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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묭 May 23. 2021

아무도 요청한 적 없는 글 배달, 꼭 1년째.

<바다에 띄우는 54번째 유리병 편지>


 매주 글을 써서 일요일마다 올리기로 한 지 1년이 지났습니다.

 아무도 제게 요청한 적 없지만, 꼭 1년 전부터 저는 그러기로 했습니다. 거창한 이유는 없었어요. 그저 매주 글을 쓰는 사람이고 싶었고, 증명받고 싶었습니다. 누가 증인이 되어줄지는 모르겠지만 바다에 유리병을 띄워 보내는 심정으로, 기약 없는 항해를 해보자는 마음이었지요.


(1년 전, 시작을 알린 글)


 1년이 지났습니다. ‘100주간’ 연재하겠다고 공언했으니 아직 항해가 끝나려면 한참 남았네요. 그래도 절반의 여정을 마친 지금, 중간정리를 해두고 싶었습니다. 그간 숱한 우여곡절에도 한 번도 연재를 거른 적이 없었고,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제겐 유의미한 변화가 생겨났거든요.

 눈에 띄는 변화는 아무래도 숫자들일 거예요. 글을 올리고 24시간이 지난 뒤, 제 글을 몇 명이 읽었는지 늘 확인해 봅니다. 다른 날은 몰라도 첫 하루만큼은 꼭 확인을 하게 돼요. 제 글을 기다려준 사람들의 숫자에 가장 가깝다는 생각에서요. ‘매주 일요일 연재’를 선언하기 전까지는 한 번도 글을 올린 당일 조회수가 세 자리를 기록한 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적어도 매번 세 자리의 구독자 분들이 제 글을 하루 안에 읽어주세요. 물론 포털이나 카카오 채널에 노출이 되면 조회수가 부쩍 뛸 때가 있지만, 그건 제 정성 밖에서 일어난 행운일 뿐이겠죠.

 구독자 수도 상상 이상으로 늘었습니다. 일요일 연재를 시작한 시점은 브런치에 첫 글을 올린 지 1년 반 가량 지난 무렵이었어요. 그때까지 구독자는 700여 명, 사실 그때도 놀라울 만큼 감사한 숫자였지만, 1년이 더 지난 지금은 훨씬 더 많은 분들이 제 다음 글을 볼 가치가 있다고 여겨주고 있습니다. 댓글을 주고받으며 인연을 쌓아가기 시작한 분들도 조금씩 생겼고, 가끔 첫서재에 찾아와 ‘일요일마다 잘 읽고 있어요’라고 말씀해주시는 분들 덕에 하루가 붕 뜨는 날도 늘었답니다. 모르는 누군가가 내 글을 기다려준다는 것. 쓰는 사람에게는 무엇과도 교환하지 못할 가치겠지요.

 덤으로 출간 계약도 맺게 됐어요. 몇몇 출판사에서 고맙게도 제의를 해주셨고, 그중 유일하게 긴 시간을 두고 두 번 연락을 해주신 곳에 제 글을 맡기기로 했습니다. 아마 어른의 반성문 같은 수필집이 될 것 같아요. 내년 초 출간을 목표로 조금씩 글을 다듬고 있답니다. 그보다 훨씬 전에 쓴 여행 산문들도 다른 출판사와 이미 계약을 맺은 상태였는데요. 올가을이면 나오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어요. 지난 10여 년간 숨듯이 떠났던 어딘가에 대한 기록들입니다. 물론 무엇도 확실하진 않아요. 책이 인쇄되어 눈앞에 보이기 전까지는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까요. 그래도 책을 내준다는 말을 들은 것만으로도 얼마나 큰 힘이던지요.

 드러난 변화는 여기까지입니다. 제가 기록해두고 싶었던 건 도리어 드러나지 않았지만 제 마음속에선 분명히 일어났던 일들에 관해서예요.

