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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묭 May 07. 2020

내 감정인데 통제가 안 될 때 읽는 글

<feat.정약용>

'욱 하는 성질 죽이기'란 책이 있다는 걸 아는지?


나는 안다. 무려 선물로 받았다. 회사 선배에게서. 그동안 얼마나 회사에서 욱 했으면. 그 선배는 제법 우아한 방식으로 내게 수치심을 안겨준 셈이다. 하지만 오늘 소개할 글귀의 주인공은 그 책 내용이 아니다.


감정기복은 내 오래된 숙제다. 침착함을 잃은 화가 불현듯 주인을 잃고 남에게 향하기도 하고, 때로는 주체할 수 없는 기쁨을 타인 앞에 가벼이 노출하기도 한다. 기쁘든 슬프든, 지루하든 즐겁든, 그 감정이 극에 닿을 때까지 무방비로 내버려 둘 때가 잦다. 그래서 더러는 나의 내면을, 또 남의 내면을 공격하고 상처 입힌다. 


2007년이었나. 선물 받은 또 다른 책이 있다.


그 책의 44페이지에서 나는 아주 오래 멈춰 있었다. 지금보다 어렸기에 더 '욱 했을' 나이. 170년 전에 죽은 학자가 내 안의 어린 맘에게 말을 건네고 있었다. 나는 어쩔 도리도 없이 발가벗겨졌다. 그 뒤로 십수 년째, 별 것도 아닌데 지나치게 흥분하거나, 낙담하거나, 감정을 통제하지 못할 때마다 늘 같은 페이지를 펼쳤다. 이젠 달달 외웠을 정도인데 아직도 가끔 꺼내어 읽어야 할 순간이 찾아오는 걸 보면 내면 수양의 길은 역시 멀고도 험한가 보다.


오늘도 그런 날이다. 내년 휴직을 앞두고 아주 오래 준비해온 무언가가 오늘 부로 없던 일이 되어버렸다. 회사 일까지 뜻대로 되지 않아 나의 절제력을 더 간지럽혔다. 자꾸 누굴 탓하고 싶은 마음만 부풀어 오르는 하루. 그 책이 필요하다. 집에 가면 펼쳐서 얼굴에 덮고 자야지. 브런치 구독자분들에게도 작은 도움이 될까 하여 늦은 밤 공유한다.


<감정의 조절>

“한 차례 배불러 살이 찌고, 한 번 굶어 수척한 것을 일러 천한 짐승이라 한다. 안목이 짧은 사람은 오늘 뜻 같지 않은 일이 있으면 낙담하여 눈물을 줄줄 흘리고, 내일 뜻에 맞는 일이 있게 되면 생글거리며 얼굴을 편다. 일체의 근심과 기쁨, 즐거움과 분노, 사랑과 미움의 감정이 모두 아침저녁으로 변한다. 달관한 사람이 이를 보면 비웃지 않겠는가?

상황의 작은 변화에 일희일비하는 것은 군자의 몸가짐이 아니다. 이랬다 저랬다 감정의 기복이 잦은 것은 내면의 수양이 그만큼 부족한 탓이다. 한 치 앞을 내다보지 못한 채 들뜨고 가라앉지 마라. 세상을 다 얻은 양 날뛰지도 말고, 세상이 다 끝난 듯 한숨 쉬지도 마라. 바람이 불어 흔들 수 있는 것은 표면의 물결뿐이다. 그 깊은 물속은 미동조차 않는다. 웅숭깊은 속내를 지녀, 경박함을 끊어라."

- 정약용 <다산 어록 청상>, 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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