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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묭 Mar 31. 2019

"사진 찍지 말아주세요" 나만 알고팠던 호텔

<일본 가마쿠라> hotel aiaoi


사진 찍는 걸 자제해달라는 호텔에 들렀다.

호텔 예약 앱에서도 검색할 수 없어서 예약하려면 오로지 주인장에게 꽤 정성스러운 이메일을 보내야만 했다.

유난히 고집스러운 호텔. 머물다 보면 더 그렇다.

일회용품과 플라스틱 대신 나뭇결과 놋쇠의 품에서 쉬어가라 한다. 음식부터 가구까지, 대량 생산한 그 어떤 것도 들이지 않았다 한다. 친구가 세공해준 놋그릇에 잔돈을 내어주고 앞바다에서 잡은 생선으로 아침을 내어준다.

옛 것. 따듯한 톤. 나무냄새. 지역성. 핸드메이드. 침묵을 사랑하는 당신이라면,


나만 알고팠던 호텔 < aiaoi >를 기꺼이 공유하고 싶다.


사진촬영과 인터뷰는 허락을 받고, 게스트가 없는 이른 아침과 늦은 밤에 진행했습니다.


호텔은 일본 가마쿠라에 있다.


<슬램덩크>와 <바닷마을 다이어리>, 그리고 <츠바키 문구점>의 배경지. 마을 전차인 에노덴을 타고 하세역에 내려서 해변 방향으로 걷다 보면 노랗게 낡은 3층 건물이 나온다. 3층이 호텔 아이아오이(aiaoi)다. 이름 뜻은 ‘쪽빛 푸르름’. 가마쿠라의 쪽빛 하늘과 푸른 바다가 소박한 간판에 담겼다.


1층 간판. 명함보다 작다.


올라가 보면 여섯 개의 방과 카페를 겸하는 라운지가 있다.

 

우리나라 보통의 여관보다 작은 호텔이지만, 방들은 저마다 유서 깊고 고유하다. 내가 묵은 ‘별이 빛나는 밤’ 객실은 세 개의 창문으로 별이 총총한 가마쿠라의 밤하늘을 감상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 다른 어느 객실에는 주인장 부부가 살던 고향 해변의 모래를 섞어 벽을 칠했다. 가마쿠라에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초가집에서 마룻바닥을 옮겨와 만든 방도 있다.


내가 묵었던 '별이 빛나는 밤'


어메니티나 공용공간도 온통 낡아빠진 것, 자연을 닮은 것 투성이다.


세라믹 대신 나무를 깎아 만든 세면대. 동네 낙엽으로 염색한 노렌(천으로 만든 일본식 출입구). 놋쇠 스위치들. 칫솔은 말털을 다듬었고, 1회용이 아니니 돈 주고 사서 쓰고 가져가라 한다.



아침식사도 그렇다. 앞바다 어부들이 양동이에 담아 직접 가져다주는 제철 재료로 매일 메뉴가 바뀐다. 안내문에는 “바다가 언제나 원하는 것을 내어주지는 않는 까닭에 흉어의 시기도 있다”고 양해해두었다. 밥은 가족이 농사지은 쌀을 매일 아침 질 냄비에 지어낸다.

카페 메뉴들도 일관되다. 저녁에 진저에일을 주문하면 시나몬을 직접 달여, 갈대로 만든 빨대에 꽂아 대접한다. 한방차는 3대째 운영하는 동네약국에서 블렌딩했단다.



이런 고집스러운 숙소를 운영하게 된 연유가 있을까. 그들이 금해놓거나 부탁해놓은 것들의 행간에는 어떤 철학과 경험이 스미어있을까.

주인장 부부 중 고 고무로(Go Komuro)씨와 나눈 대화를 옮겨, 이 숙소의 독특한 가치를 공유해본다.



1. 왜 가마쿠라인가요?

“저희 부부가 사랑하는 모든 게 머물고 있는 도시입니다. 아늑한 사원, 맑은 해변, 산. 거기에 낮에도 길거리에서 맥주를 즐기는 자유로운 분위기도 있지요. 한적한 동네지만, 지역성이 살아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가끔 신나게 놀고 싶으면 도쿄도 가까워요(기차로 한 시간 거리). 평소엔 조용히 살고 싶지만 도시의 삶과 완전히 멀어지고 싶지도 않은 우리에겐 가장 이상적인 동네라서 정착하게 됐습니다.”

2. 왜 숙소 사진 찍는 걸 꺼려하나요?

“누구도 방해하지 않는 호텔이고 싶습니다. 사진의 찰칵 소리에 누군가는 방해받고, 자유를 빼앗기게 됩니다. 저희들(주인장 부부) 역시 마찬가지지요. 또 하나, 사진이 아니라 이야기로 남는 호텔이고 싶습니다. 저희 손님들이 '사진을 찍으면 오히려 감각이 좁아질지도 몰라. 사진 찍지 않고도 충분히 순간을 기억하고 느낄 수 있어'라고 생각해준다면 정말 행복할 것 같아요."

