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레니얼시대 세기말 사람들을 현혹했던 웰빙은 잘 먹고 잘 쉬는 웰빙은 열심히 일한 자들에게 떠날 기회를 줘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어느새인가부터 우리는 휴식을 넘어 안식을 찾는다. 어짜피 떠날수도 없는데 하마터면 열심히 일할 뻔 했다고 죽기 전에 떡볶이는 먹잔다.
위로받고 치유받고싶은 사람들은 어디가 얼마나 망가진 것일까. 인류 역사의 어느 때보다 살기가 좋아졌지만 문명이 발달할 수록 개인의 삶이 감당해야할 부담의 무게는 어마어마하게 커지고 있다. 거의 모든 것이 가능한 세상에서 상대적으로 많은 제약을 안고 살아야하는 평범한 사람들의 스트레스는 어떤 방법으로도 쉽게 해소되지 않으므로.
얼마전 뉴스에서 크게 보도되었던 20억짜리 희귀질환 치료제 이야기가 우리의 현위치를 여실히 보여준다. 분명히 치료약이 있지만 손에 잡을 수 없는 평범한 사람들의 좌절감과 패배감을 우리 모두가 공감했기 때문에 말 그대로 발병율이 극히 낮은 ‘희귀한’ 질환에 대한 일이었는데도 상당히 크게 화제가 된 것이 아닐까. 사실 우리들은 하루에도 수십번씩 그 박탈감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살고 있다. 만원버스 유리창 너머로 즐비한 벤츠와 비엠더블유를 보는 일은 이제 무던해져 버렸고 미디어에 뿌려지는 연예인들의 호화주택이며 명품 소지품들은 미술관 전시품처럼 감상하고 지나치는 것이 속편하다.
그래서 사람들은 삶을 더 낫게 만들기 위해 그들이 실제로 가질 수 있는 것을 찾아나서고 있다. 영원히 가질 수 없는, 혹은 스스로 그렇게 규정한 것들이 많아지고 있기 때문에 이에 비례하는 좌절과 실망을 감당할 방법임과 동시에 그들이 실제로 얻을 수 있는 소확행에 열광하는지 모르겠다.
사람은 결국 병들어 죽는다. 운이 좋은 이들은 나이가 들어 병을 얻고 대게는 천천히 여러가지 병에 순차적으로 노출되면서 몇가지 병으로 천천히 죽어간다. 죽음은 갑자기 온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모든 순간 우리가 죽어가고 있는 증거를 몸으로 느끼며 살고 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실제로 그 끝을 만나게 되는 것 뿐.
it’s my life, all of it, including the end
good doctor/season4/ep.16
굿닥터 속에서 죽음이 예고된 삶을 사는 노파는 의식이 또렷할 때 자기 선택에 따라 죽고싶었다. 파티를 열에 생의 마지막을 함께한 모두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고요한 밤을 맞이하고 싶었다. 그야 말로 인생은 오롯이 내 것이니까.
나는 늘 영화 인타임은 픽션이 아니라고 말하는데 실상 영화 전반에 일어나는 모든 에피소드가 우리 현실에서도 매일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노동으로 얻은 시간을 주고 음식을 사고 교통비를 내는데 내일 다시 오늘만큼 소비할 시간을 얻기위해 노동하는 시간을 보내야한다. 누군가는 시간의 권태와 싸우고 누군가는 가진 시간을 소비하기도 바쁘다.
영화 속에서 몇개의 타임존을 넘어 도착한 곳에서 주인공은 주변사람보다 빠르게 걷고 급하게 먹었다. 점심을 컵라면으로 떼우는 현실의 직장인들처럼.
해야할 것이 아닌 하고싶은 것을 하기 위해 치뤄야할 시간은 얼만큼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