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제 삶의 어느 순간에 영감을 준, 그러나 그들은 그 사실을 미처 모르고 있는 열두 명에게만 차례차례 보내게 될 초대장입니다. 기록을 남겨두기 위해 모두에게 공개합니다.>
안녕하세요.
당신은 저를 알고 있을 수도, 이 초대장으로 처음 알게 되었을 수도 있겠습니다. 이 초대장은 오로지 당신에게만 전달되는 것은 아니니까요.
다만 저는 당신을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제 삶의 어느 토대에 당신이 과분할 만큼 양분을 공급해주었기 때문이지요. 당신이 의도했든 그렇지 않았든지요. 그러니까 이 초대장은, 이제껏 제가 살아온 시절을 조립해준 이들을 위한 지극히 개인적인 헌사이기도 합니다. 당신은 저와 대면하거나 연락한 적이 없는 사람일지도 모릅니다. 몇 년 혹은 몇십 년 전에 잠시 스친 인연일지도요. 유명한 별일 수도, 평범한 개인일 수도 있습니다. 당신이 누구든지 적어도 지금의 저는 당신이 뒤흔들거나 이끌어낸 삶을 살고 있답니다. 당신의 말이든, 책이든, 음악이든, 행동이든, 곁에서 지켜본 품성이든, 그 무엇을 통해서든지요. 그에 대한 작은 보답을 하기 위해 이 초대장을 수줍게 건넵니다. 뜬금없어 보이겠지만, 이 서툰 초대장을 누구에게 보낼지 고르는 데에만 저는 꽤 오랜 시간과 정성을 쏟아야 했답니다. 이미 삼킨 생을 통째로 게워내는 과정이기도 했지요. 결국 열두 명의 이름이 제 앞에 남았네요.
제 이름은 남형석입니다. 지난해 봄부터 춘천에서 <첫서재>라는 작은 공유서재를 꾸리고 있지요. 직장에 덜컥 휴직계를 내고, 가족과 함께 서울을 벗어나 단 스무 달 동안만 좋아하던 소도시에 머물며 살기로 했어요. 제 원래 직장은 방송국이고, 직업은 방송기자이고, 때로는 뉴스pd였습니다. 일 년에 열흘은 히피 흉내를 내며 살아온 여행자이기도 하고요. 착착 진행되던 삶을 잠시 멈추고 춘천에 내려온 지 일 년이 지났으니, 이제는 마치 먼 나라의 언어처럼 둥둥 떠 있는 말들이네요. 10년 넘게 다닌 멋진 직장과 만족스러운 직업을 잠시 두고 멀리 떠나온 이유는 복잡하고도 단순합니다. 요컨대 생의 중간 정리를 하고 싶었어요. 그리고 다른 생을 살 준비를 시작하고 싶었습니다.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누가 알려준 적 없기에, 일단 춘천의 어느 옛 마을에 60년 묵은 폐가를 고쳐 공유서재로 꾸몄습니다. 여기서 읽고 쓰며 천천히 생각해보려고요.
제가 차려놓고 1년째 운영 중인 이 공유서재를 무어라 설명하는 일은 여전히 쉽지 않습니다. 커피와 책을 내어드리는 북카페이기도 하고, 창작자의 작품을 판매하는 잡화점이기도 하며, 다락방에 손님을 재워드리는 북스테이이기도 하지요. 다만 돈을 받는 건 공간값뿐입니다. 북스테이는 숙박요금을 받지 않고, 작품 판매 역시 수수료를 받지 않고 진열대를 내어드리고 있거든요. 누군가에게 전할 수 없는 편지를 써서 나무 편지함에 넣어두고 가면, 그나마 받던 공간값도 받지 않는답니다. 외진 언덕 골목에 뜬금없이 자리한 작은 가게라 평일에는 사람들의 발걸음도 별로 없습니다. 그저 운영비 정도만 벌면서, 저 역시 다른 삶을 모색하는 공간으로 쓰고 있지요.
이런 기이한 공유서재를 차린 이유가 있습니다. 먼저 돈이 아닌 가치들이 교환되고 쌓이는 공간을 실험해보고 싶었어요. 사회에서 통용하는 교환의 법칙인 ‘돈’과 ‘동시성’을 배제한 삶이라고 해야 할까요. 예컨대 저희 다락방 북스테이는 숙박비를 돈으로 받지도, 당장 받지도 않습니다. 5년 뒤에 돈이 아닌 것들로 숙박비를 받기로 하고 길게는 일주일간 다락방을 내어드려요. 당장 돈이 부족하지만 쉼이나 영감을 얻는 시간이 절실한 이들을 위한 은신처인 셈입니다. 이렇게 돈을 받지 않고 내어드린 호의와 기회가 5년 뒤에 어떤 보답으로 돌아올지 실험하고 있는 중이에요. 어쩌면 누군가의 미래에 소박한 투자를 하거나 거대한 도박을 걸고 있는 걸지도요.
