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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묭 Feb 02. 2019

할머니 바리스타와의 한 시간

<베트남 달랏>Coffee Ba Nam



베트남의 아침은 카페다.


전에 들렀던 하노이든 호이안이든 지금 머무는 달랏이든, 허름한 노상카페든 세련된 신식 카페든 마찬가지다. 카페마다 아침식사를 갓 마친 사람들로 북적인다. 젊은이부터 노인, ‘혼커족’부터 왁자지껄한 무리까지 가리지 않는다. 가게마다 차이는 있지만 대개 우리돈 오백 원 가량이면 진한 베트남식 에스프레소 한 잔을 마실 수 있다. 달콤하고 걸쭉한 연유에 에스프레소를 얹은 베트남만의 커피다. 나 역시 숙소에서 조식을 해결한 뒤에 자연스럽게 카페를 찾았다. 그게 이곳의 암묵적인 공식인 것만 같았다. 닷새간 매일 같이 비슷한 시간에 카페에 들렀던 것 같다. 그 중 사흘째 아침, 그러니까 ‘레이크하우스’ 숙소로 떠나기 전 시내 호스텔에서 머물 때 들렀던 한 카페에 대한 기억은 유난히 다정하다. 엄밀히 말하면 주인장 얼굴에 패인 나이테 같은 주름과 커피를 내리던 낡은 손가락들에 관한 기억이다.




달랏 야시장 북쪽 오르막길에 ‘바-남’이라는 카페가 있다.


이름을 알아보기 힘들 만큼 녹슨 간판이 걸린, 예닐곱 평 남짓의 작은 카페다. 대로변에 있는 카페들마다 손님들이 제법 들어찼는데, 바-남 카페에는 유독 손님이 많았다. 마침 제일 구석 자리 손님이 자리를 뜨던 참이었다. 재빨리 들어가 자리를 이어받았다. 실내에 들어서니, 오래된 물건들이 뒤엉켜 풍기는 냄새가 코끝을 간지럽혔다. 의자와 테이블들은 키가 작아서 손님들은 잔을 들 때면 허리를 한껏 구부려야 했다. 바스러진 벽 구석마다 검푸른 곰팡이가 피어 있었다. 비를 막기 위해 테라스에 두른 천막은 구멍이 숭숭 뚫린 채였고, 그 위로 방수포가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자리에 앉아 얼마를 기다리니 우롱차가 나왔다. 우롱차를 기본으로 내주는 건 베트남 카페들의 고유한 문화다. 우롱차를 건넨 주인장은, 낡은 카페보다 더 오랜 세월을 살아온 게 분명한 백발의 할머니였다. 적게 봐도 스무명 남짓은 앉을 수 있는 카페를 홀로 운영하고 계셨다. 베트남은 작은 식당이라도 종업원이 대여섯 명씩 있는 게 보통이다. 인건비가 싸기 때문일 것이다. 가족경영도 많아 일가 친척이 함께 식당을 운영하는 일도 많다. 그래서 대개는 종업원 절반이 빈둥빈둥 앉아 있거나 수다를 떨고 있다. 손님보다 종업원 수가 많아 오히려 그들의 시선이 내게 집중된 기분에 불편했던 적도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풍경이다.


그런데 이 카페는 유독 알바생 한 명 없이 할머니 홀로 커피를 내리고, 나르고, 테이블을 닦고, 컵을 씻고 있었다. 150cm도 채 되지 않아 보이는 자그마한 체구. 조막만한 얼굴에 깊이 패인 주름과 은회색 짙은 눈썹과 앙 다문 입술을 가진 할머니 바리스타였다. 머리에는 녹색 스카프를 단단히 조여매고 있었는데, 커피에 머리카락이 떨어지지 않도록 신경 쓴 모양새였다. 옷은 가지런한 양장 차림이었다. 머리에 두른 스카프를 자켓 목 안으로 단단히 집어넣어둔 매무새가 반듯하고 빈틈없는 성품을 말해주고 있었다. 



