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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 변호사 Mar 09. 2024

맡겨진 소녀

독서메모(841)

저자 : 클레어 키건(Claire Keegan)

역자 : 허진

출판연도 : 원서 - 2010, 역서-2023


100페이지 밖에 안되는 짧은 소설이다. 그런데 단행본으로 나왔다. 100페이지는 단편소설 분량이라고 하기에는 좀 길다. 작가는 단편소설이라고 했고 나도 그렇게 느꼈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생 텍쥐베리의 어린왕자가 계속 생각났다. 어린왕자처럼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지는 않지만 화법이 비슷하다.


작가 클레어 키건은, "애쓴 흔적을 들어내는데 많은 공을 들인다. 애써 설명하는 것보다 독자의 지력(知力)을 믿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정말 작가는 그런 스타일로 소설을 쓴다. (변호사는, 안그래도 읽을 서류의 양이 천장에 닿는 판사에게 그런 지력을 발휘해달라고 기대할 수 없다. 술술 읽히는 문장으로 모든 정보가 빠짐없이 정확하게 전달되도록 써야한다.)


별로 기술을 쓰지도 않은 것 같은데 모든 문장이 아름답다. 아니 아름답다라는 표현보다는 깊다라는 것이 맞겠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우리 둘 다 말이 없다. 가끔 행복하면 사람들이 말을 안하는 것처럼. 하지만 이 생각을 떠올리자마자 그 반대도 마찬가지임을 깨닫는다."


소설을 영화로 만든 것이 있을 때 대부분의 경우에 소설을 먼저 읽고 영화를 본다. 소설을 어떻게 3차원으로 구현하였는지를 보는 재미가 쏠쏠하기 때문이다. 주로 감독의 역량에 감탄하고(그렇다고 소설보다 영화가 더 좋았다라고 느낀 적은 거의 없었다), 어떨 때는 실망한다.


이 소설은 영화를 먼저 봤다. 소설의 원제는 Foster다. 영화 제목은 The Quiet Girl 이다. 소설의 주제라고는 할 수 없지만 중요한 특징(Feature)이라고 할 수 있는 다음의 대사를 영화 제목으로 쓴 것 같다.


"입 다물기 딱 좋은 기회를 놓쳐서 많은 것을 잃는 사람이 너무 많아."


영화도 무지 잘 만들었다. 재미를 위하여 소설의 품위를 떨어뜨리는 짓 같은 것을 하지 않았다. 이런 단조로운 줄거리로 영화를 만들 생각을 한 감독이나 제작자가 대단하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


마지막 장면에서 소녀가 "아빠, 아빠"하고 외친다. 그 아빠는 뒤쫓아오는 불량한 자기 아빠를 조심하라고 말한 것인지, 처음으로 부모의 따뜻한 사랑을 느끼게 해 준 친척 아저씨를 아빠라고 부른 것인지는, 그 소녀만 안다. (작가에게 물어본다면 뻔한 대답을 할 것이다.)


사무실에서 책을 다 읽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서 계속 소설 속의 장면, 장면 즉 에피소드가 생각났다. 그리고 그 에피소드들 간의 함의가 다시 한 번 연결됐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읽어야만 하는 소설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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