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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묭 Mar 21. 2021

첫서재, 오늘 문 엽니다


 지난해 늦가을, 브런치에 ‘휴직하고 춘천 살러 간다’며 글을 연재하기 시작한 지 5개월 만이네요. 오늘은 첫서재가 문 여는 날입니다.


 그동안 분에 넘치는 응원을 받았습니다. 제 글을 읽어주고, 공감을 표하거나 댓글을 남겨준 분들은 대부분 살다가 저와 한 번도 마주친 적조차 없겠지요. 그 ‘모름’이 좋았습니다. 모르는 사람끼리 다정할 수 있다는 게요. 그렇게 익명의 다정함을 줍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는 나 역시 모르는 누군가에게 관심을 주고 싶은 사람이 되어 있더군요. 나만 알고 나만 중요했던 저로서는 퍽 신기한 경험이었답니다. 조금은 세계가 확장된 것 같기도, 삶이 뒤늦게 성숙한 것 같기도 해서요.

 그 모르는 분들, 모르지만 모르지 않기도 한 분들을 하나하나 초대하고픈 공간이 오늘부터 문을 엽니다. 꿈꿔왔던 공간에서 제가 머물 수 있는 기간은 단 스무 달이에요. 휴직을 끝내고 회사로 돌아가면 아예 문을 닫아야 할 수도, 저 아닌 누군가에게 관리나 운영을 부탁드려야 할 수도 있을 테니까요. 고작 스무 달 운영하려고 이토록 과하게 시간과 돈과 정성을 들였다는 게 좀 바보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다만 그것조차 특권이고 행복이라 믿어요. 바보 같아 볼 기회가 있다는 게, 단 스무 달이라도 꿈꾸던 공간에서 머물 수 있다는 게 어딘가요.

 영혼의 쇳물을 들이부어 만든 이 공유서재에서 제게 주어진 스무 달 동안, 꼭 되고 싶은 것들이 있습니다. 우선 글 쓰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서재를 만든 가장 큰 이유이겠지요. 누군가에게 ‘글 쓰는 사람’이라고 자랑스럽게 말할 수 있는 내가 되고 싶어요. 글이란 게 참 고약해서, 쓰기 위해 내면에 무언가를 채워나갈수록 더 부끄러워져서 도리어 쓰기 힘들어지는 굴레로 사람을 몰아넣더군요. 그 굴레 바깥에서 웃어보고 싶어요. 스무 달 동안은 가게를 꾸리면서 원 없이 읽고, 배우듯 기록하고, 차분한 마음으로 작지만 귀한 세상을 관찰하며 살고 싶어요. 그러다 보면 언젠가는 존경하고 질투하는 작가들을 조금이라도 닮아가지 않을까요? 제가 좋아하는 한 브런치 작가님은 연재 1년을 정리하는 글에서 ‘스스로 쓰는 사람으로 인식하게 된 게 가장 큰 성과’라고 말씀하셨어요. 스무 달 뒤 첫서재 시즌1의 문을 닫을 무렵에는 저도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고 싶어요.

 그리고 듣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내 이야기를 세상에 전하고픈 욕심의 질량만큼, 타인의 숨죽인 욕구에도 귀 기울이고 숨을 불어넣어주는 누군가가 되고 싶어요. 그게 균형 잡힌 삶인 것 같다고 최근 들어서야 비로소 깨닫기 시작했거든요. 첫서재에서 시작하는 프로젝트들도 이와 맞닿아 있답니다. 5년 뒤에 돈 아닌 것들로 숙박비를 받는 북스테이, 수수료 없이 팔아드리는 창작자 마켓, 커피값 대신 내는 손편지. 모두 궁극적으로는 타인의 삶을 듣는 기획들이니까요. 첫서재는 제 취향과 방향성을 마음껏 자랑하는 공간이기도 하지만, 누군가 쉽게 꺼내지 못하고 묻어둔 삶의 이야기들을 모으려는 공간이기도 해요. 꼭 구구절절 이야기를 나누지 않아도 서로에게 조용히 귀 기울이고 있다는 믿음이 구석구석에 스민 가게로 꾸려나가고 싶어요.

 마지막으로 친절한 사람이 되고 싶어요. 그동안은 나의 이해관계에 의해서만 친절을 베푸는 사람이어왔어요. 내 사람이라서, 내게 이득을 주는 사람이라서, 내게 해코지할까 봐 친절을 선별해서 내보여왔어요. 직업인으로서는 특히 더 그래왔지요. 이제는 마냥 친절한 사람이고 싶어요. 제가 마음 깊이 좋아하는 누군가처럼, 곁에 있는 사람의 계절을 늘 봄처럼 온화하게 바꾸어 놓는 사람이고 싶어요. 타고난 기질과 본성이 고약해서 힘들겠지만 그런 척이라도 하며 스스로를 속이고라도 살아보고 싶어요. 적어도 스무 달 동안은요. 바쁜 도시 생활을 벗어나 잠시라도 지방살이를 택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첫서재 역시 친절한 공간으로 꾸리기 위해 애를 많이 썼어요. 공간값을 내는 손님에게도, 돈 내지 않고 머무는 숙박객에게도, 동네 주민과 주변 가게 사장님들에게도 동일한 기억으로 남는 가게로 만들어보려 합니다.

 이런 소박하고도 거창한 꿈을 품고, 오늘 11시에 처음으로 가게 문을 엽니다. 잘 됐으면 좋겠어요. 사람이 많이 와서 잘 되는 것도 물론 좋지만, 스무 달 뒤에 ‘첫서재 시즌1’의 문을 닫을 때 저 스스로 방금 종알거린 말들 앞에서 웃을 수 있는 사람이었으면 좋겠어요. 어쩌면 브런치 연재를 하면서, 진짜 그런 사람이 될 수도 있을 거란 희망을 품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글로 저를 포장하며 살다 보니 언젠가부터는 글처럼 사는 사람이고 싶어졌거든요. 구독자분들께 진심의 감사를 전하고 싶은 이유입니다. 물론 연재는 끝나지 않았답니다. 어쩌면 지금까지는 프리퀄이고, 지금부터 르포가 시작되겠지요.

 첫서재에 들러주신다면 반가울 거예요. 오셔서 브런치 구독자라고 한 마디 툭 던져주시면 더 힘이 날 거예요. 그 순간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어찌나 들뜨는지요.  ‘모르는 사람’인 제가 쓴 글에 다정하게 조회수 1을 채워주셨듯이, 저 역시 오시는 분들의 일상에 ‘조회수 1’로 남겨지도록 품이 넓은 공간 꾸려놓고 기다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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