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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묭 May 14. 2020

열세 살, 그때 당신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나의 '인생스승' 김영석 선생님 평전>

내가 쓰지 않으면 아무도 쓰지 않을지도 모른다. 교직생활만 40년 가까이 하셨을 테니 제자만 해도 천 명은 족히 넘을 텐데. 그 많은 아이들에게 선한 영향과 영감을 주시고 교직을 떠난 스승이라면 이렇게 짧은 글로나마 기록이 남아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그리고 이 글로 단 몇 명이라도 더 많은 사람에게, 선생님의 이름이 기억되고 당신의 인생이 찬사 받았으면 하는 마음도.


누구에게나 ‘인생 스승'이 있는 건 아니기에, 나는 행운아다. 


그것도 사춘기가 독하게 찾아온 초등학교 6학년 때 담임으로 선생님을 만났다. 26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존함은 물론 연세와 말투까지도 선명히 기억하는, 김영석 선생님.

선생님을 만나기 전까지 난 극단적인 악동이었다. 좋게 봐주자면 나이치고 저항의식이 강했다. 열한두 살 주제에, 권위자의 말이라면 무조건 귀를 틀어막고 봤다. 부모님도, 선생님도 내겐 권위자 1,2,3일뿐이었다. 그들 말의 옳고 그름은 잘 따지지 않았다. 그럴 현명함도 의지도 없었다. 다만 뭐든 날 억누르는 것들에 대항하고 싶었고, 그들의 지시와는 반대로 행동하고 싶어 몸이 달아올랐다.

내가 맞서서 저항하려던 권위자들은 대개 좋은 사람들이었기에, 그들의 말과 반대로 살다 보니 난 악행을 자주 저지르는 아이로 자라고 있었다. 불장난 클럽을 만들어 아파트 잔디밭을 태우기도 하고, 동네 슈퍼에서 도둑질을 하다 알바 형들에게 두들겨 맞기도 했다. 같은 잘못을 되풀이하진 않았던 것 같지만, 이 잘못을 깨달으면 저 잘못으로 갈아타는 일상의 반복이었다. 죄의식도 죄를 지어봐야만 체득하는 아이였던 거다.

그 악행의 문이 닫히기 시작한 게 바로 6학년 때부터다. 체벌이 금지된 지금 세대에겐 놀라운 얘기겠지만, 그 시절 나는 처음으로 학생을 때리지 않는 선생님이 있다는 걸 알았다. 그 해 나의 담임선생님이 된 김영석 선생님. 선생님이 생소하던 ‘비폭력'을 몸소 실천하셨기 때문인지 그 해 우리 반에선 그 흔하던 주먹다짐이 단 한 차례도 일어나지 않았다. 역시 요즘엔 당연한 얘기일지 모르겠지만.

내가 못된 짓을 할 때마다 다른 선생님들은 매를 들거나 엄마를 소환했는데, 김영석 선생님은 엄마 대신 나를 방과 후에 남겨두고 반성문을 쓰도록 했다. 한참이고 내가 다 쓸 때까지 기다려주시고는, 그 반성문을 마주 앉아 같이 읽었다. 그리고 물으셨다. “형석이는 어떤 사람으로 살고 싶니?” 지금도 생생히 기억하는, 깊이 울리는 목소리로. 그럴 때마다 나는 대답 대신 눈물을 뚝뚝 떨궜다. 엄마도 아빠도 들어주지 않던 내 이야기였다.

악동이 쉽게 착해지진 않기에, 난 방과 후 반성문을 자주 쓰는 아이가 되었다. 선생님과 단 둘이 있고 싶은 마음도 들었기에 싫지만은 않았던 기억이다. 몇 차례 반성문을 쓰다가 어느 날 선생님이 물어보셨다.

너, 학급신문 만들어볼래?

방산초등학교 6학년 6반의 신문 ‘YS의 제자들' 1호가 그렇게 탄생했다. 전지 두 장에 빼곡히 학교 소식과 만평을 담아 교실 뒤 칠판에 붙여놓으면 아이들이 몰려들었다. 그 뿌듯함에 2호, 3호를 매달 발행했다. 급기야 선생님은 나를 소년동아일보 기자로 추천해주셨다. 전국 초등학교로 매주 배달되는 어린이신문에 내 이름 석 자가 ‘기자'란 이름으로 찍혔다. 잘못만 잔뜩 써놓은 글 속에서 글쓰기 재능을 건져내 주신 선생님. 나는 지금까지도 언론인으로 밥을 벌어먹으며 살고 있다.

사춘기를 지독하게 앓던 6학년이었기에, 딴에 가출까지 감행한 적도 있다. 깜깜한 밤, 친한 친구 두 명을 불러내어 집에 돌아가지 않겠다고 당차게 선언했다. 나보다 생각이 깊고 어른스러웠던 두 친구는 한참 내 말을 듣다가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우리 선생님한테 전화해서 물어보자. 나는 공중전화 박스에서 선생님 목소리를 듣자마자 엉엉 울었고, 선생님 말씀이니까 집으로 돌아갔다. 사춘기라서 모든 어른이 싫었지만 내가 위로받고 싶었던 건 결국 진짜 어른이었던 것 같다.

