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는 원래 싸운다.
연인은 헤어지고 가족은 등을 지고 부부는 원래 싸우면서 산다. 얼마나, 어떻게, 왜 싸우는지가 다를 뿐 늘 싸우고 화해하고 다시 싸운다. 작년 조사치를 참고하자면 한달에 두번 정도 싸운다고 답한 부부가 가장 많았다. 30년 전에도, 10년 전에도, 작년에도 그 싸움의 이유를 조사했지만 부동의 1위는 성격차이였다.
성격차이는 이혼 사유로도 인기다.
보통 어떤 상황에서 차이점을 발견하기 위해서는 양쪽이 가진 사실자료를 하나씩 비교 분석해야한다. 각각의 길이를 측정하고 같은지, 다른지를 기록하고 색깔을 비교하고 향을 비교해서 각기 다른점을 찾아낸다. 이론적으로는 공통점을 찾는 것이 조금 더 쉽고 차이점을 발견하는 데에 시간이 더 걸린다. 그래서 공통점을 발견하면 사랑에 빠지고 차이점을 인정하며 헤어지는 것이 아니겠나. 하지만 실제로는 사람의 성격에 있어서 차이점과 공통점은 모호하게 마련이라 늘 우리가 같다고 생각했던 부분에서 넘어설 수 없는 차이를 발견하곤 하는 것이 인간관계의 함정이다. (사실 그래서 더 화가 난다) 달콤했던 연애의 기억도 콩깍지 벗고 보면 다가올 불행의 징조에 가깝다.
또 저런다
‘왜 그러지?’ 상황보다 더 화나는 게 ‘또 저런다’ 상황이다. 어른들은 좋아하는 점을 가진 사람보다 싫어하는 점을 갖지 않은 사람과 결혼하라고 말한다. 새로 발견된 단점보다 자꾸 발견되는 단점이 더 거슬리니까. 사람의 습관과 성향이라는 것은 이미 어린 시절에 형성되어 고정되어버리는데 이 콤비네이션이 너무나 다양해서 비슷해 보이는 사람들도 실제로 모아 놓으면 서로 진정머리를 칠 정도로 안 맞는 경우가 많다. (그러고 보면 커플매니저는 극한 직업이다. 불가능에 가까운 일을 직업으로 삼다니 존경한다.) 여기서 ‘모아놓으면’ 에 핵심이 있는데 모아놓는다는 의미는 접촉면을 넓힌다는 의미와 일맥상통한다. 서로 공유하는 것들이 많아지면 상대의 차이를 더 쉽게 발견한다. 그리고 호모 사피엔스에게 상대가 나와 다르다는 것은 상당한 스트레스로 다가온다. 사회화된 이상 우리는 일정한 규칙에 따라 규범적으로 행동해야 하고 그 패턴이 조화로워야 행복하다.
그런데 압뿔사, 저 사람은 커피를 먼저 채우고 얼음을 넣는다!!! 시커먼 커피 방울이 사방으로 튄다!!
그럴 줄 알았어 vs 또 저런다
결혼생활을 이어 간다는 것은 서로의 공유면적을 거의 무한대로 넓혀 가는 과정과 같다. 오랜 시간 상대를 관찰하고 나와 비교하면서 우리는 점차 상대를 아주 속속들이 알게 된다. (아니 안다고 착각하게 된다.) 그의 아주 사소한 버릇들을 간파하고 가끔은 대비책을 마련하기도 한다. 상대의 평소 행동 패턴을 읽어서 이후의 행동을 넘겨짚기도 한다. 그리고 사냥감을 기다리는 치타처럼 웅크리고 있다가 기다리던 재앙이 실제로 일어나면 불같이 덤벼들어 싸움을 시작한다. ‘그럴 줄 알았어!’ 그럼 으례 상대편에서도 익숙한 대사를 뱉는다. ‘또 저런다.’
골백번 고쳐 생각해도 상대의 말은 사실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실이 아니라고 골백번 고쳐 말했고 이성적으로 설명했으며 이미 여러 방법으로 증명했으므로 결코 다시 거론 될 가치가 없는 말이다. 반면 나의 ‘그럴 줄 알았어’는 너무나 사실이기 때문이다. 이미 수천번 충고했고 어느 정도 합의에 이른 적도 여러번이며 왜 그런지도 수차례 토론했기 때문에 결코 다시는 일어나면 안 되는 일이다. 물론 나는 “상대를 너무 잘 알기 때문에” 이럴 줄 알았지만. 과연 이 싸움은 서로 너무 잘 알기 때문에 생길까 아니면 잘 안다고 생각해서 생길까.
통계를 보다가 흥미로운 자료를 하나 더 발견했는데 지난 10년간 전체 살인건수의 약 10%가 부부사이에 일어났다고 한다. ‘그럴 줄 알았어’와 ‘또 저런다’의 반복은 결코 가벼운 일이 아니다. 당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이 두 문장의 콤보 효과는 상당해서 언제라도 폭발할 수 있는 시한폭탄이 된다. 상대방의 ‘또 저런다’ 대신 폭발물 제거에 집중해서 스위치를 끄는 방법을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
사진출처: 2021 코미디 야생동물 사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