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도 나도 가득 차있던 옷장을 비우고 냉장고를 파먹으며 단촐하고 정돈된 삶을 꿈꾼다. 무지 스타일의 꾸밈없는 살림살이와 최대한 장식이 배제된 실용적 소품만 남은 집안 풍경이 '요즘 유행하는' 미니멀라이프의 대표이미지일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살다보면 쉽지 않은 일임이 분명하다. 갑자기 기분이 울적한 날 키우기 어려운 화분을 덜컥 사기도 하고 지나는 길에 본 찻잔이 너무 예뻐서 들이기도 하니까. 그러다 어느날 둘러보면 아이가 생겨서 생각지도 않은 것들이 무더기로 내 집에 들어 앉아 있다. 옷장은 터질듯 하고 화장대엔 잘 쓰지 않는 색조 화장품이 그득하다.
임신말기쯤 정리벽이 도져서 일명 '미니멀라이징'을 시도한 적이 있다. 옷장을 전부 비우고 꼭 필요한 옷을 골라보자 마음먹었었다. 물론 독한 마음먹고 주방 정리도 했다. 신혼 살림부터 7년이 넘게 뚜껑 한번 안 열어보고 싱크대 구석에 쳐박혀만 있던 곰솥도 내다 버렸다. 그래서 미니멀해졌는지 알고싶은가. 글쎄... 쇼핑리스트만 길어졌다.
진짜 미니멀라이프는
내가 가진 물건의 수와는 상관없는
무언가일 것이다.
일전에 집에서 소파와 테이블, 침대마저 비워낸 어떤 이의 영상을 본 적이 있다. 작지만 매우 안락한(?) 고양이 방석과 멍석에 가까운 러그 한 장, 그리고 잠을 자기위한 해먹이 전부인 거실 풍경은 사실 조금 충격적이었다. 거의 강박적으로 모든 물욕을 떨쳐버린 영상 속 주인공의 모습은 마치 수도승에 가까워 보였다. 등받이가 없는 의자처럼 기본적으로 '집'이라는 공간이 주는 안락함이 사라진 그저 '비워진' 공간에서 철학보다는 압박이 느껴졌다.
모두가 자기만의 이유가 있겠지만 모든 것을 비워내야 삶이 깨끗해질듯 선전하며 옷장을 비우고 그릇을 줄이고 가구마저 없애버리는 모습은 비우는 행위가 극단적으로 강조된 채로 여기 저기서 점점 더 자주 더 많이 보인다.
기계적으로 물건의 수를 줄이면서 미니멀을 외치는 극단적 미니멀족의 집착때문인지 언젠가부터 미니멀라이프에 적지 않은 반감이 생겨버렸다. 집이란 안락하고 북적거려서 금방 부비대고 싶은 집구석이어야 한다. 비가 오는 날에도 한결 따뜻한 느낌을 주는 나무 식기와 물 말아 후루룩 먹을 때도 기분나게 해주는 파란 장식이 들어간 금속 식기가 다그닥 다그닥 그득한 요란하고 복잡한 싱크대 첫째칸이다.
미니멀라이프는
꼭 필요한 것을 갖는 삶이다.
이미 가진 물건을 버리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은
새로운 물건을 들일 때 신중하게 결정하는 것.
그래서 오늘도 나는 장바구니를 채운다.
애기 둘에 워킹맘인 나는 외출이 쉽지 않은 처지라 온라인 구매가 대부분이다. 작게는 생필품부터 아이옷, 그릇, 가구까지 모두 온라인 구매를 선호한다. 하지만 온라인 구매는 구매과정이 쉽다보니 충동구매 하기가 훨씬 쉬운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장바구니에 담아두고 며칠을 그냥 보내보는 실험을 한다. 필요한 것을 리스팅해 두고 물건이 없는 상태에서 며칠을 보내보는 것이다. 큰 불편함을 느낄 때까지 결제를 미뤄두고 잊어버린다. 신기하게도 그러다 보면 더 나은 대체품을 찾기도 하고 때로는 전혀 불편없이 지내다 영원히 잊혀지기도 한다. 생활에 불편을 느낄 수 있는 강제적인 미니멀리스트보다는 현실적 타협안이라고 할 수 있겠다.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더 삶의 중심을 찾고싶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중요한 것과 필요한 것의 차이를 배워가면서 물건과 관계의 무게를 조금은 판단할 수 있게 된 것도 같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장바구니를 채우는 중이다. 일상에서 쌓이는 수도 없는 관계와 감정들을 선별하고 연구하면서 물질적 미니멀리스트보다 더 중요한 진짜 미니멀라이프를 찾아보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