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입도 늘고 동네에 활력도 생겨 좋을 것 같은데, 오히려 “제발 우리 마을에 놀러 오지 말라”는 주민들이 더 많다고 합니다.
단지 시끄러워서 싫은 걸까요? 그런 물리적인 불편도 물론 중요하지만, 직접 만나 들어본 그들의 호소는 더 절실했습니다. 이웃을 잃고, 집에서 떠나거나 쫓겨나야 하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았죠.
주민과 관광객의 공존은 불가능할까요?
그러면 동네에 아무도 오지 말라는 걸까요?
무엇보다, 그렇게 다 내어주고 얻은 ‘유명 관광지’의 명성은 얼마나 갈까요?
이런 궁금증들을 안고 취재를 시작했습니다. 관광이 주민의 삶을 해치는 '오버투어리즘' 현상. 뉴스로 기획하고 보도한 뒷이야기를 여기 남깁니다. 어쩌면 당신에게 힐링과 추억을 선물했던 어느 마을에 관한 불편한 이야기일지도 모릅니다.
MBC 뉴스데스크 <로드맨> 캡쳐. 저희 보도물입니다.
처음 찾은 곳은 부산 감천문화마을입니다.
한국의 산토리니 혹은 마추픽추로 불린다지요. 평일 낮 시간인데도 포토존마다 줄을 서 있더군요. 외국인도 많이 눈에 띄었습니다.
한국전쟁 당시 피란민들이 높다란 언덕에 정착해 나지막이 모여 살던 마을은, 10여 년 전부터 부산의 대표적인 관광 명소가 되었습니다. 이제는 매년 250만 명이 이곳을 찾고 있지요.
갑작스러운 인기. 가난했던 마을 주민들 살림살이는 좀 나아졌을까요?
감천마을 주민은 '자존심'이란 말을 꺼냈습니다.
"젊은 사람 구경도 하고 좋다"는 분들도 계셨지만, 대개 수입 개선은커녕 심각한 불편을 겪고 있었습니다. 벨을 누르거나 노상방뇨하는 사람들, 심지어는 집에 들어오거나 아무렇지 않게 옥상에 올라가는 사람들 때문이었죠. 한 주민이 전한 이야기는 아팠습니다. 관광객들이 자기 집 녹슨 대문을 열며 "이거 화장실 문인가?"라고 한다더군요. 여기가 무슨 동물원이냐고, 자존심이 상한다고, 나이 쉰은 넘어 보이는 주민은 눈물 글썽거리며 말하셨습니다.
마을 뜨니(hot) 주민 뜬다(leave).
이런 불편 정도면 어쩌면 견딜만할 수도 있을 겁니다. 감천마을의 가장 큰 문제는 주민들이 떠나고 있다는 겁니다. 통계를 확인해 보니 지난 7년간 관광객 수는 80배 이상 늘었지만, 같은 기간 주민 수는 30% 줄었습니다. 심지어 올해는 마을의 유일한 초등학교가 학생 수 부족으로 폐교했습니다. 폐교된 학교 지하와 주변은 부족한 주차장으로 쓰이고 있더군요. 지난 몇 년간 부산에서 가장 유명해진 마을에서 일어난 상징적인 풍경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구석구석 살펴본 마을엔 빈집이 많았습니다. 집값 올랐으니 팔고 다른 데 살면 되는 거 아니냐고요?
그렇지 않았습니다. 우선 집값은 관광객이 몰리는 큰 도로변만 훌쩍 뛰었습니다. 그곳 건물들은 이미 투자자(라고 쓰고 투기세력이라 읽는다)들의 놀이터가 됐죠. 대다수 주민들은 사람이 비집고 들어가기도 어려운 구석진 골목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여기 팔고 어디 가서 살겠습니까? 부산에 더 집값이 낮은 곳이 얼마나 있을까요?
게다가 세입자들도 많았습니다. 그나마 여윳돈이 조금이라도 있는 분들은 이런 불편을 겪으며 살진 않겠죠. 가장 싼값에 세입해 들어선 주민들이야말로 다른 데 갈 수도 없이 마지못해 살고 있는 피해자들이었습니다.
사람 산다고 붙여놨지만..
부산연구원 분석에 따르면 이곳의 적정 관광객 수는 하루 2600여 명입니다. 그 이상이면 주민의 삶을 해치고, 관광지로서 지속가능성도 낮아진다는 거죠. 지난해 감천마을에는 하루 평균 7000명이 찾았습니다.
이 아름다운 풍경은 언제까지 지속될까요? 머지않아 주민도 관광객도 모두 사라진 폐허로 변해버릴까 걱정스럽습니다.
감천마을만의 일일까요?
뒤이어 찾아간 제주도에는 제2, 제3의 감천마을이 도내 곳곳에 있었습니다. 먼저 들른 곳은 한담마을이었는데요. 물이 맑고 파도가 잔잔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하더군요.
이 카페의 잘못은 없겠지만..
여기가 '핫플'이 된 건 가수 지드래곤의 카페가 들어서면서부터입니다. 지금은 운영권을 넘겼다는데, 취재를 간 날에도 카페는 사람들로 북적이더군요. 주변에도 비슷한 카페들이 우후죽순 들어섰습니다.
