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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묭 Jun 29. 2023

나의 두 번째 유니버스

<첫 트레바리를 마치며>


 ‘첫’이라는 단어에 의미를 두는 편이다. 생애 첫 경험이 끊이지 않아야 남은 생에도 기대를 품을 수 있을 것 같아서. 오죽하면 서재 이름도 첫서재로 지었을까.


 마흔이 넘어 겪은 생애 첫 경험, '트레바리' 북클럽 시즌1을 무사히 마쳤다. 난생처음 보는 19명이 빙 둘러앉아 한 달에 한 권씩, 넉 달 동안 책을 읽는 모임. 처음 이 모임의 클럽장 제의를 받았을 때는 한참 망설였다. 학교나 회사처럼 필연적으로 소속된 조직 외에 생소한 사람들이 모여 있는 집단에는 단 한 번도 먼저 참여해 본 적 없던 탓이다. 그 흔한 대학 중앙동아리도, 언론고시 스터디도 가담해 본 적 없이 살아왔다. 심지어 대학 시절 미팅 소개팅도 단 한 차례씩만 (그것도 한 번은 경험해 봐야겠다는 뒤늦은 일념으로 스물다섯 살에야 처음) 해봤을 정도다. 유치원 다닐 때부터 16년간 한 동네에 살면서 전학 한 번 간 적 없이 학창 시절을 보내서였을까. 굳이 새 인연을 찾아 나설 필요성을 못 느끼며 살아왔고 그러다 보니 낯섦에 몸을 던지거나 끼어드는 일에 취약한 어른으로 자랐다. 여전히 몇 차례 이상 만나지 않은 사람과 눈을 마주치는 일이 어렵다. 그런데 전혀 모르는 사람들을 나 빼고도 열여덟 명이나 모아 놓은 북클럽을 이끌어 달라니. 그것도 넉 달이나.


 그래도 거절하지 않고 받아들이기로 결심했던 건 얄팍한 의도 때문이었다. 나의 두 번째 책 <돈이 아닌 것들을 버는 가게>를 좀 더 팔아보고 싶었다. 출판사에서 3쇄를 과감히 찍어주고 판매부수가 아닌 발행부수로 인세까지 미리 줬다. 빚을 잔뜩 지고 살아가는 기분이어서 한 권이라도 더 팔려면 어디든 가겠다는 마음이었는데, 트레바리에서는 무려 열몇 권을 한 번에 팔 수 있었다. 함께 읽을 책을 클럽장인 내가 선정하기 때문이다.


 모임 주제는 <나의 두 번째 유니버스>로 정했다. 지금이 아닌 다른 삶, 다른 취향, 다른 세계관을 꿈꾸는 사람끼리 모여서 현실 바깥을 궁리해 보자는 취지였다. 물론 오직 책만 팔겠다고 시작했던 건 아니다. 혹시 나의 두 번째 유니버스를 함께 할 동행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먼 기대도 살짝 있었다. 시나브로 퇴사를 궁리하기 시작하던 단계였으니까. 다행히 정원이 차서 모임을 시작할 수 있었고, 넉 달이 지나 지난 17일 마지막 모임을 마쳤다.


 가장 긴장이 높았던 순간은 아무래도 3월 첫 모임이었다. 돌아가며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데 몇몇 분이 눈물을 보이셨다. 처음 보는 사람 앞에서 마음을 열고 울 수 있는 투명한 사람들이 여기 모여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지만 솔직히 나는 당시 상황이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살다가 처음 보는 눈동자들이 나를 응시하고 있었고 나는 돈을 받은 만큼, 그 이상으로 이들이 내어준 시간을 채워드리고 싶은 의무감에 갇힌 상태였다. 모임 시간인 3시간 40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르겠다. 저마다 꺼낸 이야기를 몇몇 단어로 응축해 메모해 놓았는데, 뒤늦게 그걸 보고는 '모임에서 이런 얘기가 오갔다고?' 싶더라. 그래도 두 번째 모임은 그보다 긴장이 풀렸고, 세 번째를 거쳐 마지막 모임 때는 마음이 부쩍 놓여서 말도 더 빨라지고 평소처럼 실없이 우스운 말도 내뱉을 수 있었다.


