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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묭 Feb 14. 2021

당신의 외로움은 얼마인가요?

<외로움을 사고 싶던 소년>


외로움을 사고 싶던 소년이 있었다. 


 소년은 외로움이란 감정이 어디서 오는 건지 모르고 자랐다. 아마 태생부터 그랬을 것이다. 세상에 태어났음을 인지한 순간부터 그의 집엔 여섯 식구가 빽빽하게 들어차 있었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독립된 방에서 자야 할 무렵부터는 아빠보다 그와 나이가 더 가까운 어린 삼촌과 한 방을 썼다. 삼촌이 장가를 가면 또 다른 삼촌이 시골에서 올라왔고, 그의 방은 또다시 공유당했다. 명절이면 서른 명 가까운 친척이 며칠 내내 집안을 숨 막히게 채웠다. 소년의 집은 종가였기 때문이다. 그는 혼자 있고 싶어 하는 기질을 지니고 태어났지만 아무도 그걸 눈치채지는 못했다. 동일한 크기의 집에 가족이 늘어갈 때마다 그는 공간을 빼앗기는 기분에 몸을 움츠렸다. 하필 후각마저 예민해 사람냄새가 코를 자극해대기 시작하면 소년은 자기만의 공간을 찾아 숨어들었다. 캄캄한 장롱 속에서, 혹은 화장실 문을 걸어 잠그고 몇 시간을 웅크리거나 누워 있었다.


 소년의 아파트 옆집과 위층 집에는 동갑내기 친구들이 살고 있었다. 네 살 때부터 같은 유치원, 같은 초등학교, 같은 중학교를 매일 나란히 등하교했다. 소년은 어릴 적부터 생각이 잡다하게 많은 편이었지만 그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늘 부족했다. 집에, 등하굣길에, 학교에, 온통 곁에 사람들 투성이었다. 그러니까 소년은, 겉보기에 무척 행복한 사람이었다. 소년은 혼자 있고 싶어 하는 기질을 발현할 기회조차 얻지 못한 채 대인관계 원만하고 사회성 밝은 아이로 무럭무럭 자랐다. 소년도 그걸 잘 알고 있었다. 듣는 칭찬이 대부분 그랬으니까.


 사춘기가 찾아오면서 소년은 혼란을 겪었다. 막 일렁이기 시작한 소년의 가슴을 파고든 건 음악과 문학이었다. 책을 읽고 있으면, 록음악을 듣고 있으면 세상에 혼자 남겨진 것 같아 황홀했다. 그들을 닮고 싶어 소설을 끄적이기 시작하고 함께 살던 삼촌을 졸라 전자기타를 샀다.


 그러나 이내 괴로움이 그 설렘을 앗아갔다. 소년에게 선망이 된 작가들과 뮤지션의 교집합이, 그에겐 태생적으로 부재한 '외로움의 정서'에서 비롯된다는 걸 깨달아버린 탓이다. 그들과 교감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는 운명임을 소년은 수긍해야 했다. 제프 버클리, 산울림, 너바나의 노래를 들으며 외로움을 부단히 과외받았지만 그럴수록 다다를 수 없는 감정이라는 걸 확인할 뿐이었다. 외로움은 천재들의 울타리이자 그들과 자신의 경계를 가르는 좁은 문처럼 여겨졌다. 그들이 사무친 외로움을 예술로 승화하기까지 얼마나 고통스러운 삶을 감내했을지까지는 생각이 닿지 못했던 소년은, 제 안온함은 잊은 채 몸서리치게 그들을 질투할 뿐이었다. 그들의 외로움을 돈을 주고라도 사고 싶다며.


 고등학교 들어서 소년은 마법처럼 첫사랑에 빠졌다. 죽을 때까지 사랑하겠노라 주문을 외면서도, 한편으로는 뮤지션과 작가들이 죽을 것처럼 내밀하게 묘사해놓은 이별이라는 감정을 자신도 언젠가 겪게 된다는 사실에 묘한 흥분을 느꼈다. 그 순간이 오지 않기를 기도하면서 오기를 바랐다. 그러나 헤어짐에 익숙하지 않았던 소년은 5년이나 이별을 유예했고, 이별한 직후에는 다른 사랑을 만나 또 길쭉하게 사랑해버리고 말았다. 누군가를 곁에 두는 것. 그것은 소년에게 그다지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소년은 그렇게 길러졌으니까.