주민들과 얘기를 나눠보려는데 쉽지 않았습니다. 집들이 대부분 식당이나 카페로 리모델링돼 있어서요. 딱 한 분, 한담마을의 유일한 원주민 강명자 할머니를 만나서 얘기를 들어봤습니다.
폐가로 남거나 가게로 바뀐 집들.
강명자 할머니에 따르면, 이곳은 20가구 정도 이웃들이 모여 살던 마을이었다고 합니다. 장사꾼들이 들어오면서 주민들은 하나둘 꽤 쏠쏠한 가격에 집을 팔고 떠나고 지금은 혼자 남으셨다고 해요. 주민은 없고 상인만 남은 마을이 된 거지요. 할머니는 "장사하는 젊은이들이 예절 바르게 잘해서 큰 불편은 없지만 아침저녁 차들이 너무 다녀서 시끄럽긴 하다"고 하셨습니다.
한담마을 유일한 원주민 강명자 할머니.
또 다른 카페촌인 월정리 해변은 관광객이 버린 쓰레기로 몸살을 앓고 있었습니다. 둘러보니 플라스틱 쓰레기 폐기물들이 곳곳에 잔뜩 쌓여 있더군요. 마침 취재 간 날 해녀분들이 도청에서 시위를 벌이고 계셨습니다. 바다가 오염되면서 먹고 살 게 없다면서요. 그들의 구호는 이랬습니다.
"관광객만 신경 쓰고 지역주민 무시하는 제주도는 각성하라"
해녀복 입고 도청에서 집회를 벌인 해녀분들.
물론 이런 현상이 우리나라에서만 벌어지는 문제는 아닙니다.
물의 도시라 불리는 이탈리아 베네치아는 지역 전체가 관광지화 되면서 인구가 1/3로 줄었고, '관광 난민'이라는 말까지 생겼다고 해요.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도 최근 관광객들에 대한 거부감의 표시로 관광버스를 점거하고 돌을 던지는 '반 관광 시위'가 벌어졌답니다. 심지어 필리핀 보라카이는 심각한 자연 훼손을 이유로 지난해 반년 동안 섬 폐쇄를 선언하기도 했죠. 바로 ‘오버투어리즘’ 현상입니다.
이런 현상의 1차 피해자는 물론 주민들일 것입니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관광지로서의 매력도 같이 훼손된다는 겁니다. 그 현장에 가봤습니다.
전주 한옥마을. 마을이 조성된 지 십수 년 만에 방문객이 천만 명을 넘어선 곳입니다.
십 년 전만 해도 작은 슈퍼마켓이나 약방 등을 빼면 상업시설이 거의 없었지만, 지금은 골목마다 가게들이 가득 들어차 있었습니다. 마을에 있는 600여 채의 한옥 중 400곳 이상이 집이 아닌 상점으로 운영되고 있었죠. 상점의 종류도 처음엔 한옥마을 고유의 분위기를 담은 작은 공방들 위주였는데, 지금은 폭등한 임대료에 하나둘 자취를 감추고 대부분 음식점과 한옥대여소만 남았습니다.
그리고 원주민이 거의 떠난 이 '핫플레이스'는 지난해, 처음으로 관광객 수가 줄어들기 시작했습니다. 전주시로서는 아픈 통계겠죠.
원주민을 찾다가, 이곳에 50년간 살았다는 할아버지를 만났습니다. 수십 년된 동네 슈퍼에서 주민분들과 약주 한잔 걸치고 계시더군요. 슬쩍 자리에 껴서 이것저것 물어봤습니다. 그분의 한 마디 역시 아팠습니다.
"마을이라는 건 사는 사람들이 있어서 사람 냄새가 나야 마을이거든요. 그런데 이젠 한옥마을에 전부 장사꾼만 남았어요."
눈치 없이 물었습니다. '집값도 올랐을 텐데 팔고 어디 가실 수도 있지 않나요?'라고요. 간명한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평생 산 동네인데 어디 가겠어요."
어리석은 질문이었죠. 서울에 사는 제겐 집이 곧 가격으로만 보였나 봅니다.
약주 한(?) 잔 걸치고 인터뷰에 응해주신 한옥마을 원주민.
지자체들도 두 손 놓고 있는 건 아니었습니다.
주민과 관광객의 공존을 위해 저마다 노력을 하고 있었죠. 대표적으로 서울 북촌에 도입된 '관광 허용시간 제도'가 있습니다. 서울시와 종로구에서 주민들의 삶을 지켜주기 위해 나름대로 대안을 마련한 거죠. 평일은 오후 5시까지만 관광을 허용하고, 일요일은 '마을 쉬는 날'로 정해 관광객이 오지 않도록 유도한 정책입니다. '북촌지킴이'도 고용해서 관광객 질서도 유지하고요.
잘 지켜질까요? 일요일에 가봤습니다.
