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통의 수박밭>을 읽고
누군가는 애들 데리고 다니는 게 힘들다고 하지만,
나는 어떻게 더 많이 데리고 다닐 수 있을까,
어디를 가볼까 늘 생각했다.
차로 한 시간 거리는 아이들과 쉽게 다녔다.
그 동력의 큰 부분은 불안이었다.
이대로 살아도 되는지에 대한 의문,
내가 엄마로 충분한지에 대한 의심,
주말부부의 삶이 아이들에게 미칠 염려까지.
나는 이 불안을 감당하려고 움직였다.
나는 학생 때도 많이 다녔다.
이유 없이 인사동을 가고, 신촌을 걸었다.
집에 갈 때도 두 세정거장 미리 내려 더 걸었다.
그때는 집안과 미래가 불안했다.
그림책〈앙통의 수박밭>을 봤다.
수박 한 통이 없어졌다.
앙통은 더 잃지 않기 위해 수박밭을 지켰다.
무수히 많은 수박은 뒤쪽에 두고,
수박의 빈 자리를 보며 앉았다.
그 모습은 불안을 몸으로 채우는 것처럼 보였다.
움직임으로 불안을 다루는 나처럼 보였다.
나는 그렇게 움직였지만 불안을 피하지 못했다.
불안 자체를 없애기 위해 이것저것을 통제했지만,
자주 불안에 휩쓸렸고,
불안의 에너지로 인생의 반을 살았다.
그리고 엄마의 불안 속에서 두 아이가 자랐다.
아이들에게서
내 불안도 보이지만, 내 움직임도 보인다.
불안을 볼 때면 나는 다시 흔들리지만,
움직임을 볼 때면 나는 조금 안도한다.
‘수박자리를 내가 채운다고 수박이 생기는 게 아니다,
이제는 없는 수박 자리를 그냥 둬도 괜찮을 거 같다.’
6개 월 전쯤 썼던 글이다.
그때는 몰랐던 말,
지금은 꼭 하고 싶은 말이 생겼다.
나는 그렇게 살아온 사람이다.
불안도 나쁘기만 하지 않았다.
그 움직임과 흔들림이 나와 아이들에게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