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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 변호사 Jul 20. 2024

퍼펙트 데이즈

야쿠쇼 코지

조선일보의 신정선 기자는 영화평을 쓴다. 글이 좋다. 뉴스레터로 구독하고 있다. '퍼펙트 데이즈'를 소개하는 기사를 읽고 꼭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야쿠쇼 고지'가 나오기 때문이다.


'야쿠쇼 고지'는 수십년 전에 본 'Shall we dance?"의 주인공이었다. 그렇게 오래 전에 봤음에도 영화 줄거리와 장면들이 생생하게 기억에 남아 있다. 그만큼 재미있게 봤다. 


'Shall we dance?"는 미국에서 리메이크 된다. 리처드 기어와 수잔 서랜든이 주연했는데 졸작이었다. 나무도 옮겨 심으면 몸살을 앓는다고 한다. 다른 나라에서 영화를 리메이크 하면 제대로 살릴 수가 없다. 나라마다 특유의 감성이 있어서 그럴 것이다. 


야쿠소 고지는 비교적 최근에 나온 영화 '세번째 살인'에서도 주인공으로 나왔다. 이 영화가 매력적이다. 끝까지 야쿠쇼 고지가 실제 범인인지, 아닌지 영화는 말해주지 않는다. 


변호사가 직업인 나도 이런 경험을 할 때가 있다. 그렇게 오랫동안 미팅을 했고, 끝없이 의뢰인의 말을 의심하면서 들었고 반대의 증거를 찾아도(의뢰인의 말을 의도적으로 의심하는 이유는, 이래야 상대방으로부터 뒷통수를 맞지 않기 때문이다) 의뢰인의 말에서 허점을 찾을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내 의뢰인의 말이 진실인지 아닌지 확신할 수 없을 때가 있다. 


영화관에 가서 영화를 본지 오래됐다. 영화를 좋아하는 내가 영화관을 찾지 않는 이유는 어느 순간에 자막의 크기가 일제히 작아졌기 때문이다. 자막이 크면 화면도 가리게 되고, 큰 글자보다도 작은 글자가 예뻐서 그렇게들 방침을 바꾼 것이겠지만 교정시력이 잘 나오지 않는 나로서는 날벼락이었다. 또한 요즘 영화에서는 핸드폰 문자 대화 나 이메일 등 글자가 나오는 장면이  자주 나온다. 자막보다도 훨씬 크기가 작은 그 글자들을 읽을 수 없으니 나는 또 좌절한다.


그런데 의학의 발달과 그 발달된 의학 기술을 제대로 배운 어느 안과의사 덕분에 몇 년 전에 눈 수술을 받았고 다행히 경과가 좋아서 교정시력이 향상되었다. 그렇지만 이미 영화관에 가지 않고 OTT로 영화보는 것이 자연스럽게 되었기에 "굳이 영화관에 갈 필요야" 라고 되었다. 


후배가 카톡으로 이 영화 추천을 하였다. 젊은 아이들에게 인기를 끌 영화 같지는 않으므로 조금만 기다리면 OTT로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불현듯이 눈 수술 후에 자막을 볼 수 있는지 테스트도 할겸 영화관에 가서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막이 잘 보이면 앞으로 다시 영화관에 가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을터였다.


퍼펙트 데이즈는 상영관이 많이 없었다. 상영관이 있어도 하루에 2 번 정도 밖에 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도 예매하는데는 어려움이 없었다. 부익부, 빈익빈은 어디에서 적용되는 불변의 법칙이다.


조그만 상영관이어서 그런지 화면이 작았다. 일부러 제일 뒷자리를 예매했다. 먼거리에서 봐야지 자막을 보는데 어려움이 있는지 없는지 보수적으로 테스트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결론은 눈을 찌푸리지 않고 아슬아슬하게 자막을 비교적 선명하게 볼 수 있었다. 휴, 다행이다. 


영화 이야기를 짧게 하면 - 인터넷에 이 영화 이야기가 도배가 되어 있으므로 내가 덧붙일 말은 없다 - 너무 너무 좋았다.


내가 근래에 본 영화 중에 최고는 단연 '헤어질 결심'이었다. 처음에 이 영화를 볼 때는 탕웨이의 어눌한 한국말을 도무지 알아 들을 수가 없어서 제대로 즐기지 못했다. 그냥 넘어가기는 아쉬워서 자막이 있는 영화로 다시 봤다. 우와!!! 정말 내 생각으로는 완벽한 영화였다. 박찬욱 감독은 역시 위대한 감독이었다.


그런데 오늘 본 퍼펙트 데이즈는 더 대단했다. 대단한 이유는, 감독이 높낮이 없는 노래로 화려한 노래보다도 더 감동을 주는 놀라운 내공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감독은 독일사람인데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거장이라고 하였다. 1945년생으로 연세가 많은 분이었다. 내가 본 그 분의 영화는 다큐멘터리인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 밖에 없었다.


아니 왜 독일양반이 난데없이 일본 배우를 써서 일본이 배경인 일본영화를 만들었을까. 그 이유가 무엇이든 간에 나는 이 영화를 보는 내내 형언할 수 없는 감동을 느꼈다.


