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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묭 Feb 13. 2022

다시 가게 문 열던 날


 때를 벗겨내는 일은 언제나 유난스럽고 상쾌하다.

 몸이든 맘이든 물건이든 다 그렇다. 일단 오래 묵은 것들을 깨끗이 닦아내려면 평소보다 더 에너지를 쏟아야 한다. ‘겨울방학’이라는 구실로 여섯 주나 비워둔 가게. 다시 문 여는 날이 이틀 앞으로 다가와서야 게으른 주인장은 부랴부랴 묵힌 때를 벗겨내기 시작했다.

 먼저 무릎 높이까지 얼어버린 앞마당 개수대 얼음을 깨는 데에만 꼬박 한 시간을 들였다. 뜨거운 물을 주전자로 실어 나른 뒤 들이붓고, 내 팔 길이보다 길고 묵직한 망치로 여러 차례 내리치고, 깨진 얼음 파편을 넉가래로 걷어내 벽 한구석에 모아둔다. 이 작업을 예닐곱 차례 반복하니 드디어 개수대의 잿빛 밑바닥이 드러났다. 어깨가 욱신하고 등에도 통증이 왔지만 겨우내 얼어 있던 수도꼭지에서 다시 물줄기가 터져 나오는 순간의 쾌감이 고통을 잊혔다. 굳은 새똥과 먼지로 가득 덮인 타일 외벽과 유리창도 골칫거리였다. 워셔액 묻힌 행주타월로 한 차례 오물을 걷어낸 뒤 깨끗한 걸레로 다시 몇 번을 닦아내어야 그나마 반짝이던 옛 모습을 되찾아갔다. 앞마당에서 이런 작업이 이뤄지는 사이 가게 안에서 아내는 책장과 바닥을 쓸고 정리하는 일에 온 힘을 쏟았다. 창작자 마켓 진열대의 작품도 재정비하고, 다락방 이불을 빨고 바닥을 구석구석 훔쳐냈다. 조촐한 세 식구가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워가며 이틀간 밤늦도록 진땀을 빼고 나서야 첫서재는 얼추 겨울방학 이전 모습으로 되돌아갔다. 일을 끝내고 나니 오른쪽 등과 허리에서 심한 통증이 일었다. 안 쓰던 근육을 무리하게 사용한 탓이겠지. ‘이렇게 애써 준비해놓고 막상 내일 앓아눕는 건 아니냐’는 농담 같은 걱정이 들었다. 어쨌든 일어나 봐야 알 일이었다.

 다시 문을 여는 다음날 아침. 늦은 밤까지 단잠을 방해했던 등허리 통증은 다행히 더 이상은 뇌에 앓는 신호를 보내지 않았다. 기특한 것. 제 주인 사정을 이토록 이해해 주다니. 오늘을 위해 아껴둔 옷을 입고, 조금은 서둘러 단장을 하고, 평소보다 한 시간 가량 일찍 가게에 도착했다. 어제 못 다 한 것들을 매듭해야 했다. 일단 가져온 소품 재고부터 서랍에 채워 넣고, 유리잔을 하나씩 다시 닦아냈다. 늦겨울을 버틸만한 화분들도 집에서 다시 옮겨 날랐다. 화장실과 주방의 수도 상태를 점검하고, 새로 만든 수제청 음료들을 일일이 시음했다. 준비는 다 된 듯했다. 그제야 불현듯 사소한 걱정이 피어났다.
 ‘이랬는데 아무도 안 오면 어쩌지?’
 여섯 주나 쉬었으니 그럴 법도 했다. SNS에 나름대로 겨울방학이 끝났다고 공지를 해놓았는데. 그래도 여전히 영하 10도 가까운 아침 날씨에 누가 와줄까 싶었다. 일단 열한 시에 맞춰 입간판을 대문 앞에 내어놓고 ‘Close’ 푯말을 ‘Open’으로 바꿔 달아 놓았다. 그렇게 한 시간 반을 혼자 흘려보냈다. 평소에도 오후 한 시가 넘어야 첫 손님이 찾아오곤 했으니 원래 혼자 있던 시간이었다. 그런데도 유독 길게 느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내심 고대하던 첫 문이 열린 건 12시 45분 즈음이었다. 한눈에 봐도 멀리서 온 듯한, 단정한 복장의 커플이었다. 두 사람은 상냥한 표정으로 오미자에이드와 따뜻한 레몬차를 주문한 뒤 그림책방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저들 덕에 오늘 첫서재는 외롭지 않겠구나. 감사한 마음을 음료에 담고 싶었지만 손이 길들여지지 않았다. 오랜만에 수제청을 조합하다 보니 레시피 노트를 연신 다시 꺼내어 들여다봐야 했다. 어색해진 손놀림으로 완성한 음료를 ‘서투름이 쌓인다’라는 글귀가 새겨진 나무 티코스터에 담아내어 드렸다. 그제야 비로소, 내가 지난 한 해 이 외진 골목 공유서재의 주인장이었다는 사실이 바깥바람 들이듯 환기되었다. 멀리서 찾아와 준 이에게 음료와 공간을 내어드리고, 서로 보이지 않는 곳에서 같은 공간을 공유하는 일. 각자 시간을 보내면서도 느슨하게 연결되어 있는 듯한 이 포근한 감각이 긴 잠에서 비로소 깨어났다. 첫 손님 커플은 그렇게 자신들도 모르게 나를 일깨워 준 뒤 한 시간 반 가량 머물고 나서야 일어났다. 그리고 카운터로 와서는 신용카드와 함께 조그만 메모지를 쓱 내밀었다.  

