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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세가 되면

by N 변호사

생일이 며칠 남지 않았다. 65세가 되므로 여느 때와 다른 느낌이 든다. 65세면 공식적으로 노인이 된다. 다른 직종보다 정년이 늦은 대학교수도 퇴직을 해야하는 나이이고, 지하철을 공짜로 탈 수 있는 나이이기도 하다.


몇 년 전부터 65세 이후의 삶에 대해서 생각했다. 무엇을 하면서 살까, 또는 어떻게 살까.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아야 한다고 (남의 일이라고) 쉽게 말들 하지만, 해야하는 일과 좋아하는 일이 일치되지 않으면 해야 하는 일을 하면서 살 수밖에 없다. 그러나 65세의 노인이 되면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살 자격을 드디어 가지게 되는 것 같다.


매월 수천만원씩 안정적으로 임대료 수입이 들어오는 건물주가 아닌 다음에야 맹탕 놀 수는 없다. 노인이라고 돈 쓸 일이 없는 것은 아니니까.


나는 운이 좋게도 독서취미를 가지고 있다. 운이 좋다고 한 이유는 독서취미는 돈이 들지 않기 때문이다. 책값이라는 것이 원래 그리 비싸지도 않은데다가 조금 부지런하거나 성격이 느긋하면 도서관에서 웬만한 책들은 다 빌려볼 수 있다.


'내 평생 쉴 곳을 찾아 다녔으되 마침내 찾아낸 책이 있는 작은 구석방'이란 말은 움베르토 에코가 쓴 '장미의 이름'에서 읽은 구절 같다. 중세 시대의 어느 수도사가 한 말이라고 한다.


어차피 세상의 모든 즐거움을 누리지는 못한다. 돈이 없어서도 그렇고 동시에 2개를 할 수 없는 시간부족 때문에도 그렇다. 굳이 모든 종류의 즐거움을 악착같이 맛봐야 할 이유도 없다.


하와이에 갔을 때 그 비싼 땅값의 넓은 대지 위에 화려한 별장들이 모여 있는 곳을 우연히 지나가게 됐다. 그 별장 한 채 값은 최소한 수백억원일 것이다. 별장 주인은 그 별장을 살 때는 신났겠지만 그리고 초반에는 자주 그곳에 들러서 그 별장의 돈가치를 마음껏 누렸겠지만 계속 그 즐거움이 유지됐을까. 아닐 것이라고 확신한다. 배고플 때 먹는 첫술의 밥과 배가 찼을 때 먹는 밥의 맛이 다른 것은 그 별장에도 똑같이 적용될 것이기 때문이다.


좋은 집에 살고, 좋은 차를 타고 다니고, 세계적인 관광지의 일류 호텔에서 숙박하며 관광을 하는 삶이 부러운 것이 사실이지만 물질적 호사를 누리면서 사는 사람이라고 매일 매일이 행복한 것도 아니고 늙지 않는 것도 아니고 죽지 않는 것도 아니다.


결국 산다는 것은 얼마만큼 소유하느냐의 게임이 아니라 얼마나 즐거운 삶을 사느냐의 게임이다. 사후세계가 없다고 믿는 나로서는 살아 있는 동안에 즐거움을 누리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믿고 있고, 65세 이후의 삶에서는 더욱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산에 가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매일 가는 동네 뒷산 보다는 캐나다 록키 산맥의 장엄한 산에서 더 큰 즐거움을 느낄 것 같다.


캐나다 록키 산맥에 가기 위해서는 여비를 모아야 하고, 시간을 내야 하고, 준비도 많이 해야 한다. 이 얼마나 번거로운 일인가. 이 모든 것이 버겁고 귀찮다고 느껴서 그냥 동네 뒷산에나 줄곧 다니겠다고 한다면 즐거운 삶인가, 아닌가.


이처럼 즐거운 삶은 정의(定義)하기도 쉽지 않고 실천하기도 어렵다.


어떻게 사는 것이 즐거운 삶인가에 대해서는 사람마다 생각이 다를 수밖에 없다.


나는 그 대상이 무엇이 되었든 간에 탐구하는 것이 재미있다. 탐구하고자 하는 대상이 많을수록 깊이가 없게 되고(깊이와 즐거움은 비례한다), 대상이 좁혀진다면 지루함을 느낄 수 있다. 그래서 대상의 확정이 중요하다.


깊이 파고들수록(고수가 될수록) 더 큰 즐거움을 누릴 수 있지만 '탐구시간을 확보하기 위하여' 감각적 쾌락을 포기하여야 하는 고통이 따른다. 감각적 쾌락이란 즉각 도파민이 나오는 즐거움을 말한다.


나의 경우에 술친구 만나서 술에 취하여 떠들면서 시간을 보내는 문제는 없다. 문제는 OTT다. 드라마나 영화를 좋아하다보니 많은 시간을 넷플릭스에 빼앗겨왔다. 다행히 넷플릭스에서 벗어난지도 제법 오래됐다.


유튜브는 탐구생활에서 가장 유용한 원천이 된다. 시도 때도 없이 들락날락 거리면서 재미를 찾아다니는 것은 무의미하지만 대상을 정해 놓고 그 무엇을 알고 싶을 때 유튜브에서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다. 물론 엉터리 동영상도 많다. 또한 텍스트로 공부하는 것이 훨씬 빠르고(효율적이고) 정확할 때도 있다.


탐구를 하든, 감각적 쾌락을 즐기면서 살든, 그 어떤 것보다 가장 우선이 되어야 할 원칙이 있다. 무엇을 하든간에, 그리고 10분을 하든, 몇시간을 하든간에 그것을 하는 동안에는 그것에만 몰입하자는(다른 걱정을 하지 말자는) 것이다. 몰입이 즐거움의 뿌리가 된다는 것은 새삼 언급할 필요도 없을만큼 이미 증명된 사실이다.


몰입의 방해요소는 걱정과 불안이다. 스님이 한평생을 수련해도 걱정과 불안을 완전히 떨쳐낼 수 없는데 어떻게 나같은 범인이 굳은 결심만으로 그것이 되겠는가.


하지만 그것이 안되면 만사휴의이므로 노력해야 한다. 근육을 만들어야 턱걸이를 할 수 있듯이 마음의 근육도 단련을 해야 한다. 그 방법으로 가장 좋다고 여겨지는 것이 명상이다. 명상 중에서도 호흡명상.


운동은 습관이 된지 오래지만 명상은 이제 걸음마 단계다. 그렇지만 명상의 필요성과 유용성에 대해서는 이제는 더 이상 한치의 의심도 없다.


시간을 한 곳에 모으기, 명상하기 등은 탐구생활을 하기 위한 수단이다. 탐구생활은 최종목표인 즐거운 인생을 살기 위한 수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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