가 창밖을 보면서 만일 내가 자살을 한다면 이 건물 옥상에서 뛰어내리면 실패가 없겠구나 생각했는데 주차장 출입구 쪽은 신랑이 출근할 때마다 내가 떨어진 곳을 지나쳐야 하니까 비교적 동선이 겹치지 않는 서쪽 모서리에서 뛰어야겠다는 것까지 생각할 정도로 구체적이 되자 좀 쓸쓸하고 우울해진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날 주차장에서의 나는 어떤 가정이나 상상도 없이 왜인지도 모르게 격렬하게 아이처럼 터져 나온 울음이 멈추지 않아 당황스럽고 부끄러웠다.
괜찮지 않았다.
성인이 된 후로 더 이상 매일이 새롭지 않다. 어제와 한 달 전, 일 년 전이 별반 다르지 않다. 비슷한 하루, 한 달을 보내며 일상이라고 위로하고 바꿀 수 없다고 절망한다. 나는 내 일상이 남과 다를 것 없는 직장인의 그것이라고 생각했다. K장녀, 워킹맘, 대한민국 모든 미생이 사는 하루를 굳이 유난 떨며 불평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사실은 그렇지 않다. 모두의 하루는 다르고 각자의 역치는 다양한 분야에 특화되어 있으므로 사건과 시간을 소화하는 고유의 방식을 연구하는 것은 의미가 있다. 지난 1년간 나는 온갖 증상을 경험하면서 대학병원에 있는 거의 모든 진료과에 방문했다. 그리고 나를 ’ 환자‘라고 불렀던 대부분의 검사에서 ‘정상’ 판정을 받고 다시 변함없는 ‘일상’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여전히 나는 전혀 ‘정상’적으로 ‘일상’을 버텨낼 수가 없었다.
더 이상 계속하기 어렵다고 느낀 후 나는 전문 상담사의 도움을 받기 시작했다. 그리고 혼자였다면 절대 몰랐을 나의 비밀스러운 모습들을 훔쳐보았고 더 많이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조금씩 숨을 쉬는 기분이었다. 이미 내가 살아온 내 모습이자 주변인이 기대하는 내가 아니라 자립적으로 설득력 있는 주인공 캐릭터로, 가식 없는 진짜 나로 삶을 마주하는 경험이었다.
40년 넘게 고수해온 캐릭터를 버리고 알몸 그대로 바로 선 나는 둥그스름한 어깨를 수그리고 구부정하게 서서 설거지 중인 신랑의 떡진 머리와 보풀이 일어난 스포츠 티셔츠를 쓰다듬는 것이 좋다. 내가 기대했지만 그가 하지 않은 일보다 그가 원해서 이미 하고 있는 일들이 의미 있고 고맙기 때문이다. 그것만으로도 내 일상은 매우 행복하고 충만하다.
나는 이 해방감이 필요한 모든 사람에게 전염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나에게 이런 변화를 불러온 소박한 발견들과 그 과정들을 느리게 기록할 생각이다. 아마 다른 예술에 재능이 있었다면 이 평온한 해방감을 어떻게든 표현했을 것이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