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묭 Nov 15. 2019

내 생애 최고의 데이트

다음 '첫 데이트'는 다음 생애에...



이름마저 예쁜 수하,의 집은 한양아파트 2동 406호 아니면 407호였다. 


동갑내기 친구인 소연이와 나란히 옆집에 살았는데, 그래서 누가 406호였고 누가 407호였는지 지금도 헷갈린다. 이십몇 년 전 기억이니 이 정도면 선명하다고 해야 할까. 여기서는 406호로 해두겠다 - 아마 맞을 거다.


열한 살, 그러니까 초딩 4학년 때였다. 나는 학교를 마치면 주로 삼촌이 운영하는 동네 햄버거 가게로 향했다. '버거잭'이란 국내 소형 프랜차이즈였는데 학교에서 5분 거리였다. 거기서 자전거로 햄버거를 배달했다. 세 번 배달하면 삼촌이 햄버거를 하나 만들어주셨다. 메뉴에 있는 모든 재료가 들어간 나만의 특별 버거, 이를테면 '베이컨치즈토마토새우불고기버거'였다. 그거 먹는 맛에 하굣길마다 삼촌 가게의 배달 알바를 자청했다. 삼촌은 내가 올 때마다 손해를 보셨을 것이다.


그 날도 배달 전화를 기다리고 있었다. 삼촌이 전화를 받았다. 구석 테이블에 쪼그려 앉아있는 내 귀로 주소를 받아적는 삼촌의 목소리가 빨려들어왔다. "한양아파트 2동…" 음성이 점점 또렷하게 울린다. "4백…"  귓볼과 의 솜털들이 쭈뼛 선다. "...6호요? 알겠습니다." 세상이 멈췄다.


나는 그 집에 간 적이 있다. 2학년과 3학년 때 수하와 같은 반이었다. 학급 관련 무언가를 기획할 때였는데 수하네 집에서 회의를 했다. 현관문 앞에 섰을 때, 초인종을 누를 때, 열린 문틈으로 수하의 얼굴이 열릴 때, 방의 크기와 냄새까지 다 기억하고 있다. 난 수하를 몹시 짝사랑하고 있었다. 우리 반 거의 모든 남자아이가 그랬듯이.


4학년이 되어서는 반이 엇갈렸다. 별로 친하지도 않던 수하네 반 친구에게 쉬는 시간마다 놀러갔던 기억이 난다. 그래도 수업시간 내내 뒤통수를 쳐다볼 수 있던 같은 반 시절에 비하면 마냥 아쉬움만 쌓였다. 수하에게 한 마디도 못 건넨 건 당연했다. 같은 반일 때도 마음 들킬까봐 말도 잘 못 꺼냈는데. 그런데 15분쯤 뒤면 나는 수하네 집 초인종을 다시 누르고 있을 것이었다.


누가 배달시켰을까. 수하일까? 수하 엄마일까? 언니일까? 갔는데 수하가 없으면 어떡하지? 있는데 다른 사람이 받으러 나오면? 수하가 직접 문을 열면 진짜 어떡하지? 비닐봉지 바스락 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삼촌이 말했다. 다녀오너라.


자전거 핸들에 햄버거가 든 봉지를 매달았다. 배달 자전거는 나한테 좀 컸다. 늘 발끝이 아슬아슬하게 닿았어도 운전은 자신있었는데, 그날 만큼은 유난히 핸들에 매달린 봉지가 크게 흔들렸다 - 그저 그렇게 보인 걸 수도 있다. 햄버거가 망가지진 않았을까, 연신 걱정이 덮쳤다. 걱정이 덮치니 운전이 더 안 됐다. 이럴 때일수록 침착하자고 몇 번은 되뇌였던 것 같다. 가게에서 수하네 집까지는, 기껏해야 1-2분이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닫히고, 조금 후에 다시 열리니, 4층. 심호흡을 몇 번 했던 것 같다. 초인종을 눌렀다. 수하가 나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수하가 나왔으면 좋겠다. 아니 나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수하…… 어머니가 나오셨다.


"어머, 형석이가 배달하니?"

“네. 안녕하세요.”

무덤덤하게 인사했지만 속으로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이야. 젠장.


"잠깐만 기다리렴." 수하 어머니가 햄버거 봉지를 신발장 앞에 내려놓고 돈을 가지러 가셨다. 안방으로 들어가신 어머니. 잠시 뒤에 사람이 나온 건 안방이 아닌 맞은편 방이었다. 방에서 고개만 빼꼼 내민, 수하의 하얀 얼굴.


