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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묭 Mar 28. 2021

카페를 차린 뒤 일주일간 들었던 소리


 ‘아이스 카페라떼가 너무 연하다’는 소리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개업한 지 얼마 됐다고 벌써 두 번째 들은 소리다. 죄송한 마음에 음료를 바꿔드려도 마음이 편치 않다. 그 날 저녁 가게 문을 닫고 아이스 카페라떼만 종류별로 다섯 잔을 들이키며 맛을 비교했다. 원두를 바꿔보고, 우유를 바꿔보고, 커피 양을 조절해보다가 겨우 범인을 잡아냈다. 제빙기 얼음이었다. 우리 가게는 가정용 소형 제빙기를 쓴다. 원래는 업소용 제빙기를 먼저 샀는데, 소리가 너무 시끄러워 아담한 공간에서는 도저히 계속 켜 놓을 수가 없기에 추가로 장만했다. 그런데 거기서 나오는 얼음이 우유에 닿자마자 녹아버려서 카페라떼에서 물맛이 나는 거다. 업소용 제빙기의 단단한 얼음과는 확연히 맛이 다르더라. 그렇다면 소음을 감수하고 업소용을 계속 켜놓아야 하나. 그러기엔 명색이 북카페인데 온종일 세탁기 돌아가는 듯한 소리가 진동할지도 모른다. 결국 미니 냉동고를 하나 또 사서 제빙된 얼음을 더 단단히 얼려 보기로 했다. 이 비좁은 주방에 냉동기기만 세 개라니.

 오후 4시 무렵이면 한적한 시간이 찾아온다. 주변에 가게 하나 없는 옛 동네라 사람 발걸음 소리조차 거의 들리지 않는다. 가장 평화로워야 할 시간에 ‘윙~’하는 소리가 점점 커지더니, 가게 안으로 왕벌 두 마리가 날아들었다. 개업 축하 꽃다발 냄새를 맡았나 보다. 날씨가 포근해 문을 활짝 열어둔 게 화근이었다. '너도 축하해주러 왔구나'라며 반갑게 맞이해주...기는 개뿔. 앉아계신 손님들 놀랄까봐 얼른 벌떡 일어났다. 벌이나 벌레 따위는 어릴 적부터 가뿐히 잡아온 사람인 척 주문서 노트를 휙휙 휘둘렀다. 속으로는 쏘여도 죽지는 않게만 해달라며 기도했다. 이런 내가 딱했는지 관대한 벌들께서 알아서 나가주시더라. 벌에게 고맙다고 더듬이 송신을 보내며 구비 목록에 ‘에프킬라’를 추가로 적어뒀다.

 동네 손님 두 분의 대화 소리에도 가슴을 졸였다. 호탕하게 웃으며 큰 목소리로 말씀을 나누시는데, 나야 괜찮다만 반대쪽 방에서 혼자 책 읽고 계신 손님에게 방해가 될까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책 읽고 사색하는 공유서재 겸 북카페이니 담소는 조용히 나눠달라’고 카운터에 떡 하니 써 두었건만. 가서 정중하게 부탁드려볼까? 아니면 혼자 오신 손님께 가서 ‘혹시 좀 시끄럽지 않으시냐’고 먼저 물어봐야 하나? 머뭇거리는 시간이 길어졌지만 해결되는 건 없었다. 다행인지 얼마 안 가 두 분이 나가셨다. 알고 보니 근처 육림고개에서 가게 하는 분들이시란다. 말씀 안 드리길 잘했다. 하마터면 어색한 이웃사이 될 뻔했네.

