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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묭 Apr 11. 2021

단 한 명의 손님이 가게를 찾은 날


 오전 11시에 문을 여는 첫서재. 

 한 시간 전쯤 도착해 커피머신과 제빙기 전원을 켜는 일로 아침을 시작한다. 빗자루로 먼지를 쓸어 담은 뒤 대걸레로 바닥을 한 차례 더 닦아내고, 젖은 수건으로 테이블을 훔친다. 마른 수건에 워셔액을 조금 묻혀 유리창을 닦은 뒤에는 화단에 물을 준다. 실내 화분은 따로 조그만 물뿌리개로 찹찹 분무를 해준다. 다락방에 북스테이 손님이 오시는 날이면 닦아야 할 바닥이 늘어난다. 가습기 물도 채워 넣고, 빨아놓은 이불과 수건도 개고, 쓰레기봉투도 갈아놓는다. 화장실 변기와 세면대 물때를 닦아내고 입간판을 마당 앞으로 옮긴다. ‘북카페 첫서재, 19시까지 오픈. take-out 30%.’ 입간판에 분필로 끄적이면 준비가 끝난다. 오디오 전원을 켜고 오픈을 알리는 음악을 재생한다. 오늘은 어떤날의 <출발>이다.

 평일에는 오후 한두 시쯤이면 첫 손님의 얼굴을 마주친다. 늦은 5시가 넘으면 새 손님이 거의 찾지 않는 편이다. 그 서너 시간 사이 몇몇 발걸음이 이 외진 골목의 소담한 가게에 귀한 자국을 남긴다. 주말에는 일부러 찾아와 주신 여행객들로 조금 더 분주하지만, 고작 다섯 개 있는 테이블이 가득 찬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카페로 흥해보려 만든 가게가 아니기에 지금 이 정도 손님이 오시는 건 나에게 가장 적절한 행복감을 안겨준다. 충분히 읽고, 쓰면서, 가끔 찾아주시는 손님들 덕에 외롭지 않을 수 있다. 전기요금 수도요금도 소소하게 벌고 말이다.

 이틀 내내 내린 비가 하늘을 맑게 씻긴 아침. 볕이 좋아 오랜만에 가게 문을 활짝 열어두고 하루를 시작했다. 정오까진 거의 손님 오는 일이 없기에 음악도 크게 틀어두고 편한 자세로 늘어져 있었다. 열린 문 사이로 바람이 라일락 향기를 실어왔다. ‘어제보다 상쾌한 출발이야’ 속으로 중얼거렸다. 정오가 지날 무렵엔 앞마당 라일락 나무에 어김없이 참새들이 떼 지어 날아들었다. 매일의 시작을 알리는 첫손님이자 단골손님이다. 오후 1시가 지날 즈음부터는 자세를 고쳐 앉고 오늘의 첫 ‘사람손님’에 대비하기 시작했다. 문을 연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았지만 일주일에 두어 차례 꼬박꼬박 찾아주는 단골도 한두 분 생겼다. 가끔 이웃 주민이 이 동네에 하나밖에 없는 가게 잘 돼야 한다며 테이크-아웃을 해가시기도 한다. 늘 이때쯤이었다.

 하지만 오늘따라 단골손님도, 동네 주민도 볼 수 없었다. 처음에는 쏟아지는 볕을 만끽하며 맘 편히 글을 끄적였다. 그러다 문득 시계를 보니 3시였다. 그 무렵부터는 ‘손님이 한 분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오늘 하루 출퇴근 교통비와 점심값 - 그래봤자 2천 원짜리 선식으로 때웠지만 - 정도는 벌고 가면 좋을 테니까. 꼭 그게 아니라도 아침부터 부지런히 청소한 바닥에 신발 자국이 하나쯤은 묻어 있어야 내일 그걸 닦아내는 맛도 날 테니까. 다 떠나서 하루 종일 혼자 있으면… 음...


일인칭 카운터 시점. 문아 이쯤되면 한 번 열리지 그래?


