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 하나를 꼭 그렇게 두더라

by 다혜로운

신혼집은 방이 두 개였다.

한 방은 침실로 썼고,

남은 한 방은 잘 안 쓰는 물건을 넣었다.

외출한 뒤 벗은 옷도 그 방에 뒀다.


방이 세 개인 집으로 이사 가서는

침실과 거실을 주로 썼다.

한 방은 아이들 물건으로 채웠고,

나머지 한 방은 다시 창고같이 되었다.


어느 날, 친구가 말했다.

"너는 방 하나를 꼭 그렇게 두더라."

“다르게 둘 수가 있어?”

“서재로 하거나, 차 마시는 공간도 좋고.

너나 남편이 좋아하는 것들로 꾸밀 수도 있고.”


아이 키우는데 그럴 여유가 어딨냐 했지만,

아이가 없을 때도 그랬다.

십 년이 흘렀지만, 그 말이 종종 떠올랐다.



지금 집은 방 두 개와 옥탑방이 있다.


두 개의 방은 침실로 쓴다.

주말 부부로 오래 살면서

아이들은 아빠와 자는 게 특별했기에

아직 같이 잔다.


옥탑방은 어쩌다 지나가는 통로일 뿐이다.

아무 짐 없이, 용도도 없이 비워뒀다.


아이들은 옥탑방을 쓰자고 했다.

그곳에서 놀고, 일렬로 같이 자고 싶다고 했다.

나는 내키지 않았다.

치워야 할게 많아진다고 말했지만,

그래봤자 4-5평이었다.


며칠 전, 새로운 생각이 스쳤다.

관리할 공간을 줄이는 것보다,

각 방을 잘 쓰고 싶어졌다.


아이들의 바람대로

비워뒀던 옥탑방에서 함께 자기로 했다.

사춘기가 와서

넷이 자는 시간이 길지 않을 것 같다.


두 방에 것을 세 곳에 나눴고,

작은 방에는 카펫을 하나 사서 깔았다.

케이스 안에 있던 첼로 꺼내 세웠다.

그 방만의 분위기가 생겼다.


짐을 나누면서 알았다.

공간을 다루는 방식과 감정을 다루는 방식이

별개가 아니라는 것을.


감정을 얼려버리고,

괜찮은 척하면서 버티는데 썼던 에너지는

감정을 정리하고 처리하는 힘으로

옮겨가고 있었다.


나를 작게 두던 마음도,

한 방을 아무렇게나 두던 것도,

뭔가를 해보고 싶은 마음으로

기울어지고 있었다.


글쓰기 덕분이다.


글쓰기가 나를 넓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