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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묭 May 17. 2020

아무도 요청한 적 없는 '글 배달' 시작합니다

<바다에 띄우는 첫 유리병 편지>


못난 얼굴인데 못나 보이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어렸을 적 별명이 애늙은이였던 저는 외모에 별 자신이 없었습니다. 그러다 좋아하는 여자애가 생겼는데, 그때 처음으로 헤어드라이기란 걸 써보기 시작했습니다. 뜨거운 바람을 꾹 참고 머리에 가져다 대고 있으면 머리카락들이 붕 떴는데 신기하게 좀 잘생겨지는 듯했어요. 그다음으로는 옷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지요. 유행하는 브랜드의 글자가 최대한 크게 새겨진 옷을 엄마를 졸라서 사 입었어요. 인터크루, 마우이 같은 메이커들. 그 커다란 글자들이 노안에 쏠린 시선을 데려가는 듯해서 묘하게 안심이 되었답니다. 고딩 때 첫 연애를 시작하면서부터는 다리가 길어 보이는 게 지상과제가 됐습니다. 키높이 운동화와 나팔형 바지가 동원됐고, ‘다리가 길어 보이는 학생복’이라는 광고 문구에 현혹돼 늘 엘리트 교복만 사 입었지요.


대학 때는 얼굴은 못생겼어도 체형은 괜찮은 부류의 사람들이 부러워졌습니다. 성형이 유행한 탓이죠. 제 문제는 얼굴보단 키와 체형이었거든요. 그들은 성형만 하면 괜찮아질 텐데 나는 체형을 바꿀 수도 키를 늘릴 수도 없으니 성형술이 아무리 발달해봤자 혜택을 못 누리잖아요. ‘내 이상형은 키 크고 하얀 남자였는데 왜 니를 만났을까’라는 농담인지 진담인지 모를 푸념을 여자친구에게서 들을 때마다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나도 멋진 남자이고팠는데, 모든 멋짐의 완성은 아무리 생각해도 ‘와꾸’ 같아서 결국 그 길은 포기해야 했죠. 아무리 공부를 하고 근사한 직업을 가져도 다다를 수 없는 멋짐의 길이라니요.


30대가 되어서야 제 외모는 그나마 빛을 발하기 시작했습니다. ‘애늙은이’였던 애가 늙어가는데 외모는 계속 그대로라 드디어 제 나이에 걸맞은 외모를 갖추기 시작한 거죠. 게다가 그간 잘생겨 보이고 싶던 어린 마음도 나이가 차오르니 점차 가라앉으면서, 굳이 사람이 잘생길 필요는 없다는 보편적 진리(혹은 강제적 수용)에 다다르기도 했답니다. 헤어드라이기로 머리를 올리는 일도, 키높이 신발을 신거나 렌즈를 끼는 일도 크게 줄었죠.


그리고 그즈음에서야, 저는 오랫동안 저를 괴롭혔던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았습니다. ‘못난 얼굴인데 못나 보이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한 가장 효과적인 방법 말입니다. 아주 쉬운 길이 있었어요. 누군가에게 못나 보이지 않으려면, 저를 자꾸 보여주면 되는 일이었습니다. 누군가를 꾸준~히 보다 보면 잘생김도 못생김도 희석되더군요. 못난 나라도 오래 보여주면 내가 못났는지 잘났는지, 체형이 우스운지 괜찮은지, 상대방은 조금씩 잊게 되더라고요. 상대에게 그냥 나를 있는 그대로 최대한 많이 노출하면 그만이었습니다.




이곳 브런치에 글을 올리기 시작한 지도 1년 반이 됐습니다. 


남들이 볼 글을 쓴다는 건, 태생적으로 못난 나를 감추거나 드러내는 여정 같더군요. 잘나 보이고 싶어서 머리에 헤어드라이기 가져다 대듯 뜨겁게 쓰기도, 때로는 글이 빈약해 화려한 옷 걸치듯 수사를 동원하기도, 때로는 에라 모르겠다 정신으로 한두 시간 만에 쓴 글의 민낯을 바로 업로드해버리기도 했죠. 그 모든 글이 저일 테고, 못나 보이지 않으려다 뒤늦게 해답을 찾은 제 젊은 날의 사투와 꼭 닮아 있었습니다. 그 낯부끄러운 흔적은 나무의 성장을 명징하는 열매처럼 ‘글 목록’에 주렁주렁 매달려 있죠. 어쩌다 다음 메인에 뜨거나 사람들이 여기저기 공유해주어 꽤 많은 분들에게 노출된 글도 있지만, 대개의 글들은 조회수가 소박합니다. 그래도 용케 구독을 눌러주시는 분들이 있어 다정함도 느끼고 있답니다. 제 글을 읽어주시는 분들의 표정과 머릿속과 심성을 상상하면서요.


꾸준히 써 올린 데 비해 제 필력이 눈에 띄게 향상되진 않았지만, 결코 헛된 시간은 아니었습니다. 글이 빈약한 저를 닮아가는 사이 저도 글을 닮아갔고, 그간의 경험들을 제법 정갈하게 정돈했다는 자기만족까지 덤으로 얻었으니까요. 가슴에 들었던 시퍼런 멍들이 푸른 젊음처럼 아름답게 새겨지기도 했고, 글을 쓰기 위해 새로운 무언가를 시도해보다 인생이 예상된 경로 바깥으로 흘러가기도 했답니다. 조회수가 가장 미미한 매거진이긴 하지만 제 십여 년간의 제3세계 여행을 활자화하는 대장정도 마무리할 수 있었고요. 글쓰기를 시작하지 않았다면 이 중 아무것도 얻지 못했을 테죠.




이번 달부터, 매주 요일마다 제 브런치에 글을 배달해두겠습니다. 


남들 보라고 올리는 글이기에 자신과의 약속만은 아닙니다. 누군가 증인이 되어주길 바랄 뿐이죠. 아무도 요청한 적 없지만, 유리병 속 편지를 바다에 띄워 보내는 심정으로 익명의 누군가들에게 가 닿을 글을 매주 띄우려 합니다. 끝도 정했습니다. 앞으로 100주 동안이요.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끝도 미약하여도 됩니다. 미약이라도 한 게 어디예요. 매주 쓰다 보면 입력된 지식과 지혜에 비해 출력되는 글의 양이 많아지면서 겉포장에 급급하거나 초라한 생산물이 나올 수도 있겠지만, 그것조차 저라고 생각하고 싶습니다. 못난 저라도 주기적으로 꾸준히 보여주다 보면, 언젠가 사람들은 저를 못났다고 생각하지는 않게 될 것 같아서요.


다음 달부터는 새 매거진도 시작할 예정입니다. 첫 번째는 내년에 휴직하고 춘천 가서 살면서 꿈꿔왔던 프로젝트를 기획해볼 건데 그 준비과정을 연재해보려고 합니다. 일명 '돈 아닌 가치들이 교환되고 쌓이는 공유서재 만들기'입니다. 두 번째 매거진은 가칭 <관습 타파 실험실>이라고 이름 붙였는데, 제가 당연시 여겨온 문화를 직접 거부하거나 뒤틀어 본 후기를 담아볼까 합니다. 회사 내 존댓말-반말 문화, 기자의 술 문화, 남성 사회의 형님-동생 문화 등등이 해당될 것 같습니다. 물론 그동안 써왔던 반성에세이(제가 그냥 이름 붙였습니다)와 취재후기도 계속 올리겠습니다. 그건 주로 일요일이 아닐 때가 되겠네요.


첫 번째 띄우는 유리병 속 편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읽히는 시간이 당신에게 뭐라도 되도록 애쓸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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