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서재 앞마당에는 두 가지 소박한 자랑거리가 있는데, 하나는 60년 된 라일락 나무고, 다른 하나가 바로 재래식 변소를 개조한 ‘독립서재’다. 폐가의 방 문짝을 고쳐 만든 테이블, 맥주캔을 재활용한 전구와 나팔 모양 스피커, 나무 오르골 등 취향을 한껏 흘려둔 공간이다. 본채와 분리되어 있어 자유롭게 수다를 떨 수도 있기에 다른 테이블과 달리 예약도 받는다. 하지만 평일에는 몇 명 찾지 않는 가게이다 보니 독립서재 예약은 주말에나 한두 차례 겨우 들어오는 정도다. 그런데 일주일 만에 누군가 평일에 예약하겠다며 연락이 온 거다.
손님은 오후 4시에 오신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아침 10시쯤 서재에 도착해 청소를 시작했다. 가장 먼저 제빙기와 오디오를 튼다. ‘청소음악’ 폴더를 따로 지정해두었는데, 오늘은 문득 콜드플레이의 ‘up & up’이 듣고 싶어졌다. 물걸레질하는 손놀림이 평소보다 가볍다고 느꼈다. 힘을 빼고 있어도 누군가 손목을 잡고 대신 걸레를 밀어주는 기분. 추측건대 청소하는 목적이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적어도 한 분은 오늘 꼭 가게를 찾는다. 누군지 모를 그 사람 덕에 지금 나의 걸레질은 유의미하다.
오후 4시가 되기 30분 전쯤, 다시 한번 독립서재 테이블의 먼지를 훔쳐내고 스탠드를 켜 두었다. 갑자기 더워진 날씨에 혹시 몰라 에어컨 리모컨도 놓아두었다. 이윽고 예약 손님이 친구와 함께 도착했다. 서재를 찬찬히 둘러보시고는 독립서재로 향했고, 나는 주문받은 오미자차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내어드렸다. 예약된 두 시간이 흘렀다. 계산하러 카운터에 온 손님은 신용카드와 함께 폴라로이드 필름 한 장을 건넸다. “예뻐서 찍어봤어요. 사장님 가지세요.” 쌀쌀했던 3월의 한 손님도 독립서재에 들른 뒤 즉석사진 한 장을 남겨주고 떠났더랬다. 그 사진 옆에 새로 선물 받은 사진을 붙여놓았다. 하얀 도화지 같던 카운터 벽이 알록달록 색을 입었다.
한가한 수요일 오후. 멀리서 온 손님이 두 장의 편지를 남기고 떠났다. 한 장은 부치지 못하는 편지를 누군가에게 남겼고, 나머지 한 장은 주인장인 내게 남겼다. 몇 해 전 읽었던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이 떠오른다며, 첫서재에 머무름 만으로 지난날들과 앞으로의 날들이 다가왔다고 종이에 꾹꾹 눌러 담아 전해주었다. “저 내일 또 와도 되죠?”라며 나가셨는데 그 말 한마디에 밤이 길쭉해졌다. 부치지 못한 편지에 답장을 드리고픈 마음이 잠을 방해했다. 눈물이 도글도글 고일만큼 애틋한 사연의 편지였다. 늦은 밤까지 이리저리 떠돌던 마음을 활자로 붙잡아 다듬어보다가, 예전에 읽던 시집 제목이 불현듯 떠올랐다. <우리는 매일매일>. 떠난 사람을 뒤로하고 남은 이들은 매일매일을 살아내야 하겠지. 서툰 답장 대신 손때 묻은 시집을 드리기로 했다. 정말로 내일 오신다면.
이튿날. 오후 늦기 전에 손님은 다시 찾아와 주었다. 전날보다 더 오래, 지는 석양을 맞이하는 순간까지 한 자리에 머물다가 일어나셨다. 공간값을 받은 뒤 문을 열고 나가는 손님께 낡은 시집을 건넸다. 먼 길 돌아가는 발걸음이 조금이라도 가벼워지기를 바라는 마음을 어색한 손길에 담았다. 손님의 표정을 읽어낼 깜냥도 여유도 없었지만, 내 마음은 명료하게 읽혔다. 다시 돌아오지 않을 누군가에게 마음 쓰느라 시간을 쏟았던 어젯밤이 그다지 낭비로 여겨지지 않았음을.
이렇듯 첫서재의 시계는 느리다. 늘 부족했던 시간이 고무처럼 탄성이 생겨 길쭉해진 기분이다. 38년간 살았던 서울을 생각하면 더욱이 그렇다. 서울에선, 정확히 말해 직장을 다닐 때엔 시간낭비 같아 아예 시간을 내어주지 않거나 최대한 빨리 끝내려 했던 사소한 결정들을 이곳에서는 최대한 오래 곱씹은 뒤 내리게 된다.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해 서둘렀던 지금의 단계들에 대해서도 오래오래 공을 들이곤 한다. 예컨대 1분 만에 닦을 수도 있는 창문 먼지를 5분에 걸쳐 더 꼼꼼하게 닦아낸다든지, 손님의 문의 메시지에 관한 두어 줄의 답이라도 금방 보내지 않고 한참 고민하고 정리해서 보내드리는 식이다. 딱히 급할 게 없기 때문이다. 창문을 서둘러 닦는다고, 답변 메시지를 서둘러 보낸다고 다음 할 일이 나를 재촉하는 것도 아니니까.