관광객 제한시간인 일요일 북촌 풍경
점심시간도 되지 않은 꽤 이른 시간이었는데, 골목길은 관광객들로 가득 들어차 있었습니다. 오신 분들께 물어보니 대부분 "관광 허용시간 자체가 있는 줄도 몰랐다"고 하시더군요. 하긴 누가 그런 걸 확인하고 왔겠습니까. 더군다나 외국인들이라면 더 그렇죠. 여전히 단체관광버스가 줄줄이 마을 입구를 가로막고 있었습니다.
북촌지킴이 활동을 하는 분께 물었더니 어쩔 수 없다고 하시네요. 그도 그럴 것이 사유지도 아닌 일반 도로에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걸 법적으로 어찌 막겠습니까. 여행사 등을 통해 가능하면 일요일에는 단체관광을 자제해달라고 요청을 하고, 오는 관광객들에게 홍보물을 통해 에티켓을 지켜달라고 호소하는 정도밖에 할 수 있는 일이 없었습니다. 지자체를 탓하기도 애매한 상황이었지요.
저희의 취재는 여기까지였습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주민들과 관광객이 공존할 수 있을까요? 취재를 마치고 제가 내린 결론은 이렇습니다.
먼저 지자체의 역할입니다. 지자체의 가장 중요한 책무는 젠트리피케이션을 막아주는 일이라는 생각입니다. 마을 집값이 비정상적으로 뛰는 순간 주민들은 배제됩니다. 투기세력이 모여들고, 생활물가는 뛰겠죠. 원주민들과 작은 가게들이 쫓겨나는 건 당연한 수순일 것입니다. 임대료가 폭등한 관광지의 몰락은 경리단길, 이대앞 등에서 쉽게 접할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 지자체마다 일일 관광객 수를 제한하는 조치도 필요하다고 봅니다. 지자체장 임기 4년 동안에는 이윤이 줄겠지만, 멀리 보면 남는 장사일 확률이 높습니다. 지속가능성을 생각한다면요. 자신의 임기가 아니라 진짜 마을을 아끼는 리더(지자체장)라면 충분히 검토해서 결단을 내릴 수 있겠지요.
단체관광 문화도 개선될 필요가 있습니다. 단체관광은 수익의 카르텔이 단단합니다. 여행사, 대형 음식점과 호텔, 운수회사가 대부분의 관광비용을 가져가는 구조지요. 그 연결고리에서 배제된 소상공인들과 마을 주민들은 아무리 관광객이 많아져도 아무것도 얻어가지 못할 가능성이 큽니다. 떼로 몰려다니며 특정 상점과 음식점만 찾고 마을 분위기는 분위기대로 흐리니까요. 단체관광객 방문을 일정 숫자 이하로 제한하거나, 특정 시간에만 허용하는 조치가 필요해 보입니다.
마지막으로 관광객 의식이 바뀌어야 합니다. 어쩌면 가장 중요한 문제지요. 관광객 의식이 변하면 지자체장과 단체관광여행사들도 부랴부랴 새로운 수요를 맞추려 할 테니까요.
내가 관광이나 여행으로 얻는 이득(휴식, 마음의 안정, 스트레스 해소)이 있다면, 그것들을 제공하는 존재들에게도 이득이 돌아가야 공정할 것입니다. 그런 차원에서 '공정여행' 개념을 지금부터라도 학습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돈 쓰러 온 관광객이 아니라 반가운 손님처럼 관계를 맺자는 거죠. 사람, 문화, 환경에 대한 존중과 배려를 잊지 말고, 기본적인 예의를 지키며, 이왕 소비를 할 거면 그 마을을 지켜온 주민들과 소상공인들에게 이득이 돌아가도록 돈을 쓰자는 겁니다.
문화와 의식은 쉽게 바뀌지 않습니다. 관광'문화'에 대한 관광객의 '의식'이 바뀌는 건 그래서 오랜 인내가 필요하겠지요. 그러나 꼭 필요한 과업이라는 데에는 이견이 있기 힘들 것 같습니다. 주민들, 그러니까 보통 사람들의 '최소한의 삶'을 보장해주자는 말이니까요.
팩트맨이 정리한 관광 경쟁력.
생존권이 아닌 산업적 측면에서도 결론은 마찬가지입니다. 1994년, 우리나라는 처음으로 '한국 관광의 해'를 선포하며 관광산업을 키우기 시작했습니다. 25년이 흐른 지금, 이제는 패러다임의 진보가 필요한 때입니다. 관광도 양보다 질을 따져야 할 때 아닐까요? 세계경제포럼이 발표한 관광 경쟁력 조사에서 우리나라는 중국과 일본보다 뒤처져 있었습니다. '한 번 왔다가 잊히는 흔한 관광지'로 각인되었을 확률이 높았다는 거죠.
관광도 여행도 결국엔 사람냄새 맡으러 오는 겁니다. 주민들의 삶이 무너진 곳에 관광객들이 다시 모여들까요? 전주 한옥마을에서 만난 원주민 할아버지의 말처럼,
"마을이 아름다운 이유는 '사람들이 살고 있기 때문’ 아닐까요?"
훗날 내 아이도 이 마을이 아름답다고 느낄 수 있기를...(사진 속 인물은 저희 팀 카메라기자입니다. 저는 기획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