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들 학창시절 친구가 평생친구라고 말한다. 달리 말하면 사회생활에서는 이해관계를 떠난 우정을 맺기 힘들다는 얘기겠지. 아무래도 사회에 발을 내딛으면 누군가와 진득한 시간을 보낼 기회도 드물고, 각자 바쁘다 보니 타인을 받아들일 품도 좁아지고, 이미 어른이 된 나이라 가려야 할 것들도 많아져 깊은 신뢰관계가 싹트긴 어렵다. 그러나 오늘은 역으로 직장에서 만난 평생친구에 관해 얘기를 꺼낼까 한다. 다행히 지금 나는 회사를 휴직 중이라 민망하지 않게 꺼낼 수 있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입사동기인 S는 나와 지난 10여 년 간 가족만큼이나 많은 시간을 함께 보냈다. 같은 부서에서 회사생활을 시작했고, 조직에서 잠시 아픈 시기를 겪을 때도 같은 부서로 전보됐다. 휴직하기 직전까지도 바로 옆 부서에서 일하다 보니 거의 매일 마주쳤다. 연인 사이도 너무 자주 만나면 싫증이 나거나 불편해지는 법. 게다가 입사 동기다 보니 경쟁심이 발동할 만한 환경에 놓인 적도 많았다. 그러나 이제껏 S와는 사소한 트러블 하나 생기지 않고 지냈다. 전적으로 S가 품이 넓은 사람이기 때문이라는 걸 나는 잘 알고 있다.
기자라는 직업 덕분에 비교적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며 살아왔지만, 그중에서도 S는 내가 아는 한 가장 완벽히 ‘인간다운 인간’이다. 먼저 그 자신이 누구보다 곧바른 기자다. 눈에 띄는 특종을 좇기보다는 눈에 띄지 않는 사람들에게 시선을 향하고, 그런 시선을 기사에 온전히 담아낸다. 보도국에서 일하면서, 능력 있는 기자들이 특종과 속보에 눈멀어 앞뒤를 재지 않고 달리는 모습을 많이 봤다. 누군가 그렇게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달릴 때, S는 잠시 멈춰 서서 ‘내 기사가 혹시 타인을 필요 이상으로 해치진 않는지’부터 걱정한다. 경쟁과 인정욕구의 파고에 함몰된 조직 생태계에서 S는 섬처럼 떠 있는 기자다.
직장인으로서 S는 결코 자신을 내세우는 법 없는 겸손한 동료다. S와 함께 기획을 하거나 취재를 하다 보면 늘 뭔가가 항상 ‘되어 있다’. 눈에 띄지 않는 잡무, 들이는 시간에 비해 성과물은 미미한 작업들을 S가 말없이 해놓기 때문이다. 더러 성과가 나더라도 S는 그것을 자신의 것이라 여기지 않는다. 한 번은 우리 부서원 모두가 인사평가에서 S에게 후한 점수를 준 적이 있다. S는 그렇게 받은 연말 개인 성과급을 부서원에게 N분의 1로 전부 나눠주었다. 부서원들이 받기를 거부하자 인사부에서 개인 계좌번호까지 알아내가며 기어코 전해주더라. 또 한 번은 언론단체에서 S가 기획한 뉴스 코너를 ‘올해의 좋은 프로그램’으로 선정한 적이 있다. 수상을 한사코 거절하던 S에게 우리는 “넌 받을 자격이 있어”라고 설득하지 않았다. “너가 거부하면 코너를 같이 한 다른 후배들도 못 받아”라고 설득했다. 그게 S의 마음을 움직일 유일한 방식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친구로서 S는 생각보다 수다스럽고 유쾌한 사람이다. 성격과 취향은 정반대지만 가치관과 취미는 비슷해서 얘깃거리가 부딪히지도 마르지도 않는다. 함께 스포츠를 좋아해서 야구와 축구, 농구 얘길 꺼내면 몇 시간이 흘러도 소재가 흘러넘친다. 정치나 사상 같은 민감한 얘기도 결국 지향점은 같으며, 때로 생각이 엇갈려도 크게 개의치 않는다.
