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묭 Jun 06. 2021

세상에 태어나 들을 첫 번째 노래

<나를 닮거나 닮지 않기를 바라는 너에게>


 7년 전 늦봄은 무수한 노래들이 머릿속을 어지럽히던 계절이었어.

 곧 태어날 존재에게 선물할 단 한 곡의 노래를, 나는 준비하고 있었거든. 네가 엄마의 자궁 밖으로 나와 세상과 첫인사했을 때, 처음으로 들려줄 노래를 아껴 고르고 있었단다.

 아마 지구에 노래가 없었다면 인류는 두 배 더 많은 전쟁을 치러야 했을지도 몰라. 더 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혹은 살았을지도 모르지. 너도 태어난 이상 좋든 싫든 노래에 둘러싸여 살아가게 될 거란다. 어떤 노래는 네 귀에 소음일 뿐이겠고, 또 어떤 노래는 네 상흔을 굳이 들추어내 아프게 하고, 어떤 노래는 너의 생을 뒤흔들어 놓을 거야. 꼭 그렇게 거창하게 다가오진 않을지라도 살다 보면 노래가 필요한 순간이 계절처럼 찾아오기 마련이야.

 그런 ‘노래’라는 존재가 세상에 있다는 걸 너에게 처음 알려줄 때, 인간이 빚은 무수한 노래 중에 무엇부터 들려주어야 할까. 쓸 데 없는 고민처럼 여길지라도 나는 한참, 아주 한참 그 생각에 빠져 살았어. 네가 태어날 날은 나에게도 생애 단 하루로 남을 테고, 이 순간을 놓치면 나는 네게 더 이상의 멋진 선물을 해줄 수 없을 것만 같았거든. 네가 어렸을 때나 청춘의 강둑에서 헤엄칠 때나 얼굴에 주름 질 때나 변함없는 감성으로 들을 수 있는 노래, 마치 쌍둥이 형제나 부부처럼 부대끼며 배우고 미워하고 웃고 울면서도 늘 곁에는 두는 그런 노래를 선물해주고 싶었어. 혹시 내가 사라질 세상에서도 내 역할을 네게 대신해줄.

 그래서 몹시 신중한 마음이었지. 우선 멜로디가 단순하고 보편적이면 좋겠다고 생각했어. 생의 파고가 높을 때든 낮을 때든 늘 곁에 두기에 편안한 친구가 되어야 할 테니까. 노랫말도 중요했어. 내가 이제껏 경험한 세상을 단 몇 줄의 언어로 담아낸 노래가 있을까. 가장 가까운 답을 찾기 위해 나는 생을 되감아 수없이 많은 음악들을 복기해내야 했어. 네가 나처럼 살거나 나처럼 살지는 않기를 바라는 복잡한 심정을 담아서. 그러다 보니 지나치게 많은 노래가 현재로 소환되었어. 네가 유영하던 불룩한 배에 밤마다 귀를 대면서, 직장에서 정신없이 일하면서, 복잡한 출퇴근 지하철에서, 어떤 때는 무작정 거리를 걸으면서 추려내고 또 추려내었지. 결국에는 단 세 곡 만이 남았어. 그중 어떤 노래를 선물할지는, 네가 태어나는 순간 마음에서 흘려보내기로 했어.

 6월의 첫날 너는 세상과 첫인사했고, 이튿날 아침 병원 문을 빠져나와 첫 햇살을 먹었어. 하늘 위에 저 밝고 둥그렇고 커다란 것이, 너에게 고된 무엇이 닥쳐와도 다음 날이면 어김없이 네 등을 비추어줄 거라고 말해주고 싶었단다. 그리고 너를 차에 태우고는, 오래 준비한 음악을 틀었어. 결국 이 노래라고, 노래 이름과 노랫말과 멜로디에 네게 건네고픈 것들을 가득 품은 노래는 이것뿐이라고, 어쩌면 노래를 선택하기 전부터 이미 나는 정답을 알고 있었을 거라고 생각하면서. 네가 놀라지 않을 만큼의 소리로 집으로 향하는 내내 들려주었어.

 노래가 흐르는 동안, 너는 아마 눈을 감고 있었을 거야.




 벌써 7년 전 일이야. 지금의 너는 처음 내가 품었던 네 몸집보다 두 배는 큰 책가방을 어깨에 걸치고 매일 아침 학교로 향하고 있지. 선천적인 아데노이드 비대증을 극복하고 씩씩하게도 자라주었어. 초등학생이 된 뒤 처음 맞는 너의 생일에, 불쑥 나는 7년 전 기억을 꺼내어 활자로 새겨두고 있단다. 네가 읽게 될 가까운 미래를 곱씹어 상상하면서. 이제 아주 조금만 더 자라면, 7년 전부터 준비해둔 이 노래와 네가 친해질 수도 있을 거란 기대를 품기 시작했거든.

 날 닮은, 도무지 나 같아서 섬뜩하고 안쓰럽고 사랑스러운 것아. 생일 축하해. 삶은 네가 태어나 처음 들은 노래처럼 멜로디가 되어 흐를 거야. 물론 간혹 어둠의 빈틈에서 움츠리는 순간도 찾아올 거야. 그때 나는 이 노랫말처럼, 너를 그냥 놔둘게. 빛과 어둠을 수없이 오가며 너는 조금씩 어른이 되어 갈 테니까. 앞에서 이끌지는 않아도, 옆에서 나란히 걷지 않아도, 뒤를 돌아보면 늘 있는 사람이 될게, 너에게.

There will be an answer, let it be.




매거진의 이전글 아무도 요청한 적 없는 글 배달, 꼭 1년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