 이런저런 이유를 발골해내고 있다 보니, 정말로 커플로 보이는 손님 두 분이 대문 앞에 나타났다. 참 신기하기도 하지.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손님 맞을 채비를 했다. 사실 채비라고 해봤자 두 손 공손히 모으고 서서 기다리는 것뿐이다. 마음만 분주할 뿐. 두 손님은 가게 간판 앞에서 한참 사진을 찍었다. ‘우리 가게의 나무 간판이 예쁘긴 한가 보다’ 나름대로 흡족해하는 사이 두 분은 마당 안으로 들어왔다. 우리 가게의 마스코트인 라일락 나무 앞에서 서로 돌아가며 사진을 찍어주더라. 꽃이 갓 피기 시작한 나무가 제 역할을 하는구나 싶은 순간, 두 분은 나와 살짝 눈이 마주치더니 휙 하고 돌아서 나가버렸다.

 익숙한 장면이다. 매일 한두 분씩은 이렇게 사진만 찍고 돌아가신다. 가끔은 지나가다 신기해서 들렀다며 한 바퀴 둘러보고 나가는 분들도 계신다. ‘너무 예뻐요. 다음에 올게요’라고 웃으며 말씀하시는데, 마음이 쓰리지만은 않다. 그래도 찍힐 만한 풍경, 둘러볼 만한 공간이구나 싶어서. 돌아서는 등허리를 바라보는 주인장의 눈매는 아직 매서워지지 않았다.
 
 오후 3시 반. 묵직한 발걸음 소리가 멀리서 들려왔다. 사람 구경하기 힘든 골목이기에 발걸음 소리도 제법 선명하다. 속도를 측정하기도 쉬운데, 걸음 주기가 이렇게 빠른 걸 보면 손님은 확실히 아니다. 아니나 다를까 택배기사님이 바쁜 걸음으로 다가와 택배 상자를 툭 놓고 가시더라. 알라딘에서 중고로 주문한 그림책 두 권이었다. 상자 테이프 뜯는 소리가 가게 안에 쩌렁쩌렁 울려퍼졌다. 손님이 계시면 가위로 조용히, 안 계시면 손으로 쭉쭉 테이프를 찢는다.  


3인칭 라일락 시점. (feat.손님 기다리는 프레드릭)


 오후 4시 반. 이쯤이면 더 이상 손님이 찾지 않는 시간이다. 참새 손님, 사진 손님, 택배 손님으로 오늘 영업은 마무리되려나 보다. 그래도 하루에 서너 분은 꼭 와주었는데 오늘은 좀 특별한 날이었다고 웃어넘기며 설거지를 시작했다. 점심에 내가 마신 홍차 잔 하나가 덩그러니 싱크대에 놓여 있었다. 이것만 안 마셨어도 오늘 손에 물 한 방울 안 묻힐 수 있었는데! 하루에 몇 번은 웃어야 건강에 좋다니 스스로를 웃겨보면서, 평소보다 물을 시원하게 틀어놓고 설거지를 시작했다. 얼마가 지났을까. 뒤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돌아보니 낯선 손님 한 분이 말똥말똥 서 계셨다. 설거지하던 손을 마른행주로 허겁지겁 닦아냈다.

“어서 오세요. 여기 써놓은 이용 방법 읽어보시고요. 음료 한 잔 골라주시면 자리로 가져다 드릴게요.” 이제는 제법 익숙해진 인사말을 건넸다. 체온 측정과 큐알코드 체크까지 능숙하게 마쳤다. 음료 메뉴판을 한참 쳐다보던 손님은 우리 가게의 시그니쳐인 수제 오미자차를 주문했다. 그리고는 머뭇머뭇 거리다가 말을 꺼냈다.

“저, 편지 쓰고 가도 돼요?”

 우리 가게는 음료 대신 2시간마다 공간값을 5천 원씩 받는데, 누군가에게 편지를 쓰고 가면 그 2시간을 무료로 이용하게 해드린다. 어떤 사정으로 건넬 수 없게 된 편지를 가게에 대신 놓아두겠다는 취지다. 사람들의 사연이 쌓이는 곳, 돈보다 귀한 가치가 교환되는 곳으로 가게의 정체성을 쌓고 싶은 마음이었다. 개업하고 3주간  통의 편지가 쌓였고, 오늘의 유일한 손님이 다섯 번째 편지를 남기려는 모양이었다.

