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 살 된 동네가 스무 살들에게

<필카로 동네탐방 03> 인천 개항로

by 나묭


(1963년제 수동 필름카메라로 찍습니다. 초점흐림주의)


오래된 동네 바꾸기,가 이토록 주목 받는 시대가 있었을까.


서울과 지방을 망라하고 ‘도시 재생 프로젝트'가 가동되고 있다. 도심이 형성된 시기, 그러니까 새마을운동과 도시 개발이 이뤄지던 때가 어디든 비슷하다 보니, 동네마다 수명이 다해 쇠락하는 시점도 전국적으로 비슷하기 때문일 테다. 거기에 재개발 광풍을 거쳐 ‘공존'의 가치에 대해 사회가 비로소 눈 뜨기 시작한 까닭도 있을 것이다.


의도야 좋다지만 최근 지자체 등 ‘관’이 주도하는 도시재생사업들이 비판을 넘어 비아냥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낡은 벽에 페인트 칠하고, 가로등 몇 개 놓으면 새 동네가 되냐는 거다. 일견 맞는 말로도 들린다. ‘수십 억 쏟아놓고 벽화만 그렸다'는 식의 기사가 쏟아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왜 도시재생이 비아냥을 듣는지 따져보기에 앞서, 이 동네를 먼저 소개하고 싶다. 서울 밖을 벗어나지 않는 연인들에게, 또 도시재생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고민이 깊은 지자체들에게 이 글이 읽혔으면 한다. 백 살이 넘은 동네, 쇠락한 유흥가에서 몇 년 사이 서서히 젊은이들의 ‘레트로 성지'로 떠오른 한 거리에 관한 탐방기다.


동네 필름가게에서 산 ISO400짜리 로모그라피 필름으로 찍었다.




개항로의 시작은 배다리 책방 골목과 맞닿아 있다.


살아있는 글들이 살아있는 가슴에...


단아하게 단장한 옛 서점들.


가게 만큼이나 나이를 가늠할 수 없는 책들


배다리 책방 골목 구경으로 동인천 개항로 걷기를 시작한다. 반대쪽 끝에는 인천 최초의 영화관, '애관극장'이 멀티플렉스의 위협에도 여전히 살아 버티고 있다.


영화를 보고 싶었지만 시간이 없는 관계로...


개항로의 매력은 역사적인 거리라는 데 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서양 문물을 받아들인 거리. 인천에서 가장 오래된 영화관도 있고, 조금 더 가면 한국 최초의 근대식 호텔도 여전히 남아 있다. 물론 건물만.


이런 옛 이야깃거리가 있기에, 다른 도심의 레트로 거리에 렌즈를 들이밀 때와는 심도부터 다르다.



백살 된 옛 동네, 개항로가 바뀌기 시작한 시점은 이 전시공간이 들어서면서부터라고 한다. 7년 전 폐 창고를 개조해 만든 '잇다 스페이스'. 한 예술가가 사들여 작업장이자 전시장으로 쓰기 시작했다는데, 그는 지금도 이곳을 무료로 개방하고 있다.


내부는 이렇다.


이렇기도 하고.


맞은 편 <풀잎 커피방>과 한 필름에 같이 담았다. 영어문법으로 치면 과거형과 현재완료형의 만남 같은 사진이랄까... 이게 하프 카메라의 매력.



<잇다 스페이스>가 개항로에 발을 들이고 얼마 뒤에 이 카페가 생겼다고 한다. 일광전구에서 운영하는 빛의 카페, <일광 라이트하우스>다. 옛 사옥을 개조해 만든 것만 같은데, 개항로가 동네 바깥 사람들에게까지 알려진 데는 이 레트로 카페의 역할이 컸단다.


전구 회사가 운영하는 카페 답게 온갖 종류의 빛이 카페를 채운다.


전구 만드는 거대한 기계도 있고.


자연 조명까지 활용한 인테리어. 태양이 가장 높이 뜬 정오의 풍경이다.


벽의 갈라짐과 잡초까지 그대로 두었다.


이 카페가 문을 연 2017년 전후로 개항로에는 젊은 주민들이 크게 늘었다. 들은 바에 의하면, 동네 토박이였던 한 청년이 중심이 되어 '개항로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거리를 바꾸어나가기 시작했단다.