할머니의 주방은 온통 낡은 것 투성이었다. 


흔한 에스프레소 머신 하나 보이지 않았다. 스테인리스 주전자는 구겨졌고, 유리잔을 담아놓은 빨간 플라스틱 양동이는 긁힌 자국으로 성한 데가 없었다. 설탕을 담은 유리병은 이미 오래전 투명함을 잃어버린 듯 보였다. 이제껏 나의 단골 카페들은 주로 낡음을 진열해놓은 빈티지 카페였다. 오래된 것을 대면할수록 아늑해지는 습성 때문이다. 그러나 이곳의 느낌은 달랐다. 낡음의 민낯을 마주한 기분이랄까. 


빈티지 카페들은 실상 낡음을 가장한다. 나를 비롯한 손님들은 낡은 것들을 감상하러 오지, 그것들과 직접 피부를 닿으려 하진 않는다. 낡아보이는 의자는 멋스럽지만, 진짜 낡아서 움직일 때마다 삐그덕대거나 나무 썩은 냄새가 나면 눈살을 찌푸리기 마련이다. 그래서 빈티지 카페 주인들은 대개 눈에 보이는 것들은 낡게, 손님들이 이용하는 시설들은 최대한 세련되고 깨끗하게 놔둔다. 반면 ‘바-남 카페’는 내 피부에 직접 닿는 것들, 실용적인 것들이 전부 낡아빠졌다. 불편하고 불쾌했을 법 한데 오히려 숙연한 마음이었다. 오래된 냄새를 찾아다니던 내게 진정한 낡음의 미학을 일러줬기 때문일까. 이곳 소품들은 수집된 낡음이 아니라 가게와, 주인과 함께 녹슬어 온 것들이다. 주인의 주름진 시간 만큼 이 물건들도 지난한 세월을 곁에서 함께 겪어왔을 테다. 늙어서 나타난 누군가와 친해지긴 어렵지만, 함께 늙어간 이들은 서로 아름다워보이기 마련이다. 그 낡음이 자신의 것 같을 테니까. 주인장 할머니와 이곳의 오래된 도구들은 그래서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카페 어디에도 황혼을 가장한 청춘의 흔적은 없었다.


나는 베트남식 연유 에스프레소를 주문했다. 할머니는 물을 끓인 뒤 증기로 커피를 달이고, 커다란 양철주전자에 보온해둔 뒤 손님들에게 차례로 내어주었다. 갓 끓인 물로 커피를 제 때 대접하기엔 할머니 손은 두 개뿐이었고, 이 가게 손님들은 너무 많았다. 그렇다 보니 손님들 대부분은 미지근한 커피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내 연유 에스프레소도 마찬가지였다.


게다가 연유며 커피며 내 기준으로는 맛이 너무 묽었다. 나는 향이 진한 것들을 선호하는데, 어제 들른 카페에서 마셨던 농도 짙은 에스프레소와는 색깔부터 달랐다. 나는 그게 이 도시의 표준이라고 생각해 따로 농도에 관해 요구하지 않았던 거다. 그런데 다른 테이블로 고개를 돌려 보니, 옆자리 베트남 아저씨 앞에는 내가 원하던 진한 색의 연유 에스프레소가 놓여있는 게 아닌가. 왜 내게만 묽은 커피를 줬는지 따져 묻고 싶었지만, 주인장 할머니를 비롯한 어느 누구와도 소통이 가능할 거라 기대되지 않는 카페 분위기에 이내 불만을 접었다. 마시다 보니 단지 내 입맛에 좀 싱거울 뿐 커피 자체는 향이 좋고 달달했다. 속상한 마음도 이내 달달해졌다.