“그럼요.” 웃으며 말씀드린 뒤 오미자차와 함께 편지지와 봉투를 자리로 가져다 드렸다. 손님은 머쓱한 표정으로 호두정과 한 개를 더 주문했다. 나무그릇에 호두정과와 휴지 두 장을 담아내어 드리고 카운터에 돌아와 앉았다. 때마침 주기적으로 돌아가는 냉장고 모터 소리가 툭 하고 꺼졌다. 완벽한 적막의 시간이다. 읽는 데 방해되실까 얼른 카페 BGM을 두 칸 줄였다. 한 분의 손님이 계실 때는 수시로 오디오 볼륨을 조절하게 된다. 음악마다 녹음 상태가 달라 볼륨이 미세하게 작아졌다 커졌다 하는데, 워낙 작은 가게이다 보니 조금만 차이가 나도 손님의 읽는 흐름이 깨질 것만 같아서. 최대한 자연스럽게 줄여야 하기에 다음 음악으로 넘어가는 찰나, 혹은 간주가 시작되기 전 음악이 잠시 끊기는 찰나를 놓치면 안 된다.

 오늘의 유일한 손님은 한 시간 남짓 가게에 머물렀다. 어느 순간 펜 끄적이는 소리가 닥닥 들려오다 멈추더니 드르륵 의자 끌리는 소리가 이어졌다. 카운터로 나온 손님의 왼손에는 두툼히 접힌 편지봉투가 들려 있었다. “편지는 앞마당 편지함에 넣어주시면 되고요, 편지 쓰셨으니까 공간값은 안 받고 호두정과 값만 받겠습니다. 2,500원입니다.” 손님은 꾸벅 인사를 한 뒤 밖으로 나가다가, 마당에서 잠깐 발걸음을 멈추었다. 그리고는 돌아서서 물어보았다. 이 나무는 이름이 뭐예요? 

“라일락 나무예요. 마침 꽃이 막 피기 시작했어요.” 
대답을 듣더니 손님은 마스크를 벗고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바람이 싣고 온 향기를 콧등에 얹히려는 듯. 그리고 다시 돌아보더니 말했다.

“저 여기 오려고 춘천 왔어요.”
“아, 정말요? 어떻게 알고 오셨나요?”
정확히 기억 안 나는데 이런 데가 생긴다는 걸 알고 나서 문 열면 꼭 한 번 와봐야지 생각했어요.”




 손님이 떠나고, 오늘 하루도 떠나고, 편지만 남았다. 곧 문을 닫을 시간이었다. 신용카드 단말기 정산 버튼을 누르려다 이내 관두었다. 호두정과 한 개. 정산보다 기억이 빠른 게 당연했다. 아무도 커피를 마시지 않은 까닭에 커피머신을 씻을 필요도 없었다. 손님이 유일하게 머물렀던 2번 테이블을 젖은 수건으로 훔쳐내고, 누가 썼는지 분명한 화장실 휴지통을 비워내고, 세면대 주변 물 몇 방울을 닦아냈다. 테이블마다 켜 두었던 스탠드 조명을 끄고, 온수기를 온도를 낮추고, 제빙기 얼음을 여섯 번 퍼내서 냉동고로 옮겼다. 물통도 차례로 비웠다. 마지막으로 오디오의 off 버튼을 눌렀다. 적막의 시간이 찾아왔다.


전지적 퇴근 시점.


 어둑해진 퇴근길. 대문을 걸어 잠그고는 편지함에 든 편지를 꺼내 들고 집까지 걸어갔다. 약사천에서 공지천을 따라 40여 분을 걷다 보면 우리 집이다. 가는 길의 8할은 시냇물이 졸졸 흐른다. 물소리를 배경음악 삼아, 늘어선 가로등을 조명 삼아 편지를 읽으며 걸었다. 밤 산책이나 조깅하러 나온 동네 사람들 사이로 천천한 걸음으로 연필의 활자를 읽어내렸다. 나한테 쓴 편지도 아닌데 마지막 두 문장에 두서없이 눈물이 고였다. 오늘 유일했던 손님의 진심. 이토록 여린 분이라면 짐작건대 아까 호두정과도 미안해서 괜히 드신 걸 거다. 손님의 첫인상, 인사말, 발걸음 소리를 어렴풋이 되새겨봤다. 얼굴을 잘 기억하지 못하는 편이라 다시 오신다고 해도 알아보기 쉽진 않을 거다. 다만 어떤 낯익은 기운이 느껴지기만 바랄 뿐이었다. 어느새 집이었다.

 오천 원 대신 건네받은 한 장의 편지에 값진 하루의 문이 닫혔다. 노곤해진 다리를 주무르며 빈 소파에 철퍼덕 누워 웅얼였다.

‘첫서재 하길 잘했어. 그래도 내일은 손님이 조금은 더 왔으면 좋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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