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사장님은 모른 척 할까?

by 안이온


‘저 퇴사할래요.’
일년에도 몇번씩 듣는 이야기이다. 이유는 다양하다. 다양하면서도 일관적이다. 인간관계, 업무배정, 자기발전 등이 공통된 퇴사사유이다. 처음 듣는 이야기가 아닌데도 나는 퇴사통보에 익숙해지지 않는다. 이 말은 매번 내 인생을 뒤돌아보고 내 모든 결정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기껏해야 손바닥만한 사무실을 경영할 뿐인데 마치 모든 상황을 컨트롤할 수 있는 사람처럼 ‘그때 이렇게 했어야 했나, 그러지 말 것을 그랬나, 그럼 결과가 달랐을까’ 생각에 빠진다.


사장은 이기적이다.

사업주는 백퍼센트 이타적이어야하기 때문에 누구와 마주 서도 이기적일 수 밖에 없다. 개인의 이익을 앞세우면 회사는 산으로 가기 때문에 다수를 위한 결정을 하고 비즈니스의 연속성을 앞세운다. 여기까지가 내가 늘 생각하던 리더의 선택이었다. 그런데 오늘은 조금 다른 생각을 했다. 어쩌면 모두를 위한다는 변명을 하며 내가 원하는 선택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과연 조직을 위한 개인의 희생은 타당한가. 개인을 희생시키는 조직은 건강한가. 그저 편리하고 쉬운 결정을 내리는데에 익숙해진 것이 아닌가.


어떤 상황에서든 좌우를 선택하는 결정을 내리기 곤란한 이유는 결국 지금의 결정이 미래에 어떤 영향을 줄지 모르기 때문이고 누군가에게는 피치 못하게 불이익을 안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정을 언제까지나 미룰 수는 없기 때문에 결정을 직업으로 분류해서 경영자라는 포지션에 묶어두었다. 현명한 척, 성숙한 척 연기하지만 사장도 그저 사람이다. 네로황제가 미신을 신봉한 것도, 클레오파트라가 낭군에게 의존한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고 생각하는 이유이다. 옳고 그름을 떠나서 시대의 리더에게 연민을 느낀다.


모두를 공감하는 것은 공감하지 않는 것과 같다.

나는 대체로 사람들을 내 방식대로 이해한다. 이해하려고 노력하기만 하면 그들의 구구절절한 설명없이도 상황과 입장을 나만의 논리로 이해할 수 있다. 그래서 갈등상황이 생겼을 때, 이탈자가 생겼을 때 대부분을 양측 각각의 입장에서 해석하고 이해하는 편이다. 그러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모두를 이해하는 것은 아무도 이해하지 못 하는 것과 같다.’ 영원히 굴속에 갇힌 사자의 굶주림과 사자굴에 버려진 노예의 절박함을 이해한다는 모순은 사자와 노예, 양 그룹을 철저히 무시하는 발언이 아닌가. 어느 편에도 서지 않고 누구의 대변도 하지 않는 편리한 선택을 함으로써 마음의 평화를 얻는 비굴한 모습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자리에 서야한다.

북극곰의 눈물 촬영에 나선 무한도전 팀은 갈비뼈가 앙상한 북극곰에게 먹이를 주지 않았다. 사랑스러운 다람쥐를 더 많이 보기 위해 야생의 굶주린 포식자를 사냥할 수는 없다.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생태계 최상위 포식자인 인간이 누군가의 편에 서는 순간 이 생태계는 순식간에 위태로워진다. 누군가는 피를 흘리고 누군가는 배를 불리는 현장을 묵인하며 자연의 부산물을 챙겨 삶을 이어가는 것이 인간이다. 자연의 섭리이고 모두의 생존을 위한 선택이라고 말한다. 반박할 수 없는 사실임에도 여전히 비윤리적이고 비겁하다.


매일 해서는 안될 결정들을 하고 해야할 결정들을 미룬다. 실수와 실패의 연속이고 매순간이 회복의 노력으로 채워진다. 오늘 내가 내린 결정들은 과연 옳았을까. 다시 생각해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일은 어떻게든 그 결정이 옳은 것이 되도록 만들어야만 하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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