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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묭 Nov 19. 2018

엄마가 꿈꾼 여행

베트남 호이 안 / 밤이 치유하는 마을에서


 영선은 아팠다. 지난 여섯 달간. 몹시.


 몸도 성치 않았고, 마음에도 병이 났다. 무엇이 먼저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상호작용한 것만은 분명해 보였다. 그리고 그녀의 탓이 아니란 것도. 희생으로 삶을 덮고 살았던 여인에게 이런 식의 고통은 불공정해 보였다.


 그로부터 여섯 달은 모두에게 끔찍한 시간이었다. 음습한 도시 한가운데 버려진 어린아이들처럼, 우리 가족은 처음 겪는 공황에 어찌할 바를 몰라 허둥댔다. 때로는 서로 끌어안았고, 때로는 울부짖었다. 때로는 각자도생하려 애썼다. 언젠가 다시 햇살이 우릴 비추겠지, 막연히 기대는 했지만 우리가 어찌 해볼 영역은 아니었다.


 인생에도 되감기 버튼이 있다면 주저 없이 눌렀으련만. 물론 되감기한 이후의 생을 다시 설계할 수 있다면 말이다. 헛된 상상일지라도 한 줌 위로만 될 수 있다면 머릿속에서 최선을 다해 생산해냈다. 그나마 다행인 게 있었다. 인생에 되감기 버튼은 없지만 일시정지 버튼은 있으니까. 나는 영선에게 제안했다. 너와 나의 생활을 잠깐 멈추자고. 일단 잠시라도 이 감당할 수 없는 황폐와 이별하자고. 우리는 다섯 시간 비행기에 몸을 실어 우릴 뒤덮은 음울의 하늘 너머로 떠났다. 아주 잠시. 그러고 보니 영선과 단 둘이 여행한 건 처음이었다.



 천 개의 풍등이 어둠을 빛으로 물들이는 강가 마을. 이름마저 포근한 호이 안. 우리는 숙소에 짐을 풀고, 부슬부슬 비 내리는 오래된 골목을 걸었다. 축축해진 목조가옥이 늘어선 거리는 인파로 북적였다. 부딪히는 어깨 너머로 나무 냄새, 돌 냄새가 이따금 바람에 실려왔다. 여름비는 묵은 향기를 데려오기 마련이다. “비 와서 그런가. 이런 냄새가 나네.” “너는 원래 냄새를 잘 맡았지. 옛날부터.” 가족끼리도 때론 역할이 분배된 경우가 있는데, 그러고 보니 난 어렸을 적부터 상한 음식을 코로 구별해내기 담당이었다. 주방일에 도가 튼 영선도 냉장고에 오래 둔 음식을 꺼낼 때면 먼저 내 코에 들이밀고는 판단을 맡겼다. 우리가 모여 살았을 적에는.


 소등된 대낮의 구시가지에는 집집마다 팔 것들을 늘어놓았다. 눈길이 가는 물건도 제법 많았다. 나는 가죽 공방, 영선은 액세서리 가게에서 주로 발걸음을 멈췄던 것 같다. 원래 우리 둘이 시장에 가면 흥정은 영선의 몫이었지만, 이상하게 여행지에서는 내가 앞장서서 그녀의 물건 값을 깎아주고 싶었다. 대여섯 가게를 돌아다니며 손가락을 흔들어댄 끝에 영선은 만 원짜리 근사한 목걸이를 하나 장만했다. 뿌듯해진 나는 그녀의 표정만 자꾸 살폈다. “이런 걸 득템이라고 해요, 요즘엔.” “너도 요즘 사람 아니잖아.” 신나서 말했다가 찬물을 얻어맞았다.