우리가 눈을 마주쳤던가.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 순간 잠시 기억이 혼미하다. 아마도 우린 차례로 "치.."라고 말했던 것 같다. 수하가 살짝 웃었던 것도 같다. 기억이 맞다면. 머지 않아 어머니는 돈을 가져오셨다. 다시 정신머리가 회복됐다. 수하 어머니는 거스름돈을 받지 않으셨다.


돌아오는 길은 오직 상상의 나라였다. 아쉬움이 크면 현실이 감당하지 못하니까. 어느 먼 세계에서 나는 이렇게 행복하고 못내 아쉬운 지금의 나를 달래고 있었다. 이십몇 년 전 일이지만 정교하게 재생되는 기억이다. 수하를 마주친 그 몇 초만 제외하면.


수하를 향한 짝사랑은 5학년 때까지 이어졌지만 나는 말 한 마디 붙이지 못했다. 그 사이 수하 때문에 종교도 생기고(=수하 보고 싶어서 매주 성당에 다니게 됐고), 얼떨결에 세례명까지 얻었지만 성당에서도 그저 멀리서 보는 걸로 만족했다. 6학년 때부터는 짝사랑 말고 첫 연애를 했다. 누군가의 남자친구가 됐고, 수하는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내 여자친구는 수하와 몹시 사이가 안 좋던 수하의 친구였다. 어쨌든 수하와는 데이트는커녕 한 순간이라도 단 둘이 있어 보지도 못한 채 멀어졌다.


그 후로 살면서 몇 번의 연애를 시작했다. 


사랑이 갓 태어날 때, 첫 데이트를 할 때의 기분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그 아슬아슬한 행복의 기억은 저마다 다른 모습으로 경이로왔지만, 수학 공식처럼 되풀이되는 구석도 있었다. 그 공식은 결국 수하네 집에 햄버거를 배달하러 가던 길과 꼭 닮아 있었다.


전화기 너머로 만남을 확정하던 순간부터, 햄버거 패티 굽듯 지글지글 마음이 끓는 시간들. 몸단장 할 때 팔의 솜털부터 느껴지는 감전 같은 감각. 자전거 핸들에 그녀에게 전할 무언가를 단단히 걸어두는 심정. 그게 흐트러지지는 않을까 조심스러운 걸음. 짧은 길도 길게만 느껴지는 조급함. 초인종을 누르기  심호흡. 문이 열리면 보이는 그녀의 모습. 잠시 기억이 혼미해지는 몇 초의 순간. 어디선가 어김없이 나타나는, 수하 엄마 같은 소소한 장애물. 그리고 데이트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펼쳐지는 상상의 세계까지.


이게 행복한 건지 불안한 건지 헷갈릴 정도로 설렜던, 인생의 모든 첫 데이트들은 늘 그날과 같았다. 이십몇 년 전 그날 나는 누구와도 데이트하지 않았지만, 내 인생 최고의 데이트는 전부 그날이었다.

.

.

스무 살이 갓 시작되던 겨울. 


수하와 다시 만났다. 우린 남고와 여고를 가면서 멀어졌고, 수능이 끝난 뒤 우연한 기회에 연락이 닿았다. 수하의 친구이자 내 친구이기도 했던 윤정이와 셋이 방이동 술집에서 봤다. 그러니까 술을 마실 수 있는 나이가 되자마자였다. 술을 마셔야 꺼낼 수 있을 것만 같던 얘기가 있어서였을까. 어쨌든 이제 다 지난 일처럼 웃으며 말할 수 있었다.


초딩 때 내가 널 얼마나 좋아했는지 아니?

야, 그 때는 날 안 좋아하는 애가 없었지.

그렇지. 난 원 오브 뎀이었지.

근데 어릴 때 사진보면 내가 봐도 진짜 예뻤더라, 나.


나는 '햄버거 배달 갔던 거 기억나냐'고 묻고 싶었지만, 수하가 기억나지 않을 것 같아서 관두었다. 나에게는 여자친구가 있었고, 수하도 남자친구가 있다고 했다. 우리 셋은 다시 보자며 즐겁게 인사했고, 몇 달 뒤 정말 다시 봤고, 그 후로 다시는 수하를 만나지 못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나쁜 어른’이 되지 않기 위해 줄여야 할 것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