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일찍 첫손님이 왔다. 아침과 손님은 우리 가게에서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다. 11시에 문을 열긴 하지만 평일에는 대개 낮 1시가 넘어서야 첫손님이 온다. 그러다 보니 ‘open’ 간판을 내걸고도 늑장 부리며 게으른 청소를 이어가곤 하는데, 마침 이른 시간에 누군가 발을 들인 거다. 동네 마실을 나오신 듯한 수수한 차림새의 중년 여성이었다.
‘어서 오세요, 머물다 가시나요?’
손에 들고 있던 물걸레를 부랴부랴 내던진 뒤 인사를 드렸다. 잠시 망설이던 손님은 이내 ‘그냥 테이크 아웃 해갈게요’라고 했다. 청소도 끝나지 않은 가게라 어수선해 보여 그랬을까. 조금 더 부지런히 움직일 걸. 아무래도 카페라기보다는 공유서재이다 보니 머물고 가셨으면 하는 마음이 늘 한 뼘 더 앞선다. 손님은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주문한 뒤 내게 물었다. “잠시 둘러봐도 돼요?”
당연하지요, 음료 준비하는 동안 천천히 둘러보세요, 라고 말했지만 따뜻한 아메리카노는 우리 가게에서 가장 시급히 만들어지는 음료다. 금세 추출되어버린 커피를 손에 들고 카운터에서 잠시 기다리기로 했다. 벽 건너 그림책방에서는 손님의 느린 발걸음 소리가 또각또각, 거리다 멈추다를 반복했다. 바닥이 전하는 소리에 귀를 대고 마음속으로 일 분을 세었다. 58, 59, 유우우우욱십. 손님이 계신 곳으로 다가갔다. 천장 서까래를 향해 있던 손님의 시선이 천천히 내려와 내게 닿았다.
“여기 문 연 지는 얼마나 됐나요?”
나직한 말투가 벽 건너 들려오던 발걸음 소리를 닮았다고, 잠깐 생각했다. 더운 날에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마시는 사람만의 온기어린 음성이었다.
“저희 한 달 조금 넘었어요. 여기 동네 분이세요?” “저, 여기...”
그녀의 미간이 잠시 주름지다 펴졌다.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고민이었던 모양이다.
“저, 이 집 며느리였어요.”
폐가를 고쳐 만든 우리 가게엔, 폐가이기 전까지 누군가 살았을 것이다. 이 집을 살 때 그 누군가의 아드님을 만난 적이 있다. 그분 부모님께서 몇 년 전까지 이곳에서 살다 차례로 돌아가셨다고 전해 들었다. 그 뒤로는 딱히 어찌하지 못해 방치해두었다고. 그러니까 지금 내 앞의 손님은, 그분의 아내이자 이 집 옛주인의 며느리다. 나보다 이 집과 훨씬 더 오래 인연을엮어왔을.
폐가였을 당시 첫서재.
“안녕하세요? 안 그래도 저희가 가게 문 열고 한 번 모시려고 했어요. 갓 시작하는 단계라 정신이 없어서 연락이 늦었네요.”
겉치레 같은 인사였지만 지난겨울부터 푹 익힌 진심이었다. 날이 풀리는 5월이면 꼭 이 집의 옛주인 내외를 모시려 했다. 정성껏 고쳤다고 자랑하고픈 분들이었고, 한편으로는 칭찬받고도 싶었다. 집의 역사와 뒤엉켜 살았던 유일한 증인들의 시선이 궁금하기도 했다. 다만 벌써 이렇게 불쑥 찾아오실 줄이야. 이왕 먼저 오셨으니 천천히 둘러보고 가시라는 말에 그녀는 손사래를 쳤다.
“사실 이 동네 다른 데 갈 일이 있어서 지나가다 잠시 들른 거예요. 지금은 어디 가봐야 하고, 다음에 책 읽으러 올게요.” “그럼 그땐 내외분 같이 오셔요. 구석구석 구경시켜드리고 싶어요.”
못내 아쉬워 앞마당까지 배웅을 나가면서 무슨 말을 더 꺼낼지 고민했다. 묻고픈 게 많았지만 한 마디만이 허용될 시간이었다.
“어떠셨어요?”
대충 그린 추상화 같은 나의 질문에 며느리 분께서는 가던 걸음을 잠시 멈추었다. 집에 관한 물음이었는데 사람에 관한 말이 돌아왔다.