 “지난해 저희 고모가 여기 와본 뒤로 저한테 꼭 가보라고 추천해줬어요. 막상 오니까 더 좋네요.  서재였으면… 하는 공간이었습니다.”



 그 후로 가게 문을 닫을 때까지 열두 분의 손님이 더 다녀갔다. 겨울방학 전에 문을 열 적에도 평일에는 손님이 많아야 열 분 남짓이었다. 오랜만에 문을 열어 ‘아무도 안 오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평소보다 조금 더 많은 이들이 찾아준 셈이다. 그중 대부분은 얼굴을 분명히 기억하는 사람들이었다. 오랜 단골손님이 ‘재개업 축하한다’며 얼른 떡만 전해주러 왔고, 북살롱에 두 번이나 참여했던 손님은 ‘오랜만에 문 연다고 해서 잠시 들렀다’며 바쁜 와중에도 테이크아웃으로 음료를 주문해 갔다. 이웃가게 사장님은 어린 두 딸과 함께 시간을 내어 책 읽으러 들러주었다. 또 다른 단골손님은 부모님까지 모시고 와 새롭게 진열된 창작자 마켓에서 엽서를 사 갔다. 단골 말고도 오늘 처음 만난 손님들 역시 앞으로 선명히 얼굴을 기억할 듯했다. ‘여기 오려고 오늘을 기다렸다’며 서울에서 찾아와 독립서재에 고요하게 머물다 간 두 모녀, 그리고 ‘부치지 못하는 편지’를 쓰기 위해 멀리서 온 두 친구. 올해 첫 첫서재를 함께 열겠다고 와 준 수줍은 표정들이 잊히려야 쉬 잊힐까.




 마지막 손님이 떠나고 나니 저녁 여섯 시 반 무렵이었다. 아직은 해가 일찍 가라앉는 계절이다. 금세 새까매진 창밖으로 세찬 바람소리가 휭, 지나갔다. 내어준 컵들을 씻고, 바닥에 떨어진 머리카락 뭉치를 허리 굽혀 줍고, 커피 찌꺼기를 휴지로 닦아냈다. 입간판을 다시 들이고 ‘Open’ 푯말을 ‘Close’로 바꾸어 걸었다. 금세 다시 익숙해질 몸짓들이었다. 퇴근길도 마찬가지였다. 지난해 내내 익힌 발걸음으로 시냇가를 따라 걸으며 감각의 시계를 되감았다. 어제까지와 다른 오늘. 그리고 오늘과 같을 내일. 지난 여섯 주의 쉬는 시간은 그렇게 한밤의 꿈처럼 삶의 저편으로 흘러갔다.

 고백건대 다시 가게 문을 연다는 게 참 귀찮았다. 서울에서 회사 일로 정신없이 보내다 춘천에 왔을 때는 첫서재에서의 일상 자체가 휴식이었는데, 여섯 주를 오직 여행과 쉼으로만 보내다 보니 첫서재도 ‘일’의 영역으로 인식되어갔다. 사람은 참 간사하고 게으른 존재다. 그래도 애꿎은 몸을 다시 일으켜, 이틀간의 막노동 기간을 거쳐, 약속된 날짜에 어찌어찌 문을 열었다. 그리고 첫날. 기다렸다는 듯 찾아와 준 손님들 덕분에 완벽히 지난 일상의 행복이 고스란히 복기되었다. 정성껏 준비하면 정성이 모이는 곳. 작은 공간에서 서투른 마음을 말없이 주고받는 사람들. 첫서재하는 맛이란 이토록 슴슴하고 향긋했었지. 나는 지난해 그런 삶을 살았었지.

 겨우내 쉼으로 재충전을 했다지만, 그사이 나도 모르게 쌓인 때도 있을 터였다. 때를 벗겨내는 일은 언제나 유난스럽고 상쾌하다. 몸이든, 맘이든, 물건이든 다 그렇다. 묵힌 것들이 말끔히 씻긴 기분. 다행스럽게도 내일은 오늘과 별 다름없는 하루일 것이었다.





오랜만이야 퇴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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