수십 년은 됐을 법한 건물에 정갈한 이태리 레스토랑이 들어서고,
하늘이 맑았다면 더 좋았겠지만...어쩌면 이런 하늘이 더 필카 화질에 어울리는 것 같기도.
킨포크와 뽀빠이 매거진으로 무장한 카페도 생기고,
영화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 정원> 같다는(나는 아직 보지 못했다) 베트남 식당도 들어섰다.


2020년 현재, 개항로 중심거리의 절반 가량은 이렇게 새로운 식당과 카페, 전시관으로 변했다. 옛 것과 새 것이 서로 말을 걸고 있는 듯한 동네. 옛날을 흉내낸 레트로 가게만 즐비했다면 이런 균형의 아우라는 느껴지지 않았을 것이다.


동네가 예뻐지니 사람들도 모이기 시작했다. 인천에서도 주변부인데다 근처에 회사도 없어 여전히 평일 오후에는 한산한 편이지만, 주말에는 벌써부터 사람들로 꽤 북적인단다.


왼 편이 필름카메라로, 오른 편이 아이폰으로 찍은 무보정 사진.


개항로의 끝, 애관극장을 지나면 저 높은 언덕배기 성당의 첨탑이 눈에 들어온다. 이름도 높아 '탑동성당'이다. 올라가 보니 이런 풍경이 펼쳐진다.


성당에서 바라본 동인천과 서해 바다.


성당 안에서 손등에 도장을 찍고 내려오니 어느새 해가 졌다. 내려오는 길목.


여기서 개항로 반대편으로 내려가면 '신포 우리만두'로 유명한 신포시장, 한국 짜장면의 발원지 인천 차이나타운, 그리고 바다가 차례로 나온다. 개항로를 즐기는 데 온전히 하루가 다 필요한 이유다.




개항로를 벗어나 다시 다른 지자체들로 눈을 돌린다. 처음 얘기로 돌아와서, 전국적인 도시재생 프로젝트는 그래서 왜 비아냥과 조롱의 대상이 됐을까?


짧은 소견이지만, ‘관 주도의 역설’ 탓으로 설명하고 싶다. 오래된 동네에 새로운 창의성을 불어넣는 게 도시재생사업 성패의 관건인데, ‘관’과 창의성이란 태생적으로 양립할 수 없기 때문이다. ‘관’이란 조직이 어떻게 창의적 업무를, 그것도 주도적으로 수행하겠는가. 그래서 늘 도시재생 프로젝트를 끌고 가는 주체는 ‘관'이 아닌 ‘민(민간)'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왔다. 원주민이든 외부 전문가 집단이든 민간에게 주도권을 넘기고, 관은 조연으로 후방지원을 해주는 게 바람직하지 않을까.


문제는 관이 그 주도권을 민간에게 쿨하게 믿고 넘기기 어렵다는 데 있다. 4년 단위로 심판을 받아야 하는 지자체장들에겐 ‘내가 해냈다'는 티를 내는 게 가장 중요한 과업을 테니. 그들의 조급한 마음도 이해는 해줘야 하겠지만, 그러다 동네도 못 바꾸고 돈만 날릴 가능성이 높다는 경고도 함께 건네고 싶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인천 개항로는 만간의 주도로 도시재생이 이뤄지고 있다. ‘개항로 프로젝트'라는 이름을 걸고 도시재생을 기획하는 민간단체가 있고, 그 수장은 개항로 토박이라고 한다. 원주민이 아닌 외부 자본이 개항로 건물들을 사들인다는 우려의 시선도 있지만, 그 우려는 ‘관'이 조연으로서 감시의 역할을 잘 해주면 충분히 씻겨낼 수 있을 것이다.


도시를 단기간에 살려낼 수 있을까?


도시는 지자체장의 임기 내 프로젝트로는 재생되기 힘들다. 토박이와 전문가가 어우러진 민간의 점진적이고 장기적인 과업으로 여겨질 때, 그나마 살아날 확률이 높아질 것이다. 시대를 역류하는 동네, 이곳 인천 개항로가 다시 숨 쉬기 시작한 방식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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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1월.


Pics by canon demi


#개항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