그리고 또 하나의 이유라면, 꿈입니다. 아직 단단히 굳지 못하고 물러서 남에게 떠벌리기 조심스럽지만요. 저의 30대는 신문기자로 시작해 방송기자와 pd로 마무리되었습니다. 지금은 휴직을 한 뒤 공유서재의 주인장으로 막 마흔의 문을 열었지요. 다만 40대의 끝자락에 이를 무렵에는, 창작을 하는 사람이고 싶습니다. 누군가의 가슴에 담길 글을 쓰거나 영상을 만드는 사람으로 40대를 보내고 싶고, 그 누군가가 많거나 당신이라면 좋겠습니다. 꿈으로만 휘발하는 삶이 아니기 위해 지금부터 조금씩 애쓰는 중이지요. 그렇게 창작의 영역에서 한 번이라도 살아본 다음 죽기 위해, 흩어져 있는 원석 같은 이야기들을 하나씩 수집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북스테이 손님을 돈을 받지 않고 초대하는 대가로 이야기를 모으고, 북카페 손님 중에 누군가 부치지 못할 편지를 쓰고 가면 공간값을 받지 않는 거죠. 이야기를 찾으러 여기저기 다닐 형편은 못 되니, 이야기를 끌어모으는 공간을 꾸린 셈입니다. 책이나 영화로 정제된 이야기가 아닌, 날 것 같은 생의 파편들을요.
이렇게 만든 <첫서재>라는 가게에는 당연히 제 생의 취향과 방향성이 녹아 있습니다. 그리고 그 취향과 방향성을 따라 걷는 이 길에는 당신이 스며 있습니다. 제가 옛집을 고치고, 나무를 좋아하고, 손때 묻은 책들을 누군가와 공유하고, 서재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포크 음악과 건조한 보컬을 사랑하는 것은 일부분 당신 덕분입니다. 사실 이곳에 오기 이전부터 기자라는 직업을 택하고, 뉴스 프로그램과 브랜드를 기획하고, 진보를 지향하고, 그러다 서울에서의 삶을 잠시 멈추기로 한 것 역시 일부분 당신 때문일지 모릅니다. 당신의 말과 작품과 행동과 생각이 제 몸 어딘가에 박혀 삶의 물꼬를 여기로 흘렸고, 춘천에 이런 공간까지 꾸리게 한 것일 테니까요.
그래서 저는 지난해 봄 차려놓은 이 공간이 안착되는 대로, 당신들에게 알려 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생의 어느 순간에 변곡점을 찍어준 사람들, 이런 삶이기로 마음먹는 데 영감을 준 이들을 한 번쯤 이 공간에 초대하고 싶었어요. 여기는 당신도 모르는 사이 당신이 전해주고 간 무언가들이 물웅덩이처럼 고여 있는 곳이니까요. 휴직 기간이 정해져 있다 보니 올해 늦가을이면 첫서재는 문을 닫을 것입니다. 제게 허락된 그 몇 달 남짓의 시간 동안 혹시 당신이 찾아온다면 얼마나 행복할까요. (다만 매일 제가 가게를 보지는 않으며 휴무일도 있기에, 혹시 오시려고 마음먹으셨다면 미리 날짜를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다락방 북스테이에 며칠 머물든, 굳이 저와 대면하지 않고 서재에 잠시 머물다 가시든지요. 만약 당신이 오시지 않더라도 무엇도 달라지는 것은 없습니다. 이 공간의 존재를 당신이 알게 되는 것만으로도 제겐 충분할 테니까요.
혹시 당신이 사회에 영향력이 큰 누군가라면, 그걸 활용해 제 소박한 가게를 홍보할 목적은 전혀 없음을 꼭 알려드리고 싶습니다. 어차피 스무 달만 문 열다가 곧 지구에서 사라질 가게이고, 워낙 비좁아서 손님으로 북적일 수도 없답니다. 고마운 누군가를 수단으로 두는 삶이고 싶지도 않고요. 누군가 당신의 영향을 받아 만든 공간이 세상에 있다는 것만 알아주기를, 그리고 혹시나 오신다면 그 시간이 당신의 무엇을 새로 이끌거나 치유하는 데 한 줌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바랄 뿐이죠. 그러니 아무 부담 없이 이 초대장을 그 자체로만 여겨주셔요. 당신께 이거라도 보내지 않으면 마음속 빚이 무거워 평생을 소화불량에 시달릴 것 같았을 뿐이니까요. 이제야 좀 후련한 마음이네요.
부디 이 계절이 당신의 오늘에어울리기를, 지긋지긋한 전염병이 당신의 삶까지 스미지는 않았기를, 이 글을 보내는 순간 이전보다 이후가 당신에게 더 행복한 삶이기를 기원합니다. 결국에는 무척이나 고맙다는 말이었어요. 제 삶의 어느 순간에 지표로 존재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