할머니는 내가 카페에 머물던 시간 내내 쉬지 않고 움직였다. 커피를 달여 놓은 양철 주전자 세 개도 덩달아 쉴 틈이 없었다. 커피를 다 내리면, 할머니는 손님들이 테이블 위에 놓고 간 유리잔들을 수거해 물이 반쯤 찬 플라스틱 통에 담았다. 물이 뜨거운지 통 겉면에 수증기가 잔뜩 서려 있었다. 컵을 씻은 다음에는 커피 숟가락을 가지런히 다듬었다. 그리고는 종이 필터에 남은 커피찌꺼기를 걷어내더니, 내린 커피를 눈으로 한 번 훑었다. 커피 상태를 확인한 다음 다시 주방에서 나와 테이블 의자들을 가지런히 정리했다.


한 시간 가까운 시간 내내 그녀의 손과 발은 이토록 분주했다. 세월의 지겨운 반복에 아예 쉬는 법을 잊은 것처럼. 할머니가 유일하게 멈춰 있던 순간은 커피 한 잔으로 잠시 목을 축였을 때인데, 그 순간에도 컵을 입술에 가져다 대는 손목이 어찌나 부지런하던지 도무지 쉬는 모습이라고 여길 수 없었다. 이렇게 끊임 없이 움직이면서도, 전혀 조급하거나 부산스러워 보이지 않았다. 부지런하되 서두르지는 않는 모습이었다. 오히려 익숙한 패턴대로 오랫동안 반복 작동해온 낡은 기계처럼 보였다. 겉보기에 이토록 인간적인 자태를 지닌 노인에게서 기계의 냄새를 맡다니. 그렇게 느껴지기까지 쌓여왔을 지난한 시간의 품격이 할머니의 미세한 동작마다 배어 나왔다. 그제야 나는 이 카페에 유독 사람이 많았던 이유에 대해 곱씹어 봤다. 단언할 순 없지만 알 것도 같았다. 나라도 다음날 도시 외곽 숙소로 떠나지 않았더라면, 말 한 마디, 눈길 한 번 내게 건넨 적 없는 이 할머니의 낡은 카페를 찾았을 것도 같았다.



할머니의 일하는 모습을 유심히 관찰하다 보니 예상보다 시간이 많이 흘렀다.


그 사이 손님들도 하나둘 떠났다. 이젠 좀 쉬시려나 싶었는데, 할머니는 의자에 앉는 대신 커피 한 잔을 들고 가게 구석으로 향하는 것이었다. 거기에는 두 뼘 남짓한 반듯한 나무판자에 소담하게 상이 차려 있었다. 눈에 잘 띄지 않는 모퉁이 바닥이었는데, 제삿상인지 신줏단지인지 알 수 없었다. 미신 혹은 성물(聖物)로 보이는 손바닥만한 조각상 두 개와 물이 반쯤 채워진 유리컵 다섯 잔, 뜯기지 않은 커피맛 비스킷 한 봉지, 식물이 자라는 유리컵 화분이 상 위에 놓여 있었다.


옥빛 노인의 조각상 왼손에는 담배 한 개비가 외롭게 들려 있었다. 황톳빛 필터 끝머리가 야금야금 타들어가 조금씩 재로 변해가는 중이었다. 오래 전에 불을 붙여놨는지 내가 목격했을 때는 담배필터는 거의 사라지고 없었다. 대신 기다랗게 쌓인 담뱃재가 조각상 왼쪽 볼에 기댄 채 위태로운 생을 이어가고 있었다. 올라갈수록 등이 굽은 가느다란 회색빛 담뱃재가 할머니의 모습을 닮았다고, 나는 잠시 생각했다. 할머니는 성물 앞에 쪼그려 앉은 뒤, 구제 라이터로 향을 피웠다. 곧이어 들고 간 커피 한 잔을 상 위에 대접했다. 잠시 바라보더니, 유리컵 화분 속 흙에 물이 마르지 않은 걸 확인하고는 말 없이 일어나 다시 주방으로 향했다. 나는 그 움직임의 의미를 읽지 못했다. 종교 의식이었을까. 미신이나 조상을 모시는 문화일까. 남편의 제사일까. 알 수 없었다. 내가 아는 사실은 그저, 할머니가 자신에게 주어진 고 짧은 쉬는 시간을 조각상에 커피를 대접하는 데 썼다는 것이었다. 의자에 앉아 다리를 주물렀을 법도 한데. 할머니에겐 그게 쉬는 방식이었던 것도 같다.




