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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놀낢 Mar 30. 2022

35_고집불통 마흔살

고집불통이다.
말이 안 통한다.
앞뒤가 꼭 막혔다.


마흔 넘어서니 심심치 않게 듣는다.

불혹이 괜히 불혹은 아닌가 어느 정도 세상을 이해한다 싶으니까 ‘안물안궁누구 말도  듣고 내가 만든 방안에 틀어박혀버렸다. 어짜피 어떤 선택을 해도 결과가 아무리 많이 달라져도 삶의 본질은 거기서 거기서 거기니까. 마치 가수마다 고유의 분위기가 있어서 무슨 노래를 해도 목소리에 중화되는 것처럼 삶도 아무리 많은 경우의 수를 만나도 주인공이 같으니 결국 비슷하게 흘러간다는 말이다. 아이유가 댄스곡을 부른다고 블랙핑크같이 되지 않고 화사가 동요를 불러도 섹시한 것과 같다. 결정과 선택은 생각보다 중요하지 않다.


결국은 태도와 방법이다.

‘서른이 되기 전에, 마흔이 되기 전에,…’ 생애 주기별로 컨텐츠를 엮어서 내놓는다. 나이는 숫자일 뿐인데 계절이 몇십번 바뀌는지 세어서 의미를 부여한다. (심지어 어떤 나라는 계절이 없는데도) 모두가 같은 주기로 나이를 헤아리고 불변진리로 받아들인다. 하지만 과연 나이라는 것을 그렇게까지 신봉할 가치가 있을까. 나이의 의미는 사람들이 나이에 대해 취하는 태도에서 온다. 스스로, 또는 타인의 나이에 대해 어떤 입장을 취하느냐에 따라 상대에 대한 기대와 반응들이 결정되고 그 연쇄반응들로 둘 사이의 관계가 형성된다. ‘내가 나이가 많으니 형이라고 하자.’ 라고 결정했다고 해서 형이라 불리기로 한 사람이 동생을 돌보고 명령하는 관계로 정착되는 것이 아니다. 이는 매번 반복적으로 어떤 태도를 취했는가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다.



나는 스스로 타인의 의견에 개방적이라고 생각했다.  다른 사람에게 조언을 구하고 도움 받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을  바운더리 안에 놓기로 결정한 셈이다. 그러나  결정과 별개로 다른 이들의 의견에  회의적이고 심지어 건성 건성 듣는 시늉만  때가 많다. 그러니 결국 누구의 조언도  울림을 주지 못하고 주변에 도움되는 사람이 없다고 한탄한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주변에 조언하기를 아주 좋아한다. 어렴풋이는 알고 있었지만 글로 옮겨놓고 보니 더욱 꼰대스럽다. 이렇게 불혹이 되고  다른 인생의 스펙트럼을 깨닫는 모양이다.


40대에는 주변 인맥을 정리해야한다고들 말한다.

그런데 사실 주변의 40대만 봐도 그렇게 노력해서 인간관계를 정리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나이와 비례해서 관계망은 좁아든다. 요즘 윤여정 배우가 글로벌 호감녀로 떠올랐다. 그녀의 호방하고 시원한 말사위가 더없이 매력적이기는 하지만 단지 그것만으로 그녀의 인기를 설명할 수는 없다. 그녀가 지구촌 거의 모두의 공감을 얻는 이유는 그녀의 도가 한결같기 때문이다. 젊디젊은 빨간머리 연반인을 만났을 때도, 국민 유재석을 만났을 때도, 오스카 시상식에 섰을 때도 그녀는 그저 당당하고 쿨한 할머니이다.


우리는 살면서 몇가지 큰 실수들을 한다.

기억할 수 있는 것만 세어도 꽤 많다. 하지만 우리의 실수들은 분명 어느 한 순간의 선택과 결정에 대한 평가이다. 그래서 ‘실수’라고 이름 붙일 수 있는 것이다. 이제 불혹이 넘어 고집불통이 되어보니 알겠다. 이런 실수들에 너무 연연하지 말자. 물론 쉽지 않은 경우도 더러 있지만 실수는 노력으로 바로 잡을 수 있다. 오히려 답답할만큼 견고하게 내 고집을 쌓자. 삶과 사람에 대한 태도를 가다듬고 흔들리지 않는 나의 윤리기준을 만들어 가는 것이 지금 할 일이다. 어떤 것에도 현혹되지 않는 기준을 만들어가다보면 언젠가는 하늘의 뜻을 이해하는 날이 온다고 하지 않는가.

아직 지천명에 닿지 않아 모르겠지만 불혹까지는 맞아떨어졌으니 공자님 말씀을 한 번 믿어볼 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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