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병이 정식으로 질환이 될 만큼 화가 많은 나라가 우리나라다. 뒤집어 말하면 우리는 일상적인 화를 참느라 병이 되는 사회에 산다. 며느리라 참고 가장이라 참고 장남이라 참고 막내라서 참고 선배라서 참고 신입이라 참고 사장이라 참고 아무도 아니라서 참는다.
말의 품격, 기분이 태도가 되지않게, 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법…
인기를 끌었던 베스트셀러 도서의 제목만 봐도 우리가 얼마나 남을 의식하고 조심하며 사는지 보인다. 남들에게 어떤 평가를 받을지에 지나치게 집착하고 괴로워한다. 오디션프로그램의 유행 이면에는 그런 심리가 깔려있다. 셀수 없이 많은 사람들의 비평과 평가에 내둘리는 삶에서 벗어나 마음껏 다른 사람을 평가하고 비판하는 해방감이다. 부모님께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고, 직장에서 능력으로 인정받고, 친구들에게 좋은 사람이고 싶은가. 좋은 목표라고 말하겠다. 다만 그것의 성공과 실패를 판단하는 사람이 누구여야하는지 생각해 보기를 권한다.
우리 집 아이는 마른편이다. 그래서 나는 간식을 종류별로 사서 채워놓는 엄마가 되었다. 하지만 아이는 매번 집에 먹을 것이 없다고 불평한다. 자기가 고른 것이 아니면 크게 매력이 없나보다. 사람은 분명히 선택을 즐긴다. 완벽한 커스터마이징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가장 기호와 가까운 것을 선택하기 위해 노력한다. 포르쉐가 왜 사랑받겠는가. 당신이 삶에서 원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을 스스로 만들어내야 한다. 다른 사람은 그것을 당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당신이 원하는 만큼 줄 수 없기 때문에 수백개를 얻어도 만족하지 못할 것이다. 특히나 그것이 감정적인 영역에 있다면 더욱 그렇다. 인정받고 싶다면 스스로가 만족할 만큼 노력하고 때가되면 스스로 성공을 인정하고 행복해지자. 나의 노력과 성취는 오롯이 내것이고 이를 백프로 이해하지 못 하는 사람들이 평가하게 내버려 두어서는 안된다.
우리 세대는 어린시절부터 나보다는 남을 먼저 배려하는 것을 미덕으로 배웠다. 어쩌면 그래서 다른 사람의 이목을 신경쓰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답답하고 고루한 그 사고방식을 사랑한다. 나보다 다른 사람을 먼저 배려하는 이타주의는 나를 낮추고 남을 높이는 것으로 공자도 예수도 간디도 동의하는 선한 행동이 아닌가. 하지만 이런 절제와 미덕의 태도는 삶이 길어질 수록 감정적 피로를 가중시킨다. 사회가 이를 강제적으로 요구할 때는 더 빠르게 지친다. 그래서 이 시대에는 꽤 많은 사람들이 피곤한 이타주의에 반기를 들고 스스로 마음챙김에 나섰다. 그런 움직임 자체는 응원하는 마음이 더 크다. 하지만 본인의 마음챙김에 다른 이를 희생시키지 않는 방법을 택하기 바랄뿐이다.
마음챙김의 역사는 생각보다 길다.
Y2K부터였나. 세기말 정서가 커지면서 솔직함이 미덕으로 떠올랐다. 그러나 솔직함에는 크나큰 함정이 있다. 본인의 리듬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고 이에 맞추어 남을 대하는 것이 솔직한 것이라 믿는 것이다. 나는 종종 면접자리에서 본인의 솔직함을 장점으로 어필하는 사람을 보는데 결단코 그런 이들을 채용하지 않는다. 본인의 타고난 성향과 그때 그때의 기분을 주변에 모두 전달하겠다는 엄포로 들리기 때문이다. 솔직함과 정직함은 매우 다르다.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 더 성숙한 형태로 사회는 마음챙김을 권하기 시작했다. 스스로 스트레스를 관리하고 자기 감정을 위로하는 행위는 외부접촉이 현저히 줄어들어 버린 현대인에게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나만을 위한 '솔직한 마음챙김'은 경계하라고 말하고 싶다. 옳은 표현일지 모르겠지만 스스로의 마음챙김을 위해 외부로 부정적 에너지를 발산해서는 안된다는 이야기를 하고싶다.
가끔은 이기심이 요구된다.
아직도 고루한 사고방식을 고수하는 다수는 맡은 의무를 다 하기 위해, 더 잘 하기위해 안간힘을 쓴다. 헐거워진 자기애는 접어두고 나의 일탈이 불러올 영향권 안에 있는 사람들을 배려한다. 그렇게 탕약처럼 속을 달이며 밤잠을 설치고 종종거리는 아침을 맞는다. 판단을 흐리고 내 인생을 돌볼 겨를이 없다고 느낄 때, 무언가가 내가 앞으로 나가는 것을 방해할 때는 빌어먹을 이타심을 조금 가둘 필요가 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이기심을 부려보자. 지나치게 많이, 혹은 부정적인 방향으로 사용하지만 않는다면 이기심을 나쁘게 해석하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의느님이 보틀리늄톡신을 사용하듯이, 한의학에서 벌침을 사용하듯이 조심스럽고 주의 깊게 이기(利己)를 생각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