S와 같은 사람을 직장동료로 곁에 둔다는 것은 성경이나 불경을 팔에 끼고 사는 삶과 같다. 10여 년을 하루가 멀다 하고 마주쳤지만 여전히 S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집에 돌아오면 맑은 물에 몸을 씻고 온 기분이 든다. 가끔은 그에 비해 내가 너무 지저분하고 못된 사람처럼 보여서 불편해질 때도 있다. 그러나 이내 마음을 고쳐먹는다. 그의 잘못이 아닌 일로 내가 불편을 느낀다면 나를 고쳐가는 게 맞다고. 그만큼 S는 나를 온당한인간으로 자라게 하는 친구다. 다른 직장동료들로부터 S와 절친으로 엮이고 있는 건 나의 가장 큰 자랑거리다. 그 이름 앞에 부끄럽지 않게 살려고만 애쓰다 보면 나는 아마도 그럭저럭 괜찮은 삶을 조립하게 될 것만 같다.
앞서 말했듯 요즘 나는 휴직을 한 뒤 서울을 떠나 춘천에 머물고 있다. 아침저녁에는 육아책임자로, 낮에는 한적한 지방도시의 북카페지기로 하루하루 지내고 있다. 그러다 보니 이제껏 회사에서 만났던 사람들에 대해 곱씹어 생각하는 시간이 부쩍 늘었다. 얄미웠던 동료들도 한 발짝 떨어져 보니 그렇게까지 미워할 필요는 없었다는 걸 뒤늦게 깨닫기도 하고, 반대로 고마웠던 동료들에게도 바쁘단 핑계로 소홀했던 나 자신을 반성해나가고 있다. 물질이든 영감이든 누군가에게 받기만 하고 돌려준 것도 없이 살아온 것만 같아서. S에게도 마찬가지다.
그렇게 미안해하는 와중에 며칠 전 S가 하루 휴가를 내고 가게에 찾아왔다. 두 손에는 직접 만든 개업 선물과 기증할 그림책들이 잔뜩 들려 있었다. 그러니까, 나는 반성만 하고 있다가 덥석 또 받기만 한 셈이다. 평일에는 몇 명 찾지 않는 조용한 골목가게에서 나는 카페지기로, S는 낯익은 손님으로 각자의 시간을 흘렸다. 손님이 가시고 날 때면 모여 앉아 만쥬를 까먹으며 두런두런 얘기도 나누었다. 회사 욕, 동료들 근황, 부동산과 주식 얘기, 여행가서 머물렀던 소도시 풍경 얘기, 전람회 노래, 야구, 다시 회사 욕.
S가 만들어준 우리 가게 프롤로그 책.
저녁 무렵 가게 문을 닫고 술 한 잔을 기울인 뒤, S는 ‘5월에 다시 오겠다’며 서울로 되돌아갔다. S는 허투루 말하는 법이 없으니 아마 다음 달이면 우린 다시 보게 될 거다. 기차역 계단을 뚜벅뚜벅 올라가는 S의 등허리를 한참 바라봤다. 왜 그런지 퍽 낯설게 느껴지더라. 곰곰이 생각해 보다가 문득 깨달았다. S는 이제껏 내게 먼저 등을 돌리고 간 적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긴, 10년이 넘도록 전화조차 먼저 끊은 적 없으니. 익숙한 그의 익숙하지 않은 뒷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멀리 있는 회사에 넙죽 절이라도 하고 싶어졌다. 월급도 꼬박꼬박 줬는데 저런 동료까지 덤으로 만나게 해줬으니. 그리고 회사에 출근하던 시절 매일 반복해놓고는 한 번도 지키지 못했던 다짐을 또 해버렸다. S를 닮아가고 싶다고. 언젠가는 나도 S처럼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매 순간 퇴사 혹은 다른 방식의 삶을 궁리하는 내게, S는 그나마 직장생활을 이어가고 싶은 거의 유일한 이유다. 내겐 그런 친구가 회사에 있다. . . . (읽어도 아는 체하지 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