 우리나라에서 가장 무거운 단어인 '고3' 시절. 소년은 처음으로, 잠시나마 외로움에 닿아본 듯했다. 친구들과 독서실이나 학원을 떼 지어 몰려다녔지만 처음으로 외따로 걷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모두가 모두를 소외하고 각자도생하던 시기. 소년은 그 분위기가 반가우면서도 무서웠다. 친구에게 거듭 함께라는 걸 확인받거나 밤늦도록 공부 대신 일기를 쓰며 마음을 진정시켰다. 그토록 원하던 외로움의 시간이 손을 내밀었는데, 소년은 도리어 공포에 휩싸여 등을 돌려버리고 만 것이다. 특정한 정서의 발달이 유난히 느렸던 소년은 외로움마저 강제되지 않고 제가 선택하길 바랐던 것 같다. 아마도 고통을 생선뼈처럼 발라낸, 외로움의 살갗만 탐했던 거겠지. 그러니까 소년은, 고독과 외로움을 구분할 줄도 모르고 살아왔던 거다. 


 긴 장마로 이 검고 축축해진 고3의 여름날. 자정 넘어 독서실에서 집으로 돌아오던 길. 라디오헤드 <ok computer> CD의 4번 트랙을 듣다가 처음으로 소년은 죽고 싶다고 생각했다. 노래 제목이 이끄는 대로 다른 차원의 세계로 탈출하고 싶다고. 8차선 도로에서 춤추는 저 헤드라이트 불빛의 행렬 속으로 어서 뛰어들고 싶다고. 연붉게 일렁이는 물결에 한참 시선을 고정하다, 소년은 이내 정신을 차렸다. 정신을 차리는 게 정해진 수순인 것만 같았다. 소년에겐 가족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대학을 가고, 군에 입대했지만 소년의 곁에는 늘 포근한 사람들이 넘치지 않을 만큼 잔존해주었다. 그들은 소년을 결코 외롭게 두지 않았다. 대학 입학 후 식구들이 우글거리는 집을 탈출해 혼자 자취방을 꾸릴 때는 꿈만 같았다. 그러나 시급 1,800원이던 알바비로는 월세를 감당하지 못해 결국 선배의 하숙방으로 기어들어갔다. 단돈 5만 원만 받고 선뜻 자기 방의 반을 내어준 좋은 선배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군에서 제대하고 다시 고시원 생활을 시작했지만 이내 대학 동기가 투룸 중 방 하나가 비었다며 같이 살자고 제안했다. 소년은 한 평 남짓 고시원 생활이 몹시 행복했지만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소년은 이미 기질을 잃어가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때로는 주변 사람들에게 이런 고민을 털어놓고 싶었지만 소년은 결코 입밖에 내지 않았다. 그는 잘 사회화된 인간이었기에, 이런 종류의 고민이 얼마나 배불러 터진, 재수 없는 소리인지 충분히 가늠하고도 남았다. 외로움이라는 정서의 부재가 내면의 성장을 가로막았다고 털어놓는다면 얼마나 철없어 보일까. 지독히 외로워봤던 이에게 '당신의 외로움을 조금 사고 싶다'고 차마 말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누구도 상처 입히기 싫었기에 소년은 그저 배부른 고민을 하는 삶에 감사하는 쪽으로 서둘러 결론을 매듭짓고 얼토당토않는 소망을 마음의 서랍 속 깊이 묻어두었다.


 말 못 할 고민을 앓던 소년은, 결국 스스로 근사한 해결책을 찾아냈다. 남에게 비아냥을 듣거나 상처주지 않으면서 외로움을 돈 주고 사는 방법 말이다. 혼자 떠나는 여행이 꽤 멋진 해답이 되어주었다. 그는 대학생으로는 감당하기 힘든 거액의 비행기 값을 애써 모아가면서 아무도 모르는 곳을 찾아 떠나기 시작했다. 한국말이 들리지 않는 곳만 골라다녔기에 그의 여행은 늘 생소하고 외로웠다. 그 감정을 소년은 마음에 꾹꾹 눌러 담았다. 제 의지로 하루 종일 한 마디도 하지 않을 수 있는 세상이라니. 여행하고 돌아오면 혼자 있고픈 충동이 한 꺼풀 벗겨졌고, 다시 온갖 존재와 비존재가 어우러진 일상에 감사하며 적응해나갔다. 그렇게 10년이 넘도록 틈만 나면 거미줄처럼 과하게 얽힌 도시를 벗어났다. 비싼 외로움을 사기 위해. 물론 그가 멀리까지 가서 샀던 감정은 외로움이 아니라 고독이었을 것이다. 외로움은 결코 자의일 수 없을 테니까.


그러던 2018년의 첫겨울.


