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부부는 일년에 한 두번씩 각자 혼자만의 휴가를 갖는다. 결혼이라는 것을 한 이후로 묘하게 가족에 얽메이게 되는데 며칠간 강제적으로 모든 관계를 차단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 부담감을 해소하는 데 적잖이 도움이 된다. 내 마지막 휴가는 지난 겨울이었는데 경주 보문단지 근처 커피숍에서 들은 옆 테이블의 대화가 생생하다. 중년의 여성 세 분이 단정하게 앉은 자리에서 서로 근황을 묻는 대화였는데 한 여성은 어머니 간병이야기를 전했고 또 한 여성은 아들 수능 준비 이야기를 했고 마지막 한 사람은 홀로 사시는 시아버지 이야기를 했다. 서로 위로의 말을 하고 나름의 노하우를 알려주기도 하면서 도란도란 이야기가 깊었다. 다들 본인 몸도 어디가 고장나고 아프기 시작하는 나이인데 위로는 연로하신 부모님, 아래로는 독립 못 한 자식들을 보살피느라 처연한 신세라고 입을 모았다. 가만 듣자니 마치 십년 후의 내 모습같이서 어딘가 다정하고 한 편으로는 측은해져서 모처럼의 휴가 기분을 유지하기 위해서 일찍 일어섰다. 아마 혼자가 아니였다면 그 대화를 끝까지 들었을 리도 없고 내 현실에 비추어 더 깊은 생각에 빠지지도 않았을 것이다. 양옆에 아이들이 치데고 휴대폰 넘어 다른 세상에 빠져든 신랑과 함께였을테니까.
결혼이 늦어지면서 출산도 늦어지고 있다. 서른 전에 결혼하면 이르다고 말하고 결혼하자마자 아이를 갖지 말라고 한다. 하지만 마흔쯤되면 ‘아차’싶다. 끝이 안 보이는 육아도 그렇지만 예상치 못한 부모님의 병치레가 더 당황스럽다. 게다가 부모님이 양가에 다 계시니 어느 순간에는 겁이 덜컥 나는 것이다.
길어진 유행병으로 휴가다운 휴가를 못 간지 꽤 되었다. 작년 시아버지 칠순은 조촐한 가족 식사도 인원 제한에 걸릴까 조마조마 하면서 어렵게 치뤘는데 다행히 올해는 유행병 확산과 상관없이 외출이 좀 더 자유로워져서 가족 휴가를 계획했다. 우리집 둘째는 19년 말에 태어나 흔히 말하는 코로나 베이비라 뉴스에서 연신 떠들어대는 것처럼 발달이 느린데 최근 어린이집에 다니면서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그래서 이참에 아이에게 외부 자극을 많이 주고 워킹맘이라 아이를 챙기지 못한 죄책감도 털어볼 요량이였다. 회사는 신랑에게 맡겨두고 친정부모님과 경주, 시부모님과는 양양 여행 계획을 세웠다.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한 첫째 아이 방학이 가득 차는 일정으로.
먼저 떠난 경주는 사실 실망스러웠다. 직업이 병인지라 경주로 향하는 날도 충주에서 점심을 먹고. 문경 오미자 터널을 관광하며 경주까지 여유롭게 갈 계획을 세웠는데 칠순 부모님은 아이들보다 훨씬 먼저 지쳐버렸다. 결국 충주에서 점심을 먹은 이후로 고속도로를 벗어나지 않았다. 다음 날도 긴 도로주행에 이은 여독으로 하루를 온전히 숙소에서 쉬었고, 20분 거리의 불국사에 잠시 다녀온 날은 더위에 지친 노부부와 하루를 꼬빡 쉬어야했다. 다행히 얌전한 아이들은 숙소의 작은 풀에서 신나게 놀아주었지만 아이들에게 추억을 쌓아주고 싶은 엄마 마음은 아쉽기만 했다. 오느 정도 단념하고 근처 해변과 베이커리를 구경하면서 여유롭게 보냈지만 어쩐지 너무 빨리 늙어버린 부모님이 서글펐다.
건강하실 때 더 자주 다닐 걸..
늘 든든하게 내 가방을 들어주고 절대로 운전대를 양보하지 않던 아버지는 얌전히 조수석에 앉아 자주 잠에 빠졌고 계단이 많은 숙소에 짐을 들고 올라가지 못 했다. 얼마 전 폐섬유화진단을 받은 후로 부쩍 더 무기력해진 모습이 무척 낯설었다. 늘 생기에 가득 차 가만히 앉아 있으면 안 되는 사내였는데 이젠 티비를 보며 꾸뻑 꾸뻑 조는 노인이 되었다.
‘애 둘 낳더니 너도 많이 변했다.’
바베큐 숯불 앞에서 아버지가 말했다. 모두가 낮잠 자느라 숙소가 조용해서 아이들이 번잡스럽지 않을 때 불을 피워야 겠다 싶었기 때문에 ‘숯불 피우는 법’을 검색해서 토치를 켜고 불을 피워놨는데 결혼하기 전까지 라면도 안 끓여 먹던 딸래미만 기억하는 아버지는 장거리 운전에 아이들 밥 챙겨 먹이고 짐꾼을 자처하는 마흔 넘은 딸래미가 낯설었을지 모르겠다. 마치 내게 칠순의 아버지가 그렇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