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서재 개업 후 한 달간 가장 많이 듣고 답한 말이다. 주민 말고는 사람 구경하기 힘든 한적한 골목 가게라 ‘지나가다 들른’ 손님 기대하기는 어렵다. 이곳의 정체와 정체성을 아는 분들만 찾아오시리란 믿음으로 딱히 큰 간판도 내걸지 않았다. 그럼에도 한 동네에서 부대끼며 살아야 하다 보니 아무래도 주민들과 인근 가게 사장님들에게 ‘도대체 뭐 하는 곳인지’ 정도는 설명해야 할 것이었다. 처음엔 주저리주저리 말이 길어졌다.
“공유서재인데요. 제가 읽고 쓰려고 만든 공간인데 다른 손님들께도 개방하는 거고요. 오시면 두 시간에 5천 원씩 받고 음료를 한 잔 내어드리고요…” 십중팔구는 끝까지 듣지 않거나 아리송한 표정을 짓더라. 결국 가장 간결한 표현을 찾아야 했다. “북카페인데, 돈을 음료 말고 시간으로 받아요.”
포털에 업체 등록을 할 때도 ‘공유서재’라는 카테고리는 없었다. ‘공간대여’가 있었지만 통째로 공간을 빌려주는 업체로 오해할까봐 그냥 ‘카페’, 혹은 ‘북카페’로 등록해야 했다. 인스타그램에 홍보를 할 때도, 브런치에 글을 쓸 때도 '북카페'라는 표현이 최선이었다. 다만 쓰면서도 주눅이 들뿐이었다. 카페라기엔 커피 맛이 특출나진 않은데. 사실 우리 가게는 업소용 커피머신을 따로 들이지 않았다. 대신 홈 카페(커피메이커) 중에 최고급을 사서 놓아두었다. 가격으로 따지면 별 차이가 없지만, 그래도 ‘서재’라는 방향성을 지키기 위한 나름의 선택이었다. 바리스타 친구에게 자문을 구하니 업소용과 가정용 머신은 커피를 추출할 때의 압력 차이가 커서, 처음엔 맛이 비슷해도 몇 잔을 연속해서 뽑을 경우엔 아무래도 차이가 난다고 하더라. 나 같은 ‘커알못’에겐 다 비슷비슷하게 느껴지지만 커피에 조예가 깊은 손님들은 맛이 깊지 않다고 느낄 수 있을 것이었다. 커피 맛에 자신 없는 북카페라니, 딱 망하기 좋은 프레임이다. 그럼에도 ‘공유서재’라는 생소한 말 대신 '카페’로 가게를 알려야 하는 상황은 해결하기 힘든 딜레마였다.
카페 아닌 카페일지라도 카페는 카페겠지. 결국 더 맛있기 위해 뒤늦게 이런저런 노력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우리의 방향성을 고집하기에 앞서 그저 커피 한 잔 마시러 찾아온 분들에게도 실망을 안겨드리고 싶지 않았다. 온종일 있어도 사람 발걸음 소리조차 듣기 힘든 이 골목까지 애써 찾아와 준 분들인데 맛없는 대접을 하긴 싫었다. 뒤늦게 ‘테이크-아웃’을 개시한 이유도 비슷하다. 여기까지 와서 ‘테이크-아웃 되냐?’고 물으시는데 차마 빈 손으로 돌아가시라고 말하기 힘들어서.
우선 개업 2주 만에 원두를 바꿨다. 소규모 지역 상점의 정체성을 살리겠다며 대기업이 아닌 로컬 브랜드의 블렌딩 원두를 써왔는데, 아무래도 표준의 맛이 필요해 보였다. 다른 카페 사장님들에게 자문을 구해 유명 브랜드 원두를 새로 들였다. 우유도 프랜차이즈 카페들이 쓴다는 00우유로 바꿨다. 얼음도 가정용이 아닌 업소용 제빙기 얼음을 다시 쓰기로 했다. 가장 문제인 카페라떼의 맛을 개선해보겠다며 지난 보름간 마신 라떼의 양이 아마 평생 마신 양보다 많을 거다. 더운 날을 대비해 새로운 음료들도 몇 개 더 선보였다. 야생복숭아와 오디 수제 효소로 에이드를 만들어봤다. 이런저런 초심자의 노력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결코 더 많이 팔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저 최소한의 예라도 갖추고 싶었다. 맛집으로 소문날 필요는 없더라도 노력까지 안 해서야 되겠냐는 심정으로.
이토록 팔자에도 없는 ‘맛 내기’에 집중해온 몇 주였지만, 내가 매일 지키고 있는 이 가게를 ‘서재’라고 부르고 싶은 마음에는 여전히 변함이 없다. 가장 대접하고 싶은 건 맛이 아닌 책과 공간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명백히 커피가 아닌 공간을 판다. 그래서 원가 몇백 원짜리 아메리카노도, 그보다 몇 배 비싼 수제 오미자에이드도 전부 같은 가격에 내어드린다. 무얼 시키든 같은 공간에 머물긴 마찬가지니까. 값이 같다면 원가가 싼 음료를 주문받을 때 내 기분이 더 좋아질까? 그렇지 않다. 수제 효소차나 블렌딩 홍차를 드셔주실 때 도리어 기분이 좋다. 그게 우리 공간의 맛과 더 어울리는 것 같아서. 그저 오시는 분들이 음료를 곁들이며, 자신의 서재에 온 듯 평안하게 읽고 쓰다 가셨으면 좋겠다.
어쨌거나 우리 가게는 카페라떼에서 생크림 향이 나는 맛집도 아니고, 간식거리의 종류도 다양하지 않다. 달달한 조각케이크나 요즘 유행하는 흑당밀크티도 없다. 그 대신 60년 된 라일락 나무가 마당에 있고, 100살 넘은 성당 첨탑이 창문 바깥에 풍경화처럼 걸려 있다. 재래식 화장실을 개조한 야외에는 옛집의 문짝으로 만든 테이블이 있고, 실내에는 니스칠조차 조심스러워 그대로 둔 나무의 지붕이 있다. 나뭇결을 고스란히 살린 진열장에는 신예 창작자 열두 명의 작품이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현관문 손잡이부터 화장실 문고리까지, 어느 하나 대량 생산된 것 없이 발품 팔아 고른 정성이 담겨 있다. 무엇보다 공들여 큐레이션한 책들을 마음껏 펼쳐 읽을 수 있다.
앞으로도 우리 가게에 대해 누군가 물어본다면 ‘북카페 같은 거예요’라고 대답할 거다. 홍보용으로는 그 이상의 간결한 대답을 찾기 힘들 테니까. 하지만 적어도 잠시라도 머물렀다 가시는 분들에게는 다르게 불리기를 소망한다. 북’카페’ 비슷하지만 공유’서재’라고. 커피 한 잔보다 속이 따뜻해지는 분위기가 반겨주는 곳이라고. 그 어느 감각보다 공간에 대한 경험으로 가장 맛있게 각인되는 가게이고 싶다. 그리고 이런 후기라도 어디 남겨져 있으면 무척 행복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