 생소한 사람들과 모여서 책을 읽고 이야기한 첫 경험. 그 뒤늦은 도전이 아름답게 마무리될 수 있었던 데에는 참여해 준 분들의 품성과 균형감각이 가장 큰 몫을 했겠지만, 나름대로 새로 터득한 장기를 발휘하려 애쓴 덕도 있다. 좀 우습지만 ‘정성을 다 하는 마음’이었다. 첫서재에서 인생 사십 년 만에 처음 생긴 마음이다. 나는 동경하는 존재에 대해서는 몰입이 강한 편이지만 정작 주변 공기를 채우고 있는 사람들에겐 소홀해 왔다. 누군가의 생일을 챙겨준 적도 거의 없고, 누가 힘들다고 호소하면 그때 부랴부랴 옆에 있으려 애썼지만 그전에 그걸 감지하려는 노력도 거의 한 적이 없다. 인생 모토가 ‘적당히 하자’라서 타인에게 정성을 쏟는 게 좀 남사스럽기도 했고, 굳이 사회 탓을 하자면 어릴 적부터 효율적인 무기로 잘 길러진 탓에 나에게로 되돌아오지 않을 가능성이 높은 정성은 곧 시간낭비라는 인식도 깊이 박여 있었다.


 첫서재에서 스무 달을 보내면서 나는 여태껏 잘못 살았다는 생각이 뒤늦게 들었다. 정성이 없는 삶은 다 휘발되어 버리고 남아 있지 않더라. 효율적인 무기로 잘 길러지던 내가 사실은 가장 삶의 증발량이 많은 비효율적인 인간이었던 거다. 그래서 뒤늦게라도 나와 어떻게든 엮인 타인에게 최대한 정성을 다해보기로 마음먹었다. 생전 누구한테 밥 먹자, 술 마시자, 잘 지내니, 보고 싶어, 전화 한 통 거의 해본 적 없이 살았지만 요새는 딱히 용건이 없어도 최대한 먼저 안부를 물어보려 애쓰며 산다. 아직 부족하지만.


 그런 차원에서 이 넓은 세상에서 네 차례나 나와 인연이 닿을 이 사람들에게 어떻게든 정성을 전하고 싶었다. 혹여 다시 못 만나더라도 떠올리면 웃을 수 있는, 뭘 받았는지 모르겠지만 받긴 받았다는 정서적 포만감을 선사하고 싶었다. 부서장 회식 따위 쿨하게 거절하며 산 지 오래지만 트레바리 번개는 최대한 참여해서 늦게까지 있으려 했고, 나름대로 안 하던 책 선물도 준비하고 일대일 릴레이 인터뷰도 성심껏 기획했다.


 물론 한 분 한 분에게 정성이 가 닿기에는 스무 명 가까운 인원에 비해 나흘은 턱없이 짧았다. 넉 달 모임을 하면서 몇 마디 나눠보지 못한 분도 여전히 많다. 그분들을 생각하며 짧은 편지를 썼고 마지막 모임에서 읽으려 했는데 토론하다 보니 시간이 초과되어 주머니에서 미처 꺼내지도 못했다. 그래서 살을 조금 보태어 이곳에나마 이렇게 글로 남겨둔다. 먼 훗 날 우연히라도 이 글을 읽어주실 수도 있을 테니.


 모임 이름은 내가 생각해도 잘 지은 것 같지만 정작 나는 <나의 두 번째 유니버스>를 아직 결심하지 못했다. 하고 싶은 게 뭔지도 알겠고 잘할 수 있는 게 뭔지도 알겠는데 그 둘이 서로 달라서 뭘 택해야 더 나은 인생일지 아직 모르겠다. 공통의 주제 아래 모여서 서로의 꿈을 이야기했지만 그 시간이 꿈같았던 건 현실의 벽이 그만큼 높기 때문일 테니까. 언젠가 나 스스로 풀어내야 할 숙제일 터이다. 그래도 서로의 숙제에 첨삭을 해주는 넉 달의 시간이 내게는 실질적인 힘이 되어주었다. 삶을 확장해 준 분들께 감사드린다.


 이제 넉 달의 여정을 마치고 곧 <나의 두 번째 유니버스> 시즌2를 시작한다. 다행인 게 있다. 또 새로운 분들을 잔뜩 맞이하려면 도돌이표처럼 긴장이 높아지는 주기를 감당해야 했을 텐데, 운 좋게도 시즌1에 함께 했던 분들이 거의 재신청을 해주셨다고 한다. 아직 낯섦에 취약한 나로서는 크게 안도할 만한 일이다. 거기에 네다섯 분의 새로운 얼굴도 합류한다니 새 바람도 너무 강하지 않게 적절히 불어오는 셈이다. 두 팔 벌려 맞이하고 싶다.


 시즌1을 끝으로 모임 바깥으로 떠난 분들과도, 시즌2에서 다시 혹은 새로 만날 분들과도 앞으로 느슨하게나마 인연이 이어질 거라 믿는다. 느슨한 연대. 가장 사랑스러워하는 형태의 삶이다. 물론 나의 바람과는 달리 꼭 그렇게 되지 않더라도 이미 충분히 감사하고 있으니 그걸로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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