“어머니께서 책을 참 좋아하셨어요. 나이 드셔서도 책을 항상 옆에 두고 사셨는데. 어머니 돌아가시고 이 집이 책 읽는 가게가 되었다니…”
어떤 형용이 내게 가 닿아야 할지 잠시 더 고민하던 그녀는,
“...참 신비하네요.”
라고 끝맺었다. 우린 거기서 헤어졌다.
지금은 ‘첫서재’라는 소박한 이름의 공유서재가 된 이 집은, 누군가 팔려고 해서 산 게 아니었다. 그저 여행자였던 나의 시선이 머무른 마을에서 가장 온화한 자리에 터 잡고 있던 폐가였을 뿐이다. 방치된 풍경 사이로 살아남은 파란 지붕과 라일락 나무가 어찌나 갖고 싶던지, 덜컥 동네 부동산에 찾아가 이 집의 주인을 알아봐 달라고 졸랐다. 정성껏 고쳐서 책 읽는 가게로 만들겠다는 꿈을 꿨고, 지금은 그럭저럭 현실이 됐다.
리모델링을 위한 철거 공사를 시작하던 날, 가장 무거운 건 책더미였다. 수십 년은 묵은 듯한 책들이 방마다 빼곡히 쌓여 있었다. “책방 될 집이라고 책이 많네요”라던 현장부장님의 농담을 흘려들었는데, 옛주인 며느리 말씀대로 라면 농담처럼 들을 얘기가 아니었던 게다. 어쩌면 이 집으로 나를 이끌었던 건 파란 지붕과 라일락 나무만이 아니었을 수도 있겠다. 오래전부터 배어 있었을지도 모를 책의 냄새와, 책을 사랑하는 사람이 수십 년을 머물던 기운이 우리를 이곳에 발걸음하게 하진 않았을까? 며느리 분의 말씀처럼 신비한 얘기겠지만.
방마다 책이 켜켜이 쌓여있던 집.
보름이 지났다.
5월 어버이날. 처음으로 다른 사람에게 하루 동안 가게를 맡겼다. 8살 아들내미의 축구대회가 있던 날이었다. 다행히 카페를 차려 본 적 있는 후배가 흔쾌히 도와주기로 했다. 한창 축구대회를 관람하던 중 스마트폰 진동이 울렸다. 후배였다.
“선배, 옛주인 아드님께서 오셨는데 어쩌죠?”
하필 처음 가게를 비운 날에 찾아오시다니. 전화를 바꾼 뒤, 사정을 설명드리며 최선을 다해 아쉬운 마음을 전했다. 다음에 꼭 다시 와달라는 부탁도. 그리고는 후배에게 잘 모셔달라고 당부하고, 음료와 다과도 그냥 내어드리라고 했다. 나중에 들으니 한사코 거절하셔서 못 드렸다고 한다. 그 대신 행복이란 이름의 나무 화분을 하나 선물하고 가셨다고. 후배는 옛주인 아드님의 방문 모습을 허락받고 영상으로 찍어두었다며 내게 전달해주었다.
늦은 밤, 축구대회가 끝나고 문 닫힌 가게로 돌아왔다. 흔들의자에 눕듯이 앉아 후배가 보내준 영상을 하나씩 돌려봤다. 아드님의 모습뿐 아니라 목소리까지 생생히 담겨 있었다. 여기서 나고 자라서 결혼한 뒤 분가를 하셨다는, 그리고 집을 팔 때 책 읽는 가게를 만든다는 말에 흐뭇하셨다는 음성이 선명히 들려왔다. 어버이날이라 문득 부모 생각이 나서 와봤다는 말씀도. 실제가 아닌 화면에서 재회하니 자꾸 엇갈리는 발걸음이 못내 더 아쉬워졌지만, 한편으로는 삶이 영화 같다는 생각에 잠깐 취하기도 했다.
집으로 돌아가기 전, 가져오신 나무 화분을 아드님의 방이었다는 곳 귀퉁이에 놓아두었다. 60년 가까이 집을 지켜온 라일락 나무를 마주 보는 자리였다. 두 나무를 번갈아 바라보며, 그리고는 가게 문을 나긋이 잠그며 문득 먼 시간을 그렸다. 다음에 정말 다시 오시면 옛주인 할머니에 대해 조금 물어봐야지. 어떤 분이었는지. 어떤 책을 아꼈는지. 그리고 그 책을 서재에서 가장 볕이 잘 드는 곳에 놓아두어야지.
돌아오는 길. 밤하늘 어딘가와 연결된 기분에 마음이 자꾸 단단해졌다. 예전부터 이런 삶을 꿈꿨던 것만 같은 착각이 그런 기분을 부추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