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사이는 오묘하다. 하늘이 맺어준 인연이 부부가 된다고 하지만 주변 어느 부부도 서로 죽도록 사랑해서 결혼했노라 고백하는 이를 본 적이 없다. 그저 타이밍이었고 우연이었다고 말한다. 한국적 자존심때문인가 생각해보기도 했지만 서양인들이 환상에 젖어 젊은 날을 회상하는 것보다는 현실적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 때 결혼이 하고싶었고
크게 모난 구석없이 편안한 사람이었다.
왜 결혼했느냐 물으면 다들 비슷한 대답을 한다. 나와 이런 류의 대화를 나누는 사람의 대부분이 여성이었지만 사람의 감정은 상대적이기 때문에 남자든 여자든 비슷하겠구나 생각한다. 내 반려인도 그렇겠다 생각하면 맥이 풀리는 것도 인정한다. 하지만 편안한 사람이라는 공통분모에서 출발하면 그 마음을 조금은 위안할 수 있겠다.
비슷한 사람
사람들은 오래 살수록 부부는 서로 닮는다고 말한다. 거꾸로 보면 서로 닮은 사람들이 결혼을 하는 것도 맞는 말이다. 거리의 연인들도 어떻게든 서로 닮은 사람들이 손을 맞잡고 다니는 것을 알아챌 수 있는가. 우리는 사자나 코끼리와 결혼하지 않는다. 본능적으로 동족을 알아보고 같은 맴새가 풍기는 무리와 섞일 줄 안다. 다시말해 이러한 일은 노력하거나 반대로 거부할 수 있는 행동도 아닌 것이다. 어쩔 수 없이, 어쩌다 보니 지금 마주 앉은 반려인과 운명처럼 짝이 지어졌다면 그냥 받아들이자. 좋든 싫든 서로는 비슷한 사람이다. 적어도 남들이 보기에는.
반대인 사람
울화통을 터뜨리며 이에 거세게 반대하는 사람이 있으리라 생각한다. 하나부터 열까지 전혀 닮은 구석이 없이 서로 정 반대인 반려인과 살고 있노라며 콧웃음을 칠지도 모르겠다. 그런 부부는 서로는 물과 불이라 칭하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테다. 하지만 스스로의 양면성을 인정하기 바란다. 어떤 현상에나 양면성이 존재하는 것을 잊었는가. 끌어당기는 힘 뒤에는 밀어내는 힘이 있고 뜨거운 김은 차가운 곳에서만 보인다. 도드라지게 뜨거운 사람은 차가운 내면을 숨긴 사람이다. 숨겨진 내면을 드러내는 반쪽은 묘한 편안함을 주고 서로 안정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안 맞아.
결혼을 하고 세월을 보내다 보면 알게된다. 사람은 본래 혼자 살도록 설계된 개체구나. 외로움을 즐기고 고독속에서 성장하는 것이 사람의 본성인가보다라며. 마치 커다란 깨달음을 얻은 듯한 순간들이 스치며 독립을 꿈꾼다. 이 모든 문제의 중심에는 상대방이 있다고 굳게 믿으면서도 이 문제에 있어서 본인도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다. 그래서 더욱 화가 나고 자존심이 상한다.
그리고 어느날 곱게 빚은 도자기를 깨버리는 것이다. 십년쯤은 참는다. 나를 굽혀서 맞추기도 하고 상대를 바꾸어보기 위한 노력들을 하면서 결혼이라는 도자기를 빚어간다. 티하나없이 매끄러운 표면을 만들기 위해 공을 들인다. 조용하고 잔잔하게 작은 싸움들이 있어도 희망을 가지고 상대를 볼 수 있다. 하지만 십년쯤 지나 우리가 빚은 도자기가 어느정도 윤곽이 보이기 시작하면 실망감이 찾아온다. 단순한 실망을 넘어 좌절에 가까운 슬픔과 분노의 감정이다.
내가 이럴려고….!
그리고 파편이 튄다. 서로에게 하지말아야할 말을 내뱉고 넘지말아야 할 선을 넘으면서 볼품없는 도자기를 산산히 부셔버리는 것이다.
그리고 아무일도 없었듯이 산다. 보통의 부부는 그렇다. 생활이 기다리기 때문에 짜여진 스케줄대로 소화해야하는 역할들이 있다. 거기에 충실하게 그저 살아간다. 깨진 도자기는 그렇게 이물질들에 의해 다시 봉합되고 작가의 의도따위는 무시된채로 무직위로 완성되어 간다.
일본의 킨츠키는 하나의 장르가 되었다. 무엇이든 오래된 물건을 귀하게 여기는 관습때문인지 깨진 도자기를 이어붙여 봉합지점을 도드라지게 장식한 킨츠키는 상당히 장식적이다. 도자기 복원방식은 납으로 봉합하는 방식, 유리를 덧대는 방식, 또 다른 재료를 사용하는 방식 등 여러 갈래가 있지만 잘 알려진 것은 금가루를 장식하는 방식이다.
복원이라는 관점에서 볼때 나는 재해석이나 퓨전을 선호하지 않는 편이다. 물건이든 사람이든 본연의 모습 그대로가 가장 사람답고 아름답다. 반려의 관계도 그다지 낭만적이지 않을 수 있지만 처음 그대로의 이야기가 멋스럽다고 생각한다. 편안하고 내 눈에 도드라지지 않은 사람과 사는 것. 사실 우리 삶은 그렇게 화려하지도 특별하지도 않다. 어쩌면 그 평범함이 우리의 관계가 모두 특별한 이유일지도 모른다.
깨지면 다시 붙이고 또 붙여서 원래의 모습으로 다시 만드는 노력들을 하다보면 서로가 진짜 원하는 상상속의 특별한 도자기를 결국 만들어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