나는 그 모습을 목격한 뒤에야 자리를 떴다.


1만 동(우리돈 500원 가량)을 내면 됐지만 2만 동짜리를 건넸다. 잔돈은 됐다고 손짓한 뒤 두 손을 모아 인사를 드렸다. 내가 카페에 머무는 한 시간 동안 할머니는 사진을 찍도록 허락해주고, 오래 머물렀다며 눈초리 한 번 건네지 않았다. 그에 비하면 내가 드린 팁은 보잘 것 없었다.


가게를 나오면서 나는 묘한 기분에 휩싸였다. 생각해 보니 나는 할머니와 한 마디 대화도 나누지 않았다. 서로 목소리도 모르는 셈이다. 웃는 모습을 보지도 못했다. 긴 시간 늘 한결같은 표정이셨으니까. 단지 내가 살면서, 오직 누군가를 한 시간 가까이 말 없이 바라만 보고 있던 적이 있었는지가 문득 궁금해졌다. 기억을 더듬어 봐도 잘 떠오르지 않았다. 사는 날이 쌓일수록 ‘살다가 처음’ 겪는 일은 사라지기 마련이다. 그렇게 생은 시나브로 건조해져 가는 법이다. 무척 오랜만에, 난생 처음 겪었을지도 모르는 무언가를, 방금 전 마주했다는 사실에 문득 마음이 촉촉해졌다. 그 상대가 목소리조차 들어본 적 없고 내게 미소 한 번 건네지 않은, 앞으로 만날 일 없고 특별할 것도 없는 어느 늙은 바리스타라는 사실에도. 왜 나는 그랬을까. 모르겠다. 이유를 밝혀내야 할 만큼 중요한 일도 아니다.



숙소로 돌아와 침대에 누웠다.


커피향이 여전히 입 안을 감돌았다. 문득 묽었던 연유 에스프레소 맛이 떠올랐다. 혹시 할머니가 일부러 커피를 묽게 타줬던 건 아닐까? 그게 외국인에 대한 할머니 바리스타의 배려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그제서야 들었다. 내가 유독 진한 커피를 선호할 뿐이다. 그 가게를 앞서 찾은 어떤 외국인이 쓰디쓴 에스프레소에 눈을 찌푸렸을 수도 있다. 그 표정을 할머니가 봤다면, 그 후 외국인에게 대접하는 커피맛은 달라졌을 수도 있다. 타지 사람이 거의 오지 않는 로컬 카페였으니까. 그런 성급한 일반화가 이루어졌을 가능성도 충분하다. 사실 우리나라 사람들만 해도 에스프레소 대신 물을 타서 농도를 낮춘 아메리카노를 즐겨 마시지 않는가. 바리스타 할머니는 에스프레소를 주문한 나에게, 나름의 ‘반(半) 에스프레소, 반 아메리카노’를 건네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뒤늦게 든 거다.


물론 아닐 수도 있다. 나만의 착각일 수도. 가능성은 반반이다. 할머니가 타준 커피처럼. 그저 나는, 그 사랑스러운 확률을 발견했다는 사실에 마음이 일렁였을 뿐이다. 수학 같은 확률에서 사람냄새가 나서 말이다. 나는 그 기분 좋은 가능성을 상상하며 침대에 누운 채로 한참을 혼자 웃었다. 창살에 깨진 햇빛 조각들이 열매처럼 천장에 대롱대롱 매달려 흔들리고 있었다. 아직도 아침이었다. 달랏에서의 셋째날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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