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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놀낢 Mar 24. 2022

32_멀고 먼 부부사이


결혼하고 나면 부부는 사생활을 공유한다. 다시 말해 공적인 생활은 독립적으로 유지된다.  다시   말하지만 모든 관계는 결혼 전과 변하는 것이 없다. 나만, 우리만 변한다.  사실만 정확히 이해하면 이후에 일어나는 모든 오해와 갈등을 설명할  있다. 결혼한 후에는 친구를 만나도 예전같지 않고 나의  반려자는 결혼과 동시에 변절한  같다. 나는 변한 것이 없는데  삶은 송두리째 변해버려서  세상에 홀로 버려진 것처럼 적응하느라 숨이 차다. 아무것도 모르는  무심한 반려자가 원망스럽기만 하다.



신혼이야기냐고? Nope. 이제 결혼 십년차를 맞는 숙련자의 솔직한 심정이다. 여전히 결혼생활은 낯설기만하고 반려자는 사랑스럽다. 하하. 나같은, 나의 반려자를 닮은 아이를 둘이나 가졌고 시댁과 친정을 오가며 두 버전의 가족을 가진 지금도 결혼식을 준비하며 고군분투하던 새색시와 전혀 다르지 않다. 조금 발전한 것이 있다면 서로의 취향차이가 더 확고해졌고 각자의 영역을 인정하게 되었다는 것 정도이다. 싸우고 지치고 실망하기를 여러차례 넘기면서 어느 지점에서는 우리의 다름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싸움의 대부분은 상대가 나와 같지 않다는 것을 원망하는 데에서 시작된다. 나와 같은 방식으로 사랑하고 나와 같은 속도로 사랑하고 내가 아는 나를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화를 낸다. 나의 순수하고 낭만적인 모습을 알아봐 주고 사춘기 소년처럼 꾸밈없이 격렬하게 사랑하기를 기다리다가 어느  나름의 신뢰를 담아 군더더기 없이 담백한 고백을 하는 그에게 실망한다. 반려인이 나의 지성과 아량을 존경한다고 말할 때의 허탈함과 민망함은 아주 오랫동안 우리의 관계의 저주가 되었다.


우리는 스스로의 어떤 면은 과소 평가하고 어떤 부분들은 부풀려 생각하며 자기연민과 자기애를 반복하며 살아간다. 홀로 있을 때는 어려움없이 그날의 무드에 충실할 수 있다. 그날에 어울리는 사람을 만나고 마음껏 분위기에 취해도 된다. 하지만 결혼을 하고 반려의 삶이 생겨버리면 조금은 stable한 반려시간이 필요하다. 나의 반려자를 위한 배려이자 예의가 있는 공백. 그래서 부부는 말을 아끼고 천천히 멀어진다. 상처주지 않기 위해서 그리고 상처받지 않기 위해서 무색 무취의 중립공간을 두고 무중력 상태의 공유시간을 더 자주 더 길게 갖는다. 언제부터인가 서로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는 대신 아이들 이야기에 열을 올리고 말도 안되는 오늘 뉴스 따위를 들먹거리다가 각자 잠자리에 든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우리는 묘하게 조금 다른 방식으로 여전히 서로를 사랑한다. 자기 영역을 지키고 실망할 기회를 줄여가는   권태기가 왔다거나 마음이 멀어진  같지는 않다. 물론 주기적으로 서운하고 화가 나지만 그런대로 서로 길들여지고 맞춰가면서 자기 자리를 찾는 중이다. 부부는 물리적으로 너무 가깝기때문에 감정적으로 거리를 두고 그리워하는 연습을 해야 지치지 않는다. 그래서 그런가 결혼한 지인들과 자주 그런 이야기를 한다. 남편이랑 연애만 하고 싶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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