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사랑한 한 남자,의 도시

홍콩. 장국영 흔적 줍기

by 나묭
(1963년제 수동 필름카메라로 찍습니다. 초점흐림주의)

(※홍콩 여행은 지난 1월에 다녀왔습니다.)




거짓말이 허락된 날, 거짓말처럼 떠난 사람.


4월 1일은 또 돌아온다. 벌써 17년 전이네. 누군가에겐 학창 시절의 허파 같던 사람. 좋아하는 배우가 거의 없던 내겐 아득한 별 같던 사람. 그의 사망 소식은 먼 땅에 사는 수많은 ‘홍콩영화 키드’의 시간을 잠시 멈추었을 것이다. 마치 공유된 청춘의 일부를 도린 듯이.


올해 1월의 어느 날. 내게 며칠의 휴가가 허락되었고, 민주화 시위로 달아오른 홍콩행 티켓을 끊었다. 역사의 현장을 개인적으로 담고 싶은 마음이었지만, 딴마음도 품고 있었다. 나에게 홍콩은 장국영이었기에 하루 시간을 내어 그의 흔적을 좇기로 했다. 마침 몇 달 전부터 필름카메라에 입문한 터. 이 도시의 풍경이야말로 필카에 담는 게 가장 정직할 것도 같았다. 우리 세대에게 홍콩의 시계는 1980년대와 90년대 사이 어디쯤 멈추어 있으니까.



필름카메라에 담긴 홍콩 민주화 시위의 흔적들. 메트로폴리스와 야외 놀이동산을 배경에 둔 철교에 선명하게 저항이 새겨 있다. 경찰은 지우고, 시위대는 새기고 하는 일상이 반복된단다.


Until Vitory.

지금의 홍콩을 필카로 찍는다고 옛날이 되진 않겠지만, 인화된 사진 속 홍콩은 분명 저 먼 기억에 가 닿아 있었다.


하프카메라의 매력. 같은 장소를 두 컷 찍어 한 장에 담을 수 있다.


홍콩의 흔한 아침


먼저 퀸즈카페로 가본다.


장국영, 장만옥, 유덕화 주연의 영화 <아비정전>에서 자주 등장한 식당이다. 장국영과 새어머니가 만나는 첫 장면도, 자신을 버린 엄마를 찾아 필리핀에 가겠다고 선언하던 장면도 여기였다.


환갑이 다 된(1963년제) 수동카메라다. 어두운 실내에서 초점 맞추기란 내 실력으론 무리.


퀸즈카페는 우리로 치면 경양식 프랜차이즈인데, 몇 년 전 경영난으로 홍콩에서 철수했다고 한다. 그러나 영화팬들의 요구로 두 곳을 다시 열었고, 이곳 노스포인트 지점에 장국영의 사인과 사진들, 그리고 <아비정전>에 등장한 공중전화 박스 모형을 놓아두었다고 한다.


<아비정전>에서 장국영네 집 앞에 있던 공중전화 박스. 모형으로 만들어 이곳에 두었다.


왕가위 감독과 배우들의 사인이 담긴 사진들.


실제 영화 포스터 속 퀸즈카페.


밖으로 나가본다. 홍콩의 홍대라는 란콰이펑과 아기자기한 소호 거리를 지나, <중경삼림>에 나오는 미드레벨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가장 높은 곳까지 올라가야 한다.


이 에스컬레이터 어딘가에서, 왕페이가 양조위 집을 기웃거렸다지... 이어폰 선곡은 두 말 할 것 없이 마마스 앤 파파스의 <California Dreamin'>.


바로 이 장면... 이런 매력적인 스토커라면 뭐...


미드레벨 에스컬레이터의 꼭대기에 도착해서 오른쪽으로 5분을 걸으면 도착하는 곳. 장국영이 등장한 장면은 아니지만 <아비정전>에서 이 거리를 빼놓을 수 없다. 유덕화와 장만옥이 밤 산책을 하던 거리, ‘셩완캐슬로드.’


거리의 정식 이름은 이렇다.


장만옥과 유덕화. 그리움의 방향이 달랐을 뿐 두 사람의 눈빛은 동시에 애가 탔다. 그들을 잇던 공중전화 박스는 사라졌지만, 노란 불빛과 녹슨 간판, 깎아지른 조그만 터널은 그대로다.


‘난 선원이 될 거예요.’ 유덕화의 목소리가 들릴 듯 말 듯. <영화 '아비정전'>


꼭 밤에 찾아가고 싶었던 이유.


다음 날. 영화가 아닌 현실로 돌아온다.

장국영의 단골 식당으로 잘 알려진 딤섬 레스토랑 ‘예만방.’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장국영의 사인이 담긴 책자를 볼 수 있었다던데, 용기 내어 물어보니 지금은 주인이 집에 보관한단다.