3. 왜 호텔 앱에 등록하지 않았나요?

“대량생산에 반대한다는 의미입니다. 저희 숙소에는 공산품과 대량 생산한 물건들이 없습니다. 그들이 나쁘다는 게 아닙니다. 다만 지역성을 추구합니다. 옛 문화를 지키고, 동네에 녹아드는 숙소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호텔 예약 앱도 결국 대량화와 획일화를 부추기는 산업이니까요.

게다가 가격과 별점에만 집중하는 예약 앱에 저희 호텔을 팔고 싶지 않습니다. not quantity, but quality라고 해야 할까요? 많은 손님을 받기보다, 알고 찾아와 주시는 손님에게 최상의 휴식을 제공해드리고 싶습니다.”

4. 알 것 같지만, 직접 듣고 싶어요. 어떤 호텔이고 싶나요?

“조용하고, 자연친화적이고, 옛 것을 아끼는 호텔입니다. 아내가 좋아하는 가치들이지요. 저희 홈페이지에도 그러한 가치를 공유하는 분들을 모시고 싶다고 써두었습니다.”


그들의 홈페이지 소개글 일부.


5. 여담일 텐데, 부부가 어떻게 만났나요?

“도쿄에서 직장인으로 만났다가 사랑에 빠졌어요. 젊을 때는 튀는 걸 즐겼고 시끄럽게 놀기를 좋아했지만 아내를 만날 즈음부터 이런 삶을 더 사랑하게 됐습니다. 결혼식도 이곳 가마쿠라에서 올렸죠.”

 

Go and Yuko Komuro 부부.


재밌는 인연 하나.

그들의 결혼식 축가는 국내 펑크록 밴드 ‘노브레인’이 불렀다고 한다. 그는 한국과 깊은 인연이 있다. 10대 시절, 한국에 놀러 와 ‘튀는 머리’를 하고 돌아다니다 같은 머리스타일의 노브레인을 우연히 만나 친해졌단다. 당시 노브레인은 클럽 <드럭>에서 공연을 하며 이른바 ‘막일’로 돈을 벌고 있던 꿈 많은 밴드였다고. 어쨌든 그들과 친해지며 킹스턴 루디스카 등 소수의 한국 뮤지션들과도 친분을 쌓았단다. 지금도 1년에 한 차례씩은 한국을 찾는다.


3층이 호텔이다.


약속된 인터뷰가 끝나고도 대화가 길어졌다.


우리는 서로의 여행을 꺼내놓았고, 이야기가 길어질수록 나는 벗겨지는 기분이었다. 그는 일본 당국이 학생들에게 식민시대를 가르치지 않는다며 안타까워했고, 세상을 바꾸는 데 주저하지 않는 우리나라 시민들을 부러워했다. 촛불집회와 세월호에 관한 뉴스를 챙겨보며 그렇게 느꼈단다.


때마침 MBC가 정권의 하수인이 되는 과정을 담은 영화 <공범자들>을 지난달 도쿄의 영화관에서 보고 왔다고 한다. “그거 만드신 감독님이 지금 우리 회사 사장님이 됐어요.” 그는 그 소식도 들었다며 웃었다.


내 객실의 문패.


인터뷰를 마친 밤.

객실 이름과 달리 날이 흐려 쏟아지는 별빛을 감상하진 못했지만, 낡은 나무냄새 나는 침대에 홀로 누워 별처럼 쏟아지는 질투와 부러움을 대신 받아들였다. 그들은 결코 옛 것을 전시하거나 흉내 내놓고 손님을 받지 않았다. 그 진심이 여기 머무는 자의 특권이었다. 이런 숙소를 늘 꿈꿨는데. 막상 그 품에 안긴 허탈함이란. 어쨌든 그들이 꿈을 현실로 일구어낸 공간 속에서 나는 잠들어 곧 꿈을 꿀 것이었다. 별이 없어 더 깊은 밤에.

 

유이가하마 해변이 보이는 창밖.


아마 이 글로 취향을 저격당한 누군가가 많을수록 앞으로 나의 예약은 힘겨워질 터이다. 그렇더라도 이 정도 감화받은 곳을 소개하지 않는다면 아마추어 글쟁이로서도 실격일 것만 같다. 내가 모를 누군가를 위해 이 글을 아껴 쓰는 이 순간이 그래서 나는 조금 가렵고 떨린다.

앞으로 매년 한 차례씩은 이곳에 들를 생각이다. 주인장을 가을에 한국으로 초대했는데 꼭 연락이 와서 재회했으면 좋겠다. 이토록 영감을 주는 벗은 아무래도 귀하니까.



또 봐.


(글을 공유하거나 옮겨가실 땐 짧은 댓글로 알려주시면 감사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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