 ‘첫서재’ 문을 연 지 일주일. 온갖 소리들이 귀를 어지럽힌다. 몸은 늘 카운터에 매여 있고 시선도 고정돼 있다 보니 비교적 자유로운 청각이 활성하는 모양이다. 대개는 내가 서툴러서 듣게 되는 소리가 많다. 음료 만드는 기기를 제대로 못 다뤄서 나는 소리, 급하게 설거지하느라 컵끼리 요란하게 부딪히는 소리가 그렇다. 한편으로는 차분한 공간을 운영하다 보니 일상의 소리마저 소음으로 인식되기도 한다. 옆집 보일러에 기름 넣어주러 온 급유차 엔진 소리는 어찌나 우렁차던지. 기름을 무슨 드릴로 땅 파서 넣나, 게다가 참기름 짜듯이 이렇게 천천히 넣나 싶다. 손님들 뒤통수만 살피며 얼굴 표정이 일그러지지 않으셨기를 기원한다. 이런저런 소리에 둘러싸여 하루를 보내고 나면, 온갖 환청이 잠자리까지 따라와 웅웅거리며 시비를 건다. 눈을 감아도 귀가 열린 채로 잠이 드는 나날이다.

 학창시절 그 흔한 학폭 사건으로 한쪽 귀가 살짝 어두워졌는데 지금껏 회복되지 않고 있다. 게다가 등하교를 거쳐 출퇴근까지 30년 가까이 이어폰을 꽂고 다녔다. 청각이 약해질 대로 약해진 덕분에 소리에는 둔감하게 살아온 편이었다. 여행지에서 누가 옆에서 코를 골아도 잘 자고, 층간소음 때문에 신경이 예민해진 적도 드물다. 잘 안 들리는 것도 나름대로 괜찮다고 여기며 지냈는데, 지난 1주일은 처음 겪어보는 소리들을 허겁지겁 줍느라 시간이 혼미하게 흘러갔다. 낯선 소리들에 완벽히 포획된 나날들. 내게 달린 두 귀도 게으르게 기능하다가 갑자기 민감해지느라 고생이 많았을 거다. 그래도 주인 잘 되게 해보겠다고 안 쓰던 감각까지 동원해가며 열심히 일해준 것 아닌가.

 그렇다고 마냥 속상한 소리만 들은 것은 아니다. 처음 카페지기로 살기 시작한 지난 일주일. 여태껏 살다 처음 들어본 소리가 잠든 세계를 깨우기도 했고, 그동안 무심코 지나쳤던 소리도 귀중하게 들리기 시작했다. 수습사원처럼 바짝 얼어 있는 카페지기의 마음을 이따금 녹여준 고마운 소리들이었다. 이를테면 아침 청소를 하다가 문득 소형 제빙기에서 툭, 하고 첫 얼음이 떨어지는 소리. 정오 무렵이면 어김없이 라일락 나무로 찾아오는 참새들의 지저귐. 장독대에 심어놓은 미선나무에 나비가 날아들면, 그걸 창문 바깥으로 바라보던 어린 손님이 내뱉는 맑은 탄성 소리. 아무도 오지 않는 고요한 오후에야 60년 된 나무 천장이 조용히 숨을 쉬며 뱉어내는 바스락거림. 바쁜 틈새에 잠시 의자에 앉아 탄산수를 꺼내 마실 때 ‘치익-’하고 기포가 일어나는 소리. 그걸 한 모금 들이켰을 때 혀 안에서 이는 차가운 것들의 파닥임.

 무엇보다 멀리서까지 찾아와준 귀한 손님이 멀리서 왔다고 말하며 활짝 웃는 소리. 그 손님이 읽을거리를 고를 때 책의 두툼한 모서리가 나무 책장에 둑둑 내려앉는 소리. 그리고 가게 어딘가에서 책장이 넘겨질 때마다 들려오는 종이의 여린 마찰음. 아마도 책이 있는 카페를 운영하기에 주워 담을 수 있는 특권 같은 소리일 것이다.

 그리고 하나 더. 첫서재의 BGM 소리. 아껴 고른 음악이 온종일 귀를 만지는 하루야 말로, 미운 소리들을 다 삼키고도 남는 배부른 행복이다.


오미자차는 그래도 맛있대요 다들...ㅠ


(첫서재 인스타그램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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