 
네 다리가 욱신거릴 즈음엔 미리 검색해둔 현지식당에 들러 끼니를 때웠다. 영선은 동네 명물이라는 화이트로즈(쌀반죽에 새우와 야채를 넣고 찐 음식)를 주문했고, 나는 베트남식 비빔국수인 카오 라우를 시켰다. 둘이 합해 5천 원 남짓. 값도 맛도 담담해서 좋았다. 설사 맛이 없었다 해도 잘 먹긴 했을 터였다. 우리는 원래 음식 불평을 거의 하지 않는 외식 파트너다. 배를 채우고 비가 좀 그치길 기다리니 어느새 해가 설핏해졌다. 스며든 어둠 사이로 풍등이 하나둘 불을 밝혔다. 고요히 흐르는 운하와 그 위에 그림처럼 떠있는 조각배들이 빗물을 머금고 반짝이기 시작했다. 우리는 다시 강 건너 야시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영선은 이런 여행을 꿈꿨더랬다. 누군가 감시하지 않는 여행. 밤이 있는 여행. 새벽부터 짐을 싸 단체버스에 몸을 싣지 않아도 되고, 낯선 도시의 공기를 채 킁킁거리기도 전에 가이드에게 다음 목적지에 대한 설명을 줄기차게 듣지 않아도 되는 여행. 무엇보다 재래시장에서 눈치 보지 않고 마음껏, 푹, 시간 제약 없이 구경할 수 있는 여행 말이다. 짧았던 여행에서 영선이 가장 행복해보였던 순간은, 지나칠 정도로 소박한 어느 지점들에 놓여있었다.


여행하며, 우린 많은 대화를 했다. 가족 얘기도 했고, 그녀가 친구들과 카드놀이 했던 얘기를 30분 동안 듣기도 했다. 내 예전 여행기도 빼놓지 않았다. 영선은 부러워했다. ‘너처럼 나도 혼자 여행 다닐 수 있을까? 난 힘들겠지?’라며 흘러간 세월을 못내 아쉬워했다. “영어만 좀 배우면 되죠 뭐.” 영선을 부추겼지만 나 역시 그녀 혼자 어디 보내기에 불안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런 시시콜콜한 옛날과 앞날이 여행 내내 우리의 좁은 틈을 오갔다. 때론 서로 귀담아 들었고, 때론 흘려들었다. 많이 웃었고, 종종 진지했으며, 가끔 울먹였다.



 둘이 똑같이 공감했던 순간은 아무래도 옛날 얘기를 할 때였다. 특히 내 어릴 적. 나는 소년이었고 영선은 막 아줌마가 됐을 때 이야기 말이다. 예컨대 이런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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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열세 살 때, 영선과 주현(누나)과 나는 부산으로 여행을 떠났다. 기차를 타고 갈 수 있는 심리적으로 가장 먼 곳이었다. 일단 멀리 떠나고 봤던 이유는 초딩 아들의 ‘사랑’ 때문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우습지만, 나는 당시 첫사랑에 심취해있었다. 요즘 아이들은 뭐든 빨라 일상적인 일일 수도 있으나, 당시에는 초등학생의 연애란 집안이 발칵 뒤집힐 법한 몹쓸 짓이었다. 나름대로 연애편지를 책상 서랍 깊숙이 숨겨놨는데, 그 정도면 엄마가 못 볼 거라고 확신했을 정도로 나는 어렸다. 어쨌든 영선은 양육자의 의무를 다해야 했을 것이다. 나를 그 여자아이(=당시에는 목숨도 아깝지 않을 것만 같던 불멸의 사랑)와 떼어놓기로 결심한 모양이었다. 그래서 서울의 공기를 마실 수 없는 가장 먼 곳으로 일단 내달린 듯했다. 마치 지금의 그녀와 나처럼. 물론 부산에 도착한 뒤에도 내 마음은 결연했다. 엄마와 누나의 만류에도 절대 사랑을 포기 않는 멋진 남자가 되리라. 사춘기를 몹시 앓던 소년에게 가족이란 남자다운 인생의 훼방꾼쯤이었을 터이다.


부산에서, 우린 딱히 무얼 하지 않았다. 영선의 옛 친구를 만나 회를 얻어먹었고, 관광호텔 방바닥에 셋이 옹기종기 눌러앉아 귤을 까먹으며 아무말 대잔치를 열었다. 아, 부산에 살던 노총각 삼촌을 만나 연애 사실을 밝히라며 채근했던 기억도 난다. 어쨌든 그 흔한 관광지 한 번 찾지 않고 여행은 끝났다.