시간이 느리게 흐르다 보니 얻는 것들이 있다. 이를테면 정성을 다하는 마음이 그렇다. 춘천살이를 하면서, 첫서재 문을 열면서 얻은 도드라진 수확이다. 서울서 직장 다닐 때는 오로지 나를 중심으로 정성의 울타리를 견고하게 쌓았다. 나에게만, 내 가족에게만, 내 친구에게만 정성을 쏟기에도 시간이 늘 빠듯했다. 더 솔직해지자면 빠듯하다는 핑계 대기에 바빴다. 분주함을 계량할 수 있다면 실제 분주함보다 마음의 분주함이 두 배는 더 컸을 테니까. 그러나 여기서는 무엇도 빠듯하지 않다. 정성을 다할 범주를 정하고 울타리를 두를 필요도, 그 중심에 내가 있을 필요도 없다. 생일을 맞이한 숙박 손님에게 무슨 깜짝 선물을 드려야 할지 전날부터 내내 가족회의를 한다. 숙박에 뽑히지 않은 분들에게 되돌려드릴 답장을 쓰기 위해 한 시간을 골똘히 흘려보낸다. 살아남을 가능성이 희박한 담쟁이넝쿨을 살려보겠다며 반나절 내내 흙을 다듬는다. 살아남지 않더라도 그 시간이 아깝지 않기에 쏟아붓는 마음이다.
정성껏 무언가를 대하는 날들이 늘면서, 어린 시절에나 발동했던 감각들이 되살아난 것도 뜻밖의 수확이다. 설렘이라는 감각이 그렇다. 어릴 적엔 쓸모없는 일에도 쉽게 설레였더랬다. 시간을 배분할 때 미래의 유용성까지 계산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어른이 되고부터는 쓸모 ‘있는’ 일에만 선택적으로 설렜던 것 같다. 기다림이라는 감각도 마찬가지다. 나이가 들수록 기다림은 처리되어야 할 일을 처리 못해 찝찝한 기분으로 남거나, 그저 시간낭비로 여길뿐이었다. 대개는 ‘기약 있는’ 기다림이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기약 없이 기다리는 일이 잦다 보니, 기다림이란 감정 자체에 집중하는 시간이 부쩍 늘었다. 앞마당의 꽃이 언제 필지 알 수 없기에 바라보는 마음이 느긋하고, 학교 다녀온 아이가 뒤이어 갈 학원이 없기에 천천히 놀다 와도 걱정스럽지 않다.
얻는 게 있다면 잃는 것도 있겠지. 아마 잃는 것들은 눈에 잘 띄지 않을 게다. 느린 시간을 만끽하는 사이 나도 모르게 내 몸에서 빠져나가는 것들 말이다. 예컨대 사소한 것에 집착하지 않는 담대함을 잃어가고 있을 수도 있고, 사람이 다소 자잘해졌을 수도 있다. 효율적으로 일처리하는 능력이 퇴화되고 있을 수도 있겠다. 서울에서, 직장에서 한 시간이면 해결했을 일을 열 시간이고 게으르게 붙잡아두다 보니 그럴 수밖에. 하지만 나는 그러기 위해 이곳에 왔다. 지난 30대는 담대함과 효율을 극단적으로 끌어올리는 훈련만 받으며 지내왔으니까. 아니 삶을 통틀어도 ‘남자는 큰 꿈을 꾸고, 시시한 것에 눈길을 주지 말되, 다음 단계를 위해 지금을 참으라’고 교육받으며 살아왔다. 30대가 저물 무렵부터 비로소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누구를 위해 나는 최상으로 효율적인 무기가 되어야 하며, 시시한 것에 눈길 주지 않고 통 크게 살아서 도대체 뭘 더 얻었는지에 대해. 도리어 그런 인간으로 길러지는 사이에 인간이 더 인간다울 수 있는 가치들을 생의 행로에 쉬 버려두고 온 것만 같다. 이곳에서는 그 길에 버려진 작은 것들을 천천히 되걸으며 주워 담아 보는 중이다. 살아가는 맛이 꼭 자극적일 필요는 없었다는 걸 깨달아가면서.
“가령 네가 오후 4시에 온다면, 나는 3시부터 행복해지기 시작할 거야.”
춘천에 첫서재를 차린 뒤 다시 읽어본 책들이 몇 권 있다. <어린왕자>도 그렇다. 아마 이십몇 년 만일 거다. 책 속의 저 말이 충분히 와 닿고도 남았던 어린 시절로, 나는 지금 돌아간 것만 같다. 사회적 무기로 길러지던 한 시기를 지나, 사회적으론 딱히 쓸모없는 기다림과 설렘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마음을 두드리는 날들이 기적처럼 내게 되돌아왔다. 별 이득 될 것 없는 무언가를 위해 정성껏 준비하는 하루. 쓸 데 없이 사랑스러운 하루하루가 매일 다르게 피고 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