영화예매를 할 때 상영시간 뿐만 아니라 종영시간까지 알려주었다. 영화를 보면서 중간, 중간에 빛이 새 나가지 않게 손으로 가리면서 몇 번이나 손목시계를 봤다. 제발 좀 더 오래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정말 좋은 책을 읽을 때 페이지가 줄어들을 때 안타깝지 않은가. 예를 들면 유발 하라리의 책들이 그렇다. 


야쿠쇼 고지는 화장실 청소를 하는 사람이다. 도쿄의 특정 구역 곳곳에 있는 공중화장실을 돌아다니면서 청소를 하는데 완벽하게 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곳은 반사경으로 비춰가면서 닦고, 비데의 물나오는 심을 나오게 하여 그 심까지 깨끗하게 닦는다. 


얼마나 열심히 닦느냐 하면, 농땡이 파트너가 어느날 갑자기 그만 둬 버린다. 두사람 몫을 해야 한다. 두사람 몫의 일을 해도 대충하지 않는다. 그러다보니 아침부터 시작한 일이 해가 져서 밤이 될 때까지 계속 된다. 말이 통 없는 그도 화가 났는지 회사에 전화를 걸어서 "이렇게 계속은 도저히 못하겠다(無理다)"라고 불만을 터뜨린다. 


그는 퇴근 후에는 허름한 식당에 들어 하이볼인지, 얼음물에 탄 소주인지를 마시고, 자기 전에는 조그만 스탠드 불빛 아래에서 돋보기를 끼고 잠이 올 때까지 책을 읽는다. 조그만 다다미 방에서 담요를 깔고 엎드렸다가, 누웠다가 하면서 그렇게 문고본을 읽는데 독서수준은 매우 높다. 여러권의 책이 등장한다. 내가 아는 착가는 윌리엄 포크너와 패트리샤 하이스미스이다. 패트리샤 하이스미스는 약간 뜻밖이다. 범죄소설, 즉 이른바 장르소설을 쓰는 작가이기 때문이다. 뭐, 어쨌든, 그의 독서편력이 광범위하다고 치자. 


아침에는 칼같이 일어나서 양치질을 하고 콧수염을 다듬고 집 바로 앞에 있는 자판기에 동전을 넣고 캔커피를 1통 꺼낸다. 그리고 청소도구가 가득 실려 있는 조그만 봉고차를 출발시키면서 카셋트 테이프 중 하나를 골라 옛날 팝송을 튼다. 


영화관에 가서 영화를 봐야 하는 이유를 오늘 명확히 찾았다. 차단된 공간에서 최고급 스피커로 들을 때 음악이 주는 감동이란!!! 일류 가수는 일류로 노래를 부른다. 메시의 화려한 드리블은 눈으로 보여서 진가를 금방 알아볼 수 있다. 음악은 그렇게 직관적이지 않지만 차단된 공간에서 좋은 스피커로 큰 소리로 들을 때는 진가가 나타난다.


처음 나오는 노래는 나의 고등학교 시절 때 너무도 유명했던 THE HOUSE OF THE RISING SUN 이다. 영화 중간에 선술집을 하는 여사장이 손님의 통기타 반주로 그 노래를 부른다. 멜로디가 엔카로 바뀐다. 재미있다. 더 재미있는 것은 일본 가사다. 원곡의 가사는 뉴 올리언즈에서 노름꾼 아버지와 삯바느질을 하는 어머니의 이야기를 아들이 비통한 심정으로 말하는 것이다. 일본어로는 애인이 나를 떠나는 이야기로 개사되었다. 어느 쪽이 더 비통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영화는 처음에는 계속 되풀이되는 일상을 맛깔나게 보여준다. 비슷한 장면이 되풀이 돼도 지루하지 않다. 그러다가 점점 변주(變奏)로 들어간다. 여러 주변 인물들이 차례로 등장한다. 하나같이 평범한 것 같으면서도 예사롭지 않은 에피소드가 만들어진다.


단골 선술집의 그 여사장은 - 엔카로 THE HOUSE OF THE RISING SUN 을 부른 그녀 - 지적인 그를 좋아하는 것처럼 보인다. 수줍음이 많은 그의 감정은 표시되지 않는다.


어느날 그 여사장이 어떤 남자와 포옹을 하는 장면을 목격한다. 그는 편의점에 가서 캔 맥주 3개와 담배 1갑을 산다. 봉지에 담아들고 하천변으로 가서 캔맥주를 벌컥거리면서 오랫동안 끊었던 담배 한가치를 입에 문다. 그리고 켁켁 거리면서 기침을 한다. 목석같은 그도 사랑 앞에서는 질투할 줄 안다.


쓰다보니 이 영화의 모든 장면을 설명하고 이야기 하고 싶다. 나는 모든 장면을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오지랖은 이 정도로 그쳐야 한다.


내가 좋아하는 JTBC의 프로그램 '최강야구'에서는 몬스터팀이 승리를 거두었을 때 담당 PD가 이런 말을 한다. "오늘 참 기분이 좋습니다!"


영화 '퍼펙트 데이즈'를 본, 오늘 참 기분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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