그런데 거짓말 같은 일이 벌어졌다. 여행을 다녀온 뒤, 내 사랑은 식었다. 감쪽같이. 아직도 이유를 모르겠다. 그저 내 생각만큼 나는 뜨겁게 사랑에 불타는 멋진 남자가 아니었던 거다. 그 여자아이는 지금까지 날 미워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나의 사랑은 놀랍게도 없던 일이 되어버렸다. 그 여행 이후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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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신기하죠? 그 때 부산에 다녀오고 나서 그 애가 별로 보고 싶지 않더라니까.”

“아이고. 그 때 너 가출이라도 할까봐 소리도 못 지르고 얼마나 속이 탔는 줄 아니.”

 서른을 훌쩍 넘어 아저씨가 된 아들은 그날을 머쓱하게 회상했다. 영선도 타임머신을 탄 소녀처럼 열렬하게 기억에 동참했다.



 회사에 휴가를 낸 시간은 째깍째깍 끝을 향해 흘러가고 있었다. 우리 여행도 마무리를 지어야 했다. 수천의 종이 등불이 까만 하늘을 채색한 구시가지의 밤. 굵어진 빗줄기를 피해 찾은 모닝글로리 레스토랑 1층 어딘가에 앉아, 우리는 지난 나흘을 되짚었다.

“엄마는 이번 여행에서 뭐가 제일 좋았어요?”

“다.”

“에이. 한 순간만 꼽아 봐요. 두구두구두구두구!”

잠시 머뭇하다, 눈길을 공중 어딘가로 똥글똥글 굴리다 영선은 대답했다.

“미케 해변에서 낮잠 자던 거. 그리고 지금 여기. 호이 안에서 늦은 밤에 너랑 술 마시는 거.”

영선이 꿈꿨던 여행은 이런 거였다. 그저 맘 놓고 낮잠을 자고, 밤늦게 걱정 없이 돌아다녀보는 거.

“저도 그래요.

조그라든 목소리로 맞장구쳤다. 떨리는 음성을 숨겨야 했다.


 우리의 이번 여행은 이처럼 가벼웠다. 에어비앤비로 가정집 1만7천 원짜리 방을 빌려 묵고, 거리에서 900원 짜리 쌀국수로 아침 끼니를 때웠다. 목적지까지 빙 둘러 가는 택시기사에게 구글 지도 앞세우며 따진 끝에 천 원을 깎은 뒤, 회심의 하이파이브를 나누기도 했다. 그저 쉬고 싶을 때 쉬고, 그 날 그 날 아침마다 침대에 누워 어디 갈지를 함께 정했다.



 돌아오는 비행기. 엊그제 영선과의 수다 주제였던, 열세 살 적 부산 여행이 문득 다시 떠올랐다. 이번 여행에서도 우린 딱히 무얼 하지 않았지만, 그 때처럼 서울로 돌아가면 놀랍게도 모든 일이 해결되어 있지 않을까? 감쪽같이 말이다. 거짓말 같은 일이겠지만, 그 때도 거짓말처럼 그랬으니까. 우리 가족의 시야를 덮은 음울의 먼지가 걷히고, 그 공간을 햇살이 눈부시게 채우고 있진 않을까? 헛된 바람일지라도, 역시 한 줌 위로가 될 수 있으니 머릿속에서 최선을 다해 생산해냈다.


 착륙까지 한 시간 남짓. 일시정지는 끝났다. 다시 인생의 재생 버튼을 눌러야 할 때다. 우리는 다시 어디론가 흘러갈 터이다. 나는 영선과의 여행을 오감으로 복기하며, 조급함을 거두기로 결심했다. 언젠가 나아질 것이다. 꼭 나아지지 않더라도 삶은 그런대로 흐를 것이다. 영선도. 우리 가족도. 모든 게. 모든 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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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

아, 하나 더. 여행을 다녀온 뒤, 영선은 영어를 다시 배우기 시작했다. ‘지공세대(지하철 공짜로 타는 세대)’가 된 그녀에게 새로운 꿈이 생긴 것 같다. 이번 여행에서 그녀가 가장 많이 되뇌였던 말, 바로 “나도 너처럼 혼자 여행 다닐 수 있을까?”에 대한 대답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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