 먼저 생각이 잡다한 저는 꾸준함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어요. 그래서 묵묵히, 꾸준히, 성실히 같은 단어들에 먼바다와 같은 경외감을 품고 살아왔지요. 그런 제게 매주 일요일은 스스로 몸을 묶고 향하는 감옥과도 같았답니다. 아무도 날 가둔 적 없기에 더 애써서 갇혀야 할 시공간이었어요. 그래도 지난 1년간 매주 그 상상의 창살 너머로 뚜벅뚜벅 걸어가면서, 도리어 ‘나도 무언가를 꾸준히 할 줄 아는 사람’이라는 해방감을 만끽할 수 있었습니다. 게을러질 때마다, 핑곗거리를 찾고 싶을 때마다 그 연약한 감정들을 달래고 글을 올렸을 때의 해방감을 상상하며 무어라도 끄적였어요. 약속을 지켜내고 있음을 마음 어딘가에 문신처럼 한 땀씩 새겨 가면서요.

 돈으로부터 자유로워진 기분도 덤으로 얻었답니다. 직장에 다닌 이후로는, 마감시간을 정해두고 사는 삶은 오직 화폐로만 교환해왔던 것 같아요. 월급을 주니까 기사를 마감하고, 매주 반복된 업무를 군말 없이 제시간에 처리해왔지요. 그에 반해 브런치에 올린 글들은 제게 아무 대가도 제공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금요일이나 토요일 아침까지 글감이 떠오르지 않을 때면 ‘누가 돈도 안 주는데 왜 머리 쥐어 짜내느라 스트레스를 받고 있지?’라고 되묻고는 했어요. 그래도 어떻게든 썼고, 올렸습니다. 그 비효율을 반복하면서 조금씩 제 자신이 좋아지기 시작했어요. 돈을 받지 않고도 무언가를 생산해내고 제때 납품하는 사람이라니요. 그게 나라니요. 돈에 묶인 삶일수록 불행하다면, 매주 마감시간마다 저는 행복에 가까이 닿아가고 있던 셈이지요.

 꾸준한 글쓰기는 죽어있던 감각들이 깨어나는 계기가 되어주기도 했습니다. 시간에 맞춰 글감을 찾으려면 잠재한 모든 감각과 경험과 지식까지 들추어야 했어요. 그저 운 좋게 영감을 주울 때마다 끄적이고 말았다면 결코 꺼내어지지 않았을 것들이겠지요. 글을 제때 쓰기 위해 먼 옛날을 뒤적이다 우연히 어떤 기억과 반갑게 조우하기도 했고, 지난날에는 몰랐던 지난날의 의미를 뒤늦게 정돈해볼 수도 있었답니다. 그리고 오늘 하루 특별한 일이 벌어질 때마다 놓치지 않고 포집하는 감각도 시나브로 확장된 것 같아요.

 무엇보다 지금까지 얻은 가장 큰 수확은, 내가 글쓰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이 확고해졌다는 겁니다. 글이 두려울 때도, 글 외에 다른 것들에 더 관심이 가는 시기도 있었지만, 매주 일요일마다 반드시 글로 되돌아와야 하는 일상이 결코 지겹지 않았거든요. 해내야 하는 일이 마침 좋아하는 일이라는 사실을 거듭 확인할 때마다 마음이 한 겹씩 견고해지는 기분이었어요. 아직 누군가에게 ‘글 쓰는 사람이에요’라고 말하기엔 부끄럽지만, 적어도 그런 사람이 되는 방향으로 걸어가고 있는 것만 같습니다.




 앞으로도 저는 매주 쓸 겁니다. 적어도 100번째 연재를 마치는 날까지는요. 불상사가 없는 한 그럴 거에요. 다음 주 글감은 정해지지 않았지만, 그걸 찾아 나서는 여정이 가장 신비한 일상이라는 걸 이제는 잘 알아요. 다음 일요일이 되면 저는 무언가를 완성해냈을 거고, 그 사실은 증명될 것입니다. 문득 좋은 글감이 떠올라서 썼든, 차근차근 준비한 생각을 썼든, 억지로 쥐어짜내 어설프게 썼든지요. 잘난 글도 못난 글도 다 제 얼굴이겠지요. 누가 봐줘서 더 고맙지만 그렇지 않아도 매주 무언가를 ‘잇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살아있음이 환기될 거예요. 지금의 저는 그렇게 살고 있습니다.

 매주 글을 올리기로 다짐한 계기가 되었던 책 <에브리맨>의 한 구절과 함께, 담담한 척했던 흥분의 중간정리를 마칠게요.

 “영감을 찾는 사람은 아마추어이고, 우리는 그냥 일어나서 일을 하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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