음식값이 비싸긴 했지만 왜 장국영이 이 딤섬집을 사랑했는지 알 수 있는 맛이었다.


옛날 필름카메라와 음식샷은 상극이다. 특히 나의 Canon demi는 80cm 이상 떨어지지 않으면 초점을 맞출 수 없다.


홍콩섬에서 구룡반도로 넘어온다.

홍콩의 동대문이라는 몽콕에서 15분간 가파른 언덕길을 오르면 나오는, 장국영 생가.


속상하다. 몇 장 찍지도 못한 사진인데 빛이 너무 많이 들어갔다.


장국영이 숨지기 직전까지 머물렀다는 집이다. 지금은 다른 사람의 소유가 되었다고 한다. 사진을 몇 장 찍으니 경비가 달려와 알려준다. 나 같은 사람이 많아서 얼마나 귀찮으셨을까.


다만 묻고는 싶었다.

죄송해요. 그런데 이 집은 얼마예요?

아니, 얼마 있으면 그가 살았던 곳에서 살아볼 수 있나요?


누군가의 집이 된 장국영의 집.


늦은 오후. 구룡반도 남쪽 끝을 향한다. 침사추이 해안가에 있는 ‘스타의 거리.’



수많은 스타의 손도장과 사인 사이로 한참을 훑어 찾은 이름.



장국영. Leslie Cheung.

이름만 읽어도 떨리는 사람.


밤까지 거기 머물렀다. 덕분에 의도치 않게 렌즈에 담은, 초점 없는 홍콩의 야경


설명할 순 없지만, 그는 뭔가 다른 배우이자 가수였다. 연기를 잘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눈빛에 홀렸고, 가창력이 뛰어나진 않았고 목소리도 흔했지만 내 귀를 감싸 안았다. 웃고 있어도 울적한 얼굴. 화면에 갇히지 않는 아우라. 적어도 배우 중에는, 내가 아는 한 ‘스타’라는 수식어가 가장 완벽하게 어울리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2003년 4월 1일. 그의 나이 마흔일곱.



세상이 담아내지 못할 스타 다운 끝이었을까.


이곳 만다린 호텔 24층 객실에서 그는 뛰어내렸다. 유서도 바로 공개되지 않았고, 숨지기 얼마 전 연인 당학덕과 싸우는 모습을 봤다는 증언도 이어졌다. 유산 상속 문제까지 얽히며 여전히 그의 죽음을 타살로 보는 시각도 많다. 하지만 그뿐이다. 밝혀진 것은 없고, 그도 없다.


장국영이 투신한 만다린 오리엔탈 호텔의 로비.



매년 4월 1일이 되면 이곳 호텔의 벽면은 꽃으로 덮인다고 한다. 17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나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의 발걸음을 이르게 하는 배우.


장국영 사망 10주기였던 2013년 4월1일 만다린 호텔 앞. 중국 언론 보도사진.


내가 존경하는 뮤지션들은 대개 죽어서 만났다. 제프 버클리, 커트 코베인, 프레디 머큐리, 존 레논, 김현식, 김광석… 그러나 좋아하던 스타의 뒤늦은 죽음을 접한 경험은 그가 처음이었다. 당시 난 스물두 살이었고, 슬픔을 추스르기에 충분한 어른이었다. 그래도 그 날엔 가슴 깊이 밀려온 낯선 감정 앞에 혼란스러웠다. 가까이 닿아보지도 못한 사람이지만 좋아하는 누군가가 죽는다는 것. 그 급작스런 공백에 마음이 어찌할 바를 모른 듯했다. 그저 멍했고, 평소보다 좀 더 많이 걸었던 것 같다.



17년이 지난 지금에야 처음 찾은 홍콩. ‘우리 시대의 한류’였던 홍콩의 심장은 여전히 옛 기억 속에 잠겨 있었다. 아마 내 눈이 풍경을 편식한 탓이겠지.


과거를 이어주는 홍콩의 밤거리를 걷다가, 문득 궁금해졌다. 민주화 시위로 뜨거워진 2020년의 홍콩. 장국영이 살아있었다면 그는 무슨 말을 했을까?


누구도 장담할 순 없다. 다만 내 기억이 묻어 놓은 그라면, 최루탄 연기가 덮은 잿빛 하늘 아래, 시위 행렬 어딘가에서 걷고 있거나 춤을 추고 있지 않았을까? <영웅본색>에서 그와 죽음까지 맞바꾸던 동료 주윤발이 지금 그렇듯이 말이다.


주윤발보다 더, 그는 멋있는 사람이었으니까.


열일곱 번째 안녕, 레슬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