선생님은 자연과 친해지는 법도 일러주셨다. 나뿐 아니라 우리 반 아이들 모두에게. 주말에는 종종 우리들과 등산도 다녔고, 학교 앞 텃밭에서 함께 상추도 길렀다. 우리들은 선생님 추천으로 ‘그린스카우트'라는 어린이 환경보호 단체에도 가입했다. 쓰레기를 남몰래 버리기만 하다가 주워보기 시작한 첫 경험이었다. 착한 일을 하면서도 재미가 쏠쏠했다. 굳이 악행을 저지르지 않아도 주목받고 박수받는 삶이란 게 있었다니. 더 이상 못된 짓을 할 필요가 없었다.

여름방학 때는 설악산 정상에서 이런 편지도 써서 보내주셨다.


무엇보다 선생님은 우리 모두를 학급이라는 작은 사회의 주인공으로 만들어주셨다. 학교 급훈도 우리 스스로 정했고, 졸업 문집 제목도 학급회의로 결정됐다. 덕분에 ‘최선을 다 하자'는 밋밋한 급훈과 ‘우리들의 이야기'라는 평범한 제목의 문집이 탄생했지만, 우리 의견이기에 선생님은 개입하지 않고 따라주셨다. 그렇게  민주주의와 주인의식은 어린 마음들 속에 시나브로 싹을 틔웠다. 매주 토요일 4교시에 열린 우리 반 학급회의는 12시 반까지 끝나야 했지만 매번 한 시가 넘도록 이어졌다. 내 의견이 학급 정책에 반영된다는 효능감을 우리는 열세 살 나이에 맘껏 누리고 있었던 거다.

리더가 그러하니 학급은 늘 평화로웠고 아이들은 의욕이 넘쳤다. 공부를 잘하지 않더라도 우유팩만 잘 씻어서 접어도 반의 주연이 될 수 있었다. 남이 주목받아도 배 아파하지 않(으려 애쓰)고, 다른 친구가 잘못하면 서로 감싸는 어른스러운 분위기까지 조성됐다. 그러다 보니 영화에서나 볼 법한 일도 벌어졌다. 반 친구의 물건이 없어졌을 때였는데, 선생님은 모두 눈을 감게 한 뒤 훔친 사람이 있으면 조용히 손을 들라고 하셨다. 잠시 뒤. 선생님이 울컥한 목소리로 모두 그 상태로 눈을 뜨라고 했다. 반 아이들 중 절반 가까이 손을 들고 있었다. 그 뒤로 다시는 도난 사건이 일어나지 않았다. 친구가 아파서 구토를 할 때도 도망가기보다 서로 닦아주고 토 묻은 걸레를 빨아주기 바빴다. 우린 선의의 경쟁이 아닌, 선의를 경쟁하고 있었다.

졸업을 앞두고 선생님은 내게 ‘진인사 대천명'이라는 글귀를 따로 써주셨다. 지금 보면 늘 결과만 바라고 과정을 생략하려 얕은수를 쓰는 내 폐부를 찌르는 한 마디였다. 그래서 초등학교를 졸업한 뒤에도 남은 학창시절 반칙을 저지르고 싶을 때마다, 노력도 안 하고 결실만 얻길 기대할 때마다 선생님이 써준 말씀을 떠올리며 마음을 바로 잡았던 기억이 많다. 선생님이 해준 말이니까 어떻게든 지켜내고 싶었다. 고3 시절에도 독서실 앞에 늘 적어두던, 나를 타이르고 위로하던 말이었다.

그렇게 선생님은 나를 사회에서 제 구실하는 어른으로 키워주셨지만, 나는 주민등록상 어른이 된 이후로 선생님께 연락 한 번 제대로 드리지 못했다. 그나마 중*고등학교 때는 스승의 날마다 찾아갔지만 항상 너무 많은 제자들이 찾아오는 바람에 선생님을 독차지할 수는 없었다. 결혼하고 어렵게 전화를 한 번 드렸는데, 퇴직하고 홍천에서 밭을 일구며 산다고 하셨다. 곧 여든이 되실 텐데, 밭일이 힘드시진 않을지 걱정이다. 그래도 여전히 우리들을 농사지으셨듯 무언가를 일구고 계시는구나 생각하면 마음 한 곳이 일렁인다.




이 글에는 선생님의 가르침을 반의 반도 담지 못한 것만 같다. 그래도 간절한 소망이 있다면, 이 글을 선생님의 수많은 제자 중 단 한 명이라도 우연히 읽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어느 공간에든 그 제자 분이 선생님의 또 다른 이야기를 써주었으면 좋겠다. 어떻게 글을 퍼뜨릴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지만. 불가능해 보일지라도 그런 이야기들이 꼬리를 물고 물어 제자들이 쓴 선생님의 평전이 완성된다면 좋겠다. 기적 같은 일이겠지만, 나는 선생님이 행한 기적을 이미 경험했으니까. 지난 수십 년 간 매년 다른 아이들과 함께 다른 모습으로 벌어졌을 기적들이, 기적처럼 한 데 모이기를 꿈꾼다.

마지막으로, 꿈처럼 이어진 그 글들을 언젠가 선생님께서 우연히 읽게 되신다면 더할 나위가 없을 것 같다. 그때까지, 부디 건강하기만 하셨으면 좋겠다.

#김영석선생님 #방산초등학교 #인생스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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