 직장생활에 한창이던 소년은, 씻겨내기 힘든 큰 사고를 인생에 얼룩처럼 묻히고 말았다. 신뢰도를 먹고사는 회사인데 그의 판단착오로 한 순간에 신뢰가 무너져버린 것이다. 동료들이 한 겹씩이라도 쌓아 올리려 부단히 애쓰던 그 '신뢰'가 말이다. 그리고 그 실수로 인해 그가 사랑하던 지인들까지 인터넷에 신상이 노출되며 조롱거리가 됐다. 지인들은 소년을 믿은 죄로 자신의 과거와 가족까지 익명의 댓글러들에게 까발려져야 했다.


 우를 범하고 난 뒤, 소년은 제 방에서 불도 켜지 않고 하룻밤을 보냈다. 그의 스마트폰은 기자들과 지인들의 연락으로 불이 났다. 처음으로 약을 삼켜보고, 전화기를 변기에 넣고 물을 내리는 꿈도 꿔봤지만 딱히 달라지는 건 없었다. 그렇게 며칠이 악몽처럼 흘렀다. 아마도 소년이 온전히 강제로 겪어본 첫 ‘혼자만의 시간’이었을 것이다. 세상의 모든 세포들이 내 반대편으로 등을 돌리고 있는 기분.


 모든 처음은 어린아이가 되어 맞을 수밖에 없는 걸까. 소년은 어쩌면 짧았을 며칠의 시간 동안 스스로를 가두면서, 어릴 적 엄마처럼 누군가 제 곁을 지켜주길 간절히 바라고 바랐다. 잠근 방문을 억지로 부수고라도 들어와 나를 덥석 안아주길, 전화를 10통 받지 않아도 11통째 해줘서 괜찮냐고 내게 물어주길, 아무라도 제발 그래주길 간절히, 간절히 바랐다.


 혼자 맞이하던  번째 밤이었을까. 소년은 고3 시절 이후 처음으로 신을 찾았다.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들의 이름을 한 명씩 소리 내어 읊었다. 그러지 않으면 이 사회에서 이 직업으로 다시 살아갈 용기가 나지 않을 것만 같았다. 다시는 외롭지 않겠다고 노래하던 한 뮤지션의 노랫말이 귓가에 들렸다. 그제야 문득, 타인의 외로운 시간들이 소년의 생채기 난 가슴에 스미듯 말을 건넸다.


이게 외로움이야.

이 철없는 어른아이야.


 불과 며칠뿐이었던 이 숨 막히는 시간을 누군가는 몇 년씩, 몇십 년씩 일상처럼 겪으며 살아갔겠지. 그래도 그들은 살아가고 있겠지. 강제로라도 무뎌진 사람들일 테니까.

.

.

 시간이 물처럼 흘러 모든 것을 정화했다. 며칠간의 짧은 외로움에 허우적거리던 소년은, 그 후로도 씩씩하게 회사를 다니고 있다. 여전히 외로움에 대한 양가의 감정을 떠안은 채. 그 날 이후 외로움 앞에 한껏 겸손해졌지만 여전히 선망하는 마음도 다 삭이지는 못하면서 말이다.


 곧 휴직을 하고 연고 없는 지방으로 잠시 떠날 예정인 소년은, 우선 친구 없이 사는 삶을 겪어볼 요량이다. 그것마저 배부른 소리겠지만 그 고독의 시간을 앞두고 마음이 춤추는 것만은 어쩔 수 없다. 그러나 한편으로 소년은 그 순간을 가장 두려워하고 있는 사람이 바로 자신이라는 걸 이제는 충분히 감지한다. 그가 외로움을 미리 돈을 주고라도 사고 싶었던 건, 언젠가 다가올지도 모를 '강제로 혼자 남겨질' 순간에 자신이 누구보다 취약하다는 걸 본능적으로 직감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백신을 맞듯, 사전 예행연습을 하듯 고독이라도 한 줌 체험해보고 싶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그는 그런 마음으로 이제 곧 평생을 살아온 서울을 잠시 떠난다.


 외로움은 누군가에겐 죽음에 이르는 질병이다. 지독하게 외로움을 앓아봤거나 앓고 있는 사람들이 이 글을 본다면, 소년을 세상 물정 모르는 어린애 취급할지 모를 일이다. 사실이 그렇기도 하다. 게다가 누군가를 죽이는 감정을 자신의 성장을 위한 도구로 이용하려는 심보는 문득 섬뜩하기까지 하다. 그렇기에 쉬 털어놓지도 못할 고민을 가슴에 잔뜩 안고, 소년은 오늘 밤도 상상 속의 외로움을 원하고 원망하다 잠이 든다. 언젠가 닥칠 더 큰 외로움을 감당해내기 위해 지금부터 조금씩이라도 외롭고 싶다며. 삶에게 무례하지만 그게 삶을 지켜줄 최후의 안전장치인 것만 같다고 몹쓸 예감을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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