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식구는 3월에 아주 바쁘다.
신랑과 첫아이 생일이 3월이고 고객사들이 벤더 소싱을 하는 것도 대부분 3월이다. 그리고 3월이면 두 아기들이 각자 학교에 가고, 유치원에 가는데 초보 학부형은 정작 학생들보다 더 긴장된다. 학부모 대표 선거에 녹색 어머니회..?! 그래도 작년까지는 착실히 3월에는 양가 부모님을 모시고 큰 아기 생일 파티를 했었는데 올해는 초등학교에 가는 거대 이벤트가 있었는데도, 아니면 정확히 그 이유에서, 미리 챙기지를 못 했다. 어머님도 코로나만 아니었으면 우리 아가 입학식은 꼭 보러 갔을 것이라며 아쉬워하시는데 그 서운함이 자꾸 마음에 걸려서 짧은 여행을 하기로 했다. 어느 작가가 책 머리에 그런 문장을 썼다. “엄마가 차려준 밥을 먹을 기회가 100번도 안 남았다.” 차갑고 무서운 말이다. 하지만 사실이다. 시댁에는 자주 가도 일년에 서너번 가는데 신랑은 어머님이 차려주시는 밥을 100번은 고사하고 50번은 볼 수 있을까.
정원이 있는 독채를 하루 빌렸다.
그래봤자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아버님께서 운전해서 오실 수 있는 거리에 있는 교외의 작은 집을 빌려서 하루저녁 밤을 함께 보내는 게 다 였다. 아이들은 가자마자 정원을 뛰어다니면서 소리를 질렀고 아버님은 아직도 뒤뚱거리는 작은 아기 손에 이끌려서 구부정한 자세로 계단을 오르 내리고 진땀을 흘리셨지만 목소리에 기운이 넘치셨다. 무뚝뚝하고 표현이 적은 분들이지만 나는 두분의 다정하고 순수한 성정을 좋아한다. 저녁에 다같이 둘러앉아 모닥불을 피워놓고 마시멜로우를 구웠다. 아기들과 꼭 해보고 싶은 아주 로맨틱한 저녁놀이여서 거의 꿈길을 오가는 둘째도 끌어 안고 매운연기를 내는 모닥불앞에서 생일 초를 켰다. 모두 함께 생일 노래를 보르고 큰 아기가 촛불을 껐다. 그리고 자랑스러운 초등학교 입학을 축하하며 ‘초등학생’을 연호하고 이어서 할머니의 댄스 세레모니까지 이어졌다. ‘딸기베리, 블루베리, 딸기베리, 블루베리’ 아무 뜻도 없는데 중독적이기도 하고 알수없는 행복감을 주는 할머니의 주술같은 세레모니에 모두가 웃음을 멈추지 못 했다.
아주 소박하고 유쾌한 잠깐이었다.
꽃다발을 받자마자 숨을 한움큼 들이쉬는 이유는 바로 그 순간만 꽃 향기를 음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조금 더 들고 있으면 금방 향기에 익숙해져서 향을 맡을 수 없다. 방 안에 꽃을 꽂아 두었을 때도 마찬가지다. 꽃이 집안에 있다는 것조차 자각하지 못하다가 갑자기 꽃향기가 훅 들어올 때가 있다. 분명히 꽃병은 며칠 째 식탁위에 있었는데 어느 순간에만 희미하게 느껴지고 곧 사그라든다. 행복이란 것이 그렇다. 늘 멀지 않은 곳에 커다란 꽃병이 있는데 그것을 감상할 줄도, 감사할 줄도 모르고 시간만 보낸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아주 희미한 향기를 느끼고 ‘아, 꽃이 있었지’라며 당연한 장식품인 양 잠시 눈길을 멈췄다가 다시 조금전까지 하던 일에 몰두한다. 대화 중이었을 수도 있고, 청소 중이었을 수도 있다. 아무튼 다시 꽃병따위 몰랐던 순간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꽃병이 있음을 알아차리고 이따금씩 꽃잎을 감상하고 꽃말을 되새기며 감상에 젖는 일은 아주 드물다. 만일 그렇다면 분명, 그 이후의 청소는 더 행복하고 보람될텐데. 행복은 가꾸고 노력하는 사람들만 느낄 수 있는 감정이다. 시든 꽃잎을 정리하고, 매일 신선한 물로 바꿔주고, 철 따라 나오는 예쁜 꽃들을 더하면서 화병이 비어있지 않도록 노력해야한다.
딸기베리 블루베리
내 인생의 가장 크고 예쁜 꽃들은 우리 아가들이다. 아이를 낳아 길러보지 않은 사람은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그저 아이들의 얼굴을 떠올리거나 이름석자를 발음하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차고 눈물이 차오른다. 매일 아침 먼저 일어난 우리 아가가 내 머리맡에서 놀고 딩굴어서 머리카락이 당기는 느낌을 참으며 자고 있는. 참다 못한 아가가 내 머리를 끌어올린다. ‘이제 일어나.' 일찍 잠자리에든 아가가 완전히 충전된 모습으로 나를 반긴다. 너무 너무 예쁘고 사랑스럽게. 뽀얀 살결이 옹골차게 올라붙은 볼따귀. 오물거리는 입술. 머리를 좌우로 갸우뚱갸우뚱 애교를 부리면 너무 행복해서 손끝부터 녹아내릴 것만 같다. 모르는 척 크게 기지개를 켜고 침대머리에 앉으면 아가가 달려와 딸랑 업힌다. 어찌나 야무지게 업히는지 내가 팔을 감싸 안아주지 않아도 떨어지지 않는다. 그렇게 몇 발짝 걸어서 거실에 나가 쇼파에 나란히 앉아서 주말 아침을 연다. 돌이켜보면 첫째 아기도 똑같은 아침을 선물 했었는데 이제는 꽤 컸다고 거실에 앉아서 안녕하며 우리를 맞아준다. 내 딸기베리와 블루베리.
김연수 작가는 글을 쓰는 일 자체가 나를 위로하는 작업이라는 말을 했다.
어쩌면 너무 빠르게 라이브를 달리느라 감상하지 못 했던 마이너리티 모먼트를 글로 써내려 가면서 천천히 곱씹어 내는 과정이 삶의 여유를 조금은 되찾아주는 것 같다. 내일 아침에도 우리 아가는 오늘 아침과 정확히 똑같이 머리채를 당기고 볼을 부비면서 그 무책임한 웃음을 지을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눈물 나도록 비현실적인 행복한 순간이다. 잠이 깨어서 울지도 않고 오직 나에대한 사랑으로 가득 찬 얼굴로 오직 내 사랑만 구하